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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국영이형, 황사바람에 잘 계시우?

by 낭만_커피 2007. 4. 1.

만우절. 장국영. 전혀 연관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것 같던 두 단어.

그러나 4년 전, 그들은 묘한 관계를 맺었다. 만우절이면, 장국영하면, 상호 침투하는 관계.

오늘 4월 1일. 대중교통 요금이 오른 날. 최근 정신없이 하루하루 견디다보니 날짜도, 사람도 생각을 않고 지냈다. 오늘이 '4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첫날임도 인식못했다. 그래서 만우절 생각을 못했건만, 국영이형을 떠올리지도 못했건만, 버스를 타고가다 길가의 벗꽃을, 개나리를 보면서 한숨 돌리고 보니 두 단어가 밀려왔다.

그래. 4월 1일, 국영이형이 '발 없는 새'로 비상했던 날. 4년 전이 문득 떠올랐다. 묘하게도 상황이 정확히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그때처럼 지금의 나는 야생동물로서의 '이야기'를 꾸려나갈 것을 요구받고 있다. 무릇 여러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마음 속에 둥지를 튼 생각 중 다른 것은 하나. 당시엔 생존에 아우른 성장을 꿈꾼 반면 지금은 지속가능함이 우선이다. 국영이형처럼 '단절'하게 되지 않기를. 외부요인에 의한 내부의 상처가 곪아 터지지 않기를.

지난해 긁적였던 3주기의 단상. 그냥 올해도 같이 묻고 싶네. <아비정전>, 오늘 볼 수 있을까. <아비정전> 보다는 <동사서독>이 더 보고싶은 황사 짙은 어느 봄밤. 황사와 장국영. 묘한 공명을 불러 일으키네. 나만 그런가?    


어느 봄비 내리는 4월의 첫 날. 다시 그를 만났다. 아니 그저 볼 수밖에 없었다. 3년 전 오늘이 만들어낸 내 일상의 변화. 느닷없이 찾아온 이별이어서일까. 그날이 오면 박제된 그를 어김없이 끄집어낸다. 장.국.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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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다시 끄집어낸 ‘아비’는 여전했다. 창백한 아름다움. 그 창백함이 어쩐지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밝은 표정 속에서도 알 수 없는 그늘이 숨어있었다. 살아생전에도 그랬지만 죽어서도 그러하다. 

‘발 없는 새’는 그날이면 내 일상의 구름 위를 그렇게 떠돈다. 그리고 흘러간 어떤 한 시대의 지난 흔적을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만우절이었다. 3년 전. 그래서 ‘거짓말 같은 죽음’이라고 그랬다. 비보였다. 그리고 휑뎅그레 남겨진 팬들의 당혹감. 더구나 만우절이라니. 3년 전 그날부터 만우절이 더 이상 내겐 이전과 같은 만우절이 아니다. 4월1일이 만우절이라는 사실보다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기억의 작동.  

허풍선이 남작이 활개 칠 수 있는 그 날이 만우절이란 것도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었듯 장국영의 죽음도 불가항력이었다. 어떤 의지가 있었다면 그건 장국영의 것이리라. 우린 그냥 받아들여야 할 뿐. 

어쨌든 그날 이후 내게 4월의 시작은 장.국.영.으로부터 비롯된다. 잔인한 4월의 시작. 4월을 ‘잔인한 달’로 각인시킨 장본인은 T.S.엘리엇이 아닌가 싶다. <황무지>는 그렇게 읊조린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라고.

어느 수필가도 만물이 자기 피부를 찢으며 소생하는 계절, 그 울음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며 그 ‘잔인함’의 유래를 설명했다. 딥퍼플은 ‘April’이란 노래를 통해 잔인한 4월을 노래했었다.

그렇듯, 누구에게든 ‘4월이 잔인하다’면 나름의 연유가 있겠지. 누군가의 죽음도 그 잔인함을 상징할 수 있을 것이고. 그저 나는 그를 기억할 뿐이다.

