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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무비일락

그리고 5월, 오월애(愛)

by 낭만_커피 2011. 5. 8.
5월. 이 따뜻한 봄날이 오면 생각나는 이야기와 선율.

우선, 우연과 약속이 빚은 어떤 영화들이 있다.
매년 5월8일이면 나는 그들의 행로를 좇아 사랑을 다시 생각한다.

먼저, 이 영화, <첨밀밀>.


10년이었다. '만나야 될 사람은 꼭 만나게 된다'는 사랑의 아포리즘을 촘촘하게 형상화했던 이 영화. 홍콩으로 함께 넘어온 친구로부터 시작해 숱한 엇갈림을 거쳐 마침내 뉴욕의 한 전파상에서 우연 같은 필연을 빚었던 두 사람.

이요(장만옥)과 소군(여명)의 사랑은 그랬다. 한끗 차이의 미묘한 엇갈림에 한숨 짓게 하고, 애타게 만들었다. 그들이 빚어낸 10년의 돌고도는 운명(론)은 5월에 결국 마무리됐다. 그들이 마침내 10년의 새침함을 뚫고 만났던 그 순간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나는 그 순간을 이렇게 읊은 바 있다.

[5월8일의 영화 ①] 10년을 그리워한 사랑을 다시 만나는, 5월8일의 전파상...



참고로, 5월8일은 등려군이 사망한 날(1995년)이자, 그들(이요와 소군)이 뉴욕에서 다시 만난 날이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는 말을 믿고 싶은 사람, <첨밀밀>을 꺼내봐도 좋겠다.



이요와 소군이 만난 뉴욕의 5월8일은, 또 다른 연인들이 만나기로 했던 날이었다. <러브 어페어>의 테리(아네트 버닝)와 마이크(워렌 비티). 비행기 옆좌석에 앉은 그들. 각기 약혼자가 있었음에도, 그들은 서로에게 풍덩 빠진다. 그야말로, 러브 어페어.


어찌할 수 없는 끌림. 불과 사흘이었지만,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는 두 사람이 3개월 후 다시 만나기로 한 시간과 장소가, 5월8일 오후 5시2분,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그렇게 그때, 서로의 사랑을 증명하듯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약속을 한 두 사람. 다만 한 사람이라도 나오지 않는다면 서로 찾거나 연락하지 않기. 진짜 그것이 사랑인지 고민도 하고,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그날, 그들은 그곳을 향하지만, 또 다른 시련이 그들을 기다린다.

나는 이 사랑에 쩔쩔맸다. 보는 내가 다 안타까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역시 나는 이렇게 읊었다. [5월8일의 영화 ②] 3개월의 약속, 5월8일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러브 어페어>. 1932년 처음 만들어졌고, 1939년에 첫 리메이크됐으며 데보라 카와 캐리 그랜트 주연으로 만들어진 1957년 리메이크작은 맥 라이언, 탐 행크스 주연의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모티브가 됐다. 특히 애니(맥 라이언)은 눈물을 쏟으면서 이 영화를 보는데, 애니가 삭막한 현실에서 잊고 사는 진실한 사랑에 대한 꿈을 되살리는 영화가 바로 1957년작 <러브 어페어>다.


1994년작은 가장 최신의 것이기도 하지만, 바람둥이 워렌 비티를 잠재운 아네트 버닝의 극강의 아름다움이 반짝반짝 빛난다. 캐서린 헵번의 깜작 등장도 작은 선물이다. 그래, 뭣보다 영화가 알려주는 이것. "누구의 인생에도 끼어드는 위험, 그러나 늘 위험을 무릅 쓸 가치가 있는 것, 그건 사랑이다." 사랑 지상주의자에게 권한다.

그리고 하나 더, 추가. 5월25일에 꺼내보면 좋을 영화다. 그날은 아오이(あおい)의 생일이다. 아오이? 누구냐고? '아오이' 유우나 미야자키 '아오이'를 떠올린다면 땡! 그녀는 <냉정과 열정사이>의 히로인이다.


스무살, 아오이와 쥰세이는 약속을 했다. 우리, 아오이의 서른 번째 생일, 10년 후에는 피렌체 두오모에 오르자. 바야흐로, 사랑의 약속.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던 두 사람이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10년 전, 스무살에 했던 사랑의 약속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 만날 사람은 역시나, 다시 만난다.


