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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무비일락

지금 필요한 건? 잘 익은 사과 한 마디!

by 낭만_커피 2011. 5. 2.
# 1. 일리노이 주립대학 병원이 궁금했나보다. 의료사고 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그래서, 수년에 걸쳐 조사했다. 의료사고 후, 병원의 실수나 잘못이 있을 경우, 그것을 환자에게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한 사례가 37건 있었다. 그 중 환자가 소송을 진행한 건은 단 한 건이었다. 잘못의 인정과 진심 어린 사과가 의료사고의 후폭풍을 막았다. 환자 가족의 찢어지고 분통 터지는 심정, 말로 표현할 수 없겠으나 그래도 진심 담은 사과가 있어서, 의료 분쟁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 같다. 병원, 의사는 이 점을 염두에 두면 좋겠다.

# 2. 한국의 예를 보자. 2009년 '쌍용차 사태'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국가와 자본의) 폭력이 있었다. 이 폭력 이후, 지난 4월 기준으로 14명이 사망했다. 그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가 7명이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쌍용차 해고자 193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 10명 중 8명이 중증 이상의 우울증 증상을 보였다.


갑작스런 해고에 "나도 사람이다"라고 절규하고, "나는 살고 싶다"고 외치는 사람들.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재취업? 복직? 아니다. 그들이 진짜 원하는 건 회사와 국가의 진정한 사과라고 한다.

쌍용차노조 이창근 해고자의 말을 들어보자. "생뚱맞지만 지금 쌍용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게 뭘까? 돈일까, 복직일까? 더 필요한 건 뭘까? 매번 조합원들과 얘기할 때 첫 번째 요구 사항이 뭐냐 물으면, 늘 ‘사과’라 말한다. 정부 차원의 유감 표명과 회사 쪽의 사과. 이게 가장 힘있고 설득력 있는 조치다. 돈도 안 들지 않느냐. 돈 안 들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게 첫 번째 치유 아닌가. 해고노동자들을 보듬으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사과.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그게 그리 힘든가 싶은데, 어찌나 고개가 빳빳하신지, 정부나 회사는 사과하지 않는다. 되레, 불법 행위를 했다며, 그들의 절박함을 순식간에 '죄'로 둔갑시키고, 그들을 '죄인'으로 내몬다. 하긴, 용산 참사 때도 그랬다. 사과하는데 그토록 오래 걸렸고, 그 사과라는 것도 진정성은 없어 보였다. 떠밀려 하는 사과. 잘났다. 


사과, 절망의 클러스터를 끊는 한 가지 방법

다시 사과를 생각한다. 인권영화프로젝트 옴니버스 영화 <시선 너머> 덕분. 특히 <반두비> <방문자>의 감독, 신동일이 만든 <진실을 위하여>가 그랬다. 거기도 사과하지 않고 외려 덤터기를 씌우는 무리들이 있었다. 유산의 위기 때문에 유명 병원에 입원한 보정(심이영)과 그의 남편, 인권(김태훈)이 있다. 헌데, 병원 쪽의 잘못으로 보정은 유산을 하고, 그들이 병원 로비에서 잃어버린 300만원은 병원 간호사(임시직)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병원장은 사과하지 않는다(고 버틴다). 돈은 임시직의 소행이라고 나 몰라라,하며 유산의 책임도 없다고 배째라다. 억울한 보정이 병원의 부당함을 인터넷에 올려 일이 커지자 병원장은 그들을 부르지만, 사과는커녕, 글을 내리라고 윽박지른다. (정규직) 간호사도 한통속이 되어, 임시직을 폄하하고 병원(장)을 옹호하는 '악의 평범성'을 드러내고. 보정의 유산 경력을 들어 오히려 그들을 공격하기까지하는 병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다.

보정과 인권이 원한 것은 잃어버린 돈도 아니요, 유산에 대한 보상도 아니었다. 병원의 진심 어린 사과. 그것만 바랄 뿐인데, 병원은 '그것조차' 못해준다. 돈 들 일도 아닌데 말이다. <진실을 위하여>의 병원은 우리 사회의 뜨악한 단면이다.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시선. 존중은커녕 어떡해서든 인정하지 않고 그림자로 만들어버리는 술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청하는 일이 스스로를 낮추게 되는 일인 것일까? 어릴 때 콧대만 세우는 법만 배우고, 사과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탓일까.  낙인 찍힌 존재에 대한 긍정과 호명이 없는 세상. 그것이 못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절망의 클러스터가 형성되는 지점에 '사과 없음'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잘못 이후의 태도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내 자신에게 화살을 돌렸다. 나는 제대로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인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한 적은 없는가. 나를 반성하고 성찰하게 만들었던 시간.

사과할 줄 모르는 사회가 빚은 관계망의 파괴는 지금 목도하고 있는 대로다. 사과만 제대로 해도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더 나아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정보인권에서 시작했던 <진실을 위하여>는 다양한 폭력의 문제를 다루면서 다양한 층위에서 반성하게 만든다.


다른 옴니버스 영화들? 괜찮다. <파수꾼>으로 떠오르는 신성이 된 윤성현 감독의 <바나나 쉐이크>는 송곳 같은 유머로 인권을 생각하게 만드는 수작이다. 봉주(정재웅)의 능청 맞은 연기는 정말로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꼬집는 영화.

그리고 김대승 감독의 <백문백답>. 요즘, 내가 꽂혀 있는 여자, 김현주. <반짝반짝 빛나는>의 히로인이자 평소의 밝은 이미지 그대로의 그녀가 드라마와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온다. 불안이 잠식한 그녀의 신경증적인 모습은, 또 하나의 김현주를 볼 수 있게 해준다. 김현주의 또 다른 얼굴만으로 내겐 충분했던 영화.

김현주, 그녀라면, 송편이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에서 외친 그말, "내 여자한테 손끝이라도 건드리면 가만 안 둬"(내 여자 = 정원(김현주))의 심정을 108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 요즘 나는, 김현주 덕분에 산다. 우헤헤...


굳이 인권 따지지 않고 봐도, 충분히 재밌는 영화들이다. 나는 어쨌든 제대로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정재승과 김호의 공동저서, [쿨하게 사과하라]가 전하는 올바른 사과의 네 가지 요건.


1. 유감의 표현
2. 책임의 표현
3. 재발 방지의 약속
4. 개선책 제시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