그런데 만약 만약에 말이다. 현재까지 그가 살았다면 어느덧 그는 지천명, 50이다. 거참. 죽기 전도 그랬지만 박제된 그에게서 50이란 나이를 떠올리기란 ‘대략난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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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의 죽음으로부터 한 시대의 접힘을 실감하다

그의 비상이 애틋했던 건 사실 그의 열광적인 팬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살아생전, 최소한 내게 있어 그는 홍콩배우 가운데 퍼스트가 아니었다. 그는 어쩌면 들러리였다. 양조위의 니힐함을 따르지 못했고 유덕화의 터프함에 미치지 못했으며 주윤발의 액션을 따라잡기에도 모자랐다. 그는 그저 잘생긴 ‘백면서생’이었다.

그럼에도 그 죽음은 왠지 서글펐다. 내가 그의 죽음에서 맞닥뜨린 것은 한 시대의 접힘이었다. 영웅본색(1986)부터 해피투게더(1997)까지. 내 청춘의 한 자락을 장식했던 장국영. 그러나 이후 시선에서 사라져버린 그였다. 아주 가끔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을 뿐, 그는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었다. 전성기를 보내고 신진 세력에 밀린 과거의 스타가 돼 버렸다.

그게 서글퍼서였을까. 아니면 반발이었을까. 그는 극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스스로 끊어버린 목숨. 그것도 높은 고층에서의 추락. 날개 없는 추락, 발 없는 새의 비상은 비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4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였지만 그의 죽음은 ‘요절’에 가깝다. 어떤 아름다움으로 인해, 영원히 청춘일 것 같은 이미지로 인해.

그랬다. 세월은 그렇게 흘렀던 것이다. 그저 일상에 저당 잡힌 생의 팍팍함은 따져보면 불연속적인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느끼게 만들지 못했던 것도 같다. 그저 변했다고, 바뀌었다고, 습관처럼 말했지만.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으나 실상 그러하지 못했다는 것. 탕진이라곤 없을 것 같던 청춘은 계절을 잃은 꽃처럼 흩날렸다.


아비정전.. 작업 거는 장국영

다시금 <아비정전>을 본다.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그의 흔적 찾아보기. 그는 참으로 니힐하다. 그런 한편으로 우리가 함께 했던 시대를 기억해달라며 그는 작업을 거는 것 같다. 궁극의 작업 멘트. 숱한 연애의 정석과 기술서들이 판을 치더라도 장국영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1분 멘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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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정전> 개봉 소식을 알리는 광고?

“1960년 4월 16일 우리는 함께 했어.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했던 1분을 잊지 않을 거야. 이 1분은 이제 지울 수 없는 1분이 됐어. 내일 다시 올게.” 아비(장국영)가 수리진(장만옥)에게 건넨 이 궁극의 멘트는 기실 우리에게 거는 마법과도 같다. “그는 1분을 쉽게 잊겠지만 난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는 수라진의 독백은 바로 우리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젠 “내일 다시 올게”라는 말조차 박제된 장국영의 흔적. 그 기억은 이제 지울 수 없게 됐다. 수리진과 같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닐까. “그는 지상에서의 기억을 쉽게 잊겠지만 우리는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

땅에 내려오는 순간 죽고 만다는 ‘발 없는 새’의 전설마냥, 그는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더 이상 늙지 않을 수 있는, 그리고 영원히 기억될 박제의 길. 선뜻 알아차릴 수 없었던 어떤 시대의 접힘을 그는 죽음이라는 표현방식을 통해 보여줬다.

내게 장국영은 그렇다. 늘 내게 강렬한 인상을 줬던 풍경은 ‘정착불감증’에 시달리는 모습이었다.
 
<아비정전>의 ‘아비’부터 <동사서독>의 ‘구양봉’, <패왕별희>의 ‘두지’, 그리고 내키면 오고 그렇지 않으면 훌쩍 떠나버리곤 하던 <해피투게더>의 ‘보영’까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그는 여기-지금, 땅에 발을 내리지 못했던 것인지도.  

각자가 기억하는 장국영의 모습은 제각각이겠지만, 내 생체기억이야 4월1일의 하루에만 그를 떠올리겠지만, 오늘 하루, 그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관통했던 어떤 시기를, 그 시대의 접힘을 실감한다. 오래전 그가 나왔던 초콜렛 선전은 참으로 달콤했었다. 아마 그 때도 비가 내리고 있었지... 거참 희한하네.

그나저나 국영이형, 잘 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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