두 사람의 사랑이 복원되는 그날, 사랑을 복원하고픈 누군가는 이 영화를 봐도 좋겠다. 쥰세이가 회화 복원사로 나오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쥰세이는 이리 말한다. “복원사는 죽어가는 것을 되살리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리는 유일한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잃어버린 시간을 되살리고 싶은 연인들의 이야기, <냉정과 열정사이>. 아오이의 생일이 5월25일인 것도 이유가 있으리라. 일본어 '아오이(あおい)'는 푸르다, 파랗다, 풀 등의 의미인데, 봄의 절정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 이름을 품은 것 아닐까. 

이 영화를 보고, 나는 불끈 이렇게 다짐했었다.
5월25일, 당신의 가슴 속에도 누군가가 있는가...



아울러, 잊히지 않는, 영원히 잊히지 않을 이 말.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 속밖에 없다." 이말의 출처는 바로 이 영화의 원작인 소설이었다. 사실 영화가 아주 나쁜 건 아니지만, 책이 훨씬 더 낫다. 5월에 읽으면 좋을 책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두 작가,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가 연애하듯이 썼다는 이 소설. 에쿠니가 한 챕터를 쓰면, 그 다음 츠지 히토나리가 자신의 챕터를 쓰면서 Rosso와 Blu를 완성했다.


참고로, 내가 좋아라~하는 우에노 주리의 생일이 5월25일(1986년)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데뷔한 그녀는 <스윙 걸즈>에서 존재감을 본격 피력했고,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노다 메구미 역으로 만개했다. 25일,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봐도 좋겠다.


사랑을 하건, 사랑을 하지 않건, 사랑은 우리 모두의 숙명이다. 그러니 사랑은, 우리를 살게 한다. 10년동안 애타게 엇박을 냈어도 다시 만나게 된 것도, 3개월 후의 약속을 부득이하게 지키지 못했지만 서로의 감정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도, 10년 후 사랑의 약속을 서로가 지켜낸 것도, 모두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지금 필요한 건 뭐? 사랑!


어쩌면 그들 모두에겐 '약속'이라는 것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입밖에 꺼낸 약속이든, 마음으로 행한 약속이든. 그 약속은 미래였다. 추억은 과거이고, 약속은 미래라는 <냉정과 열정사이>의 말은 그래서 맞다.  한편으로 그 약속이 기적을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이들 영화가 빛난 것은 배우들의 연기, 감독의 좋은 연출 등도 한몫했겠지만, 뭣보다 음악의 힘이 컸다. 그러니, 음악도 함께 추천해야겠다.

우선, <첨밀밀>의 절대 공신은 '등려군'이다. 대만에서 태어나 중화권의 국민가수로 활동한 그녀였다. 첨밀밀에는 그녀의 대표작인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이 나온다. 이 음악, 잊지 못할 사람들 많을 거다.


<러브 어페어>의 사랑을 더욱 애절하고 뭉클하게 만들어준 것은 엔니오 모리꼬네였다. 한마디로 그의 피아노 연주곡은 끝장이었다. 'Love Affair Piano Solo'.

곧 한국에 방한해 연주를 들려줄 그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영화음악가 데뷔 50주년 기념 투어의 일환으로 16일~1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진단다. 그 자리, 누군가에겐 러브 어페어가 일어나겠네~ 정말 좋겠네~


아울러, 두 사람의 안타까운 재회 장면과 맞물려 레이 찰스가 콘서트장에서 부르는 'The Christmas song'와 비틀스의 노래를 아이들이 부르는 'I Will' 역시 들음직하다.


빠질 수 없는 것이 <냉정과 열정사이>의 OST다. 료 요시마타(Ryo Yoshimata)의 곡으로 채워졌는데, 그 선율이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외줄을 탄다. 그 연주곡들, 참 좋다.

마지막으로, 5월, '가정의 달'이란다.
 

허나, 그 '가정'을 '엄마, 아빠, 자식'으로 이뤄진 구성체로만 보는 것은 속좁은 편견이다. 세상엔 다양한 형태의 가정이 있다. '나 홀로' 있어도 가정이 될 수도 있고, 꼭 핏줄로 이어진 혈연체만 가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정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을 허하라!

이에 맞는 영화로는 <가족의 탄생>이 꽤 괜찮겠다.  참, 괜찮은 영화다.


아, 깜빡할 뻔했다. 이 포스팅의 제목으로 빌린, <오월애>. 결코 지울 수 없는, 잊어선 안 될, 우리 5월의 역사. 1980년 5월의 광주를 다룬 다큐멘터리. 지난 2010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못다한 5월의 이야기. 우리가 알아야 할 그날, 1980년 5월의 광주 이야기,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