본문 바로가기

메종드 쭌/기억의 저편63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수잔 손택’이 건넨 한마디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수잔 손택(Susan Sontag)’이 건넨 한마디 (1933.1.16~2004.12.28) 내 이름은 수잔 손택(Susan Sontag). 내 얘기 좀 들어볼래? 벌써 4년이 흘렀군. 4년 전 12월28일, 난 이 끔찍한 세계의 고통에 더 이상 삼투압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 어쩔 수 없었어. 나도 활동을 계속 하고 싶었지만, 병마가 날 더 이상 놔두질 않더군. 알다시피, 난 세 차례 암과 싸웠잖아. 그러면서 그 고난을 질료 삼았지. 내가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한 말, 알지? “질병은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임에도 불구, 학자나 작가들이 만들어낸 병에 대한 은유적 이미지가 환자들의 질병에 대한 투쟁을 방해하고 있다.” 내 몸의 질병도 그렇지만, 세계가 앓고 있는 질병 또한.. 2009. 2. 9.
히스 레저, 그리고 우리들의 '다크 나이트' 지난 22일, 히스 레저의 1주기. 좋아라~하는 호돌 형과 술 한잔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를 꺼냈다. 형은 그런 말을 했고, 나는 맞장구를 쳤다. 이 세상에 남아 있어야 할 사람들은 일찍 죽고, 일찍 뒤져야 할 놈들은 떵떵거리며 뻘짓거리 해 댄다고. 이 국가가 저지른 용산 참사와 맞물려, 우리는 괜히 눈시울 붉히며 술잔을 꺾었다. 죽어서도 그는 어떤 울림을 가져온다. 남은 자들은 그의 이름을 명명한다. 지난 11일 골든글로브 시상식. 그는 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전미 비평가 협회에서도 같은 상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엊그제, 그의 기일과 맞물린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발표. 그는 역시 남우조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때론 감동 섞인 드라마 같은 일을 즐기는 아카데미에서는, 세상에 없는 그를.. 2009. 1. 23.
환생한 존 레논, ‘오노 요코(Ono Yoko, 1933.2.18~)’와 다시 사랑하다 환생한 존 레논, ‘오노 요코(Ono Yoko, 1933.2.18~)’와 다시 사랑하다~♥ “1980년 12월8일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 놀라 뱃속까지 울렁거렸다. 그 며칠 전에 5년 동안의 휴식기간을 끝내고 막 새 앨범을 출간한 참이 아닌가. 그날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한 그 를 들었는데! 그 앨범의 첫 번째 타이틀은 . 5년 동안 나는 존 레논이 음악활동을 재개하기를 간절히 염원해 왔다. 그리고 기다렸다. 왜냐하면 우리를 그토록 기다리게 하며 휴식에 들어간 이유에 대해 존 레논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나는 존 레논이 부러웠다.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여준 아버지의 존재방식에 동경을 품었기 때문이다. 스타팅 오버. ‘재출발’이라는 그 곡과 함께 돌아와 새롭게 일어서려는.. 2009. 1. 19.
안녕, 진실누나... 아해들은, 그런 소년을, 미친놈이라고 했습니다. 시험이 바로 다음날이었죠. 타율학습(!), 그까이꺼 땡땡이 치고 갔습니다. 안 갈 수 없었을 겁니다. 소년의 방 벽면의 곳곳에서 저를 향해 미소짓고 있는 (최)진실누나가 부산에 첫 행차했답니다! 어찌 그런 누나를 알현(!)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신원에벤에셀이 부산 남포동에 매장을 내면서, 전속모델이던 누나를 델꼬 온 겁니다. 사인회라는 명목. 문현동에서 남포동까지 날랐습니다. 역시나, 사람들 미어 터집니다. 더구나 대부분 여자입니다. 사춘기의 그 고딩 소년, 쪽팔림을 무릅쓰고 줄을 섰습니다. 줄이 줄어들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헉~! 숨 막히는 순간. 진.실.누.나가 눈 앞에 있습니다. 그것도 소년을 향해 미소를 띄우면서. 심장이 벌렁벌렁.. 2008. 10. 3.
제임스 딘도, 폴 뉴먼도... 제임스 딘은 53년 전, 스물 넷의 나이로 요절했다. "빨리 살고 일찍 죽는다. 그래서 보기 좋은 시체를 남긴다." 폴 뉴먼은 지난 26일(현지시각), 83세로 영면했다. 마지막으로 (스크린에서) 본 것이, 이다. 에서 앳띤 탐 크루즈와 공연한 것이 처음 대면이었는데. ... 우리 딘 형님에 비해 훨 오래 살았다지만, 그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이들에겐 아프긴 매 한가지다. 제길, 그 빈자리를 메우기 전에 하나둘 떠나버리면 어쩌자구. 그려, 거기서 잘들 계시유. 나도 언젠가는, 그쪽으로 갈테니, 그때 봅시다. 그때까지 부디, 안녕... 당신들을 추억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소. 2008. 9. 30.
파블로 네루다를 생각한다... 그는 시인이다. (콜롬비아의 대문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그를 어떤 언어로 보나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다"라고 했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다.(1971년) 그는 공산주의자다. 그는 좌파다. 그는 정치인이다. 그는 외교관이다. 그는 혁명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사랑을 알았던 사람이다. 인류에 대한 사랑보다 더 힘든, 인간에 대한 사랑. 그것이 내가 아는, 그다. 파블로 네루다(1904.7.12~1973.9.23). 오늘은 그가 떠난지 35년이 되는 날.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렇다. 그를 통해 나는 칠레의 굴곡진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았다. 그래서, 그는 내게 세계를 넓혀준 사람이다. 칠레의 9월은 혁명의 스러짐을 맛봤다. 살바도르 아옌데도, 빅토르 하라도 1973년 9월에 스러.. 2008.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