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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더티 댄싱'이 돌아왔다! 환호하고 구르라~

by 낭만_커피 2007. 11. 21.
알싸한 기억, 되시겠다. 때는 바야흐로, 1988년 무렵이시겠다. 대개의 중딩 남자아해들의 말이라는 것이 그렇지 아니한가. 건너건너면서 뻥이 튀겨지거나, 배가 에베레스트로 간다. 더구나, 그것이 어떤 미끈한 유혹이라면, 그 뻥튀기의 강도는 도시를 뒤흔들 정도다.^^; <더티 댄싱>(Dirty Dancing)이 그랬다. 당최, 무엇이, 도대체,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더티 댄싱>이 극렬하게 '야한' 영화라고, 우리 아해들 사이에선 화제가 됐다. 더구나, 영화 제목에 '더티'라는 단어가 들어갔다. 이건, 충분히 아해들의 심증을 굳히는 단서(?)가 된다. 당시, 우리 아해들은 섹스는 '더티'한 것이라고 훈육하는 사회의 반경에 있었다. 모르긴몰라도, 아해들은 포스터에 나온 댄서의 미끈한 다리에도, 침을 꼴딱삼키면서, 이를 'Must-See Movie'로 규정지었다. 제2차 성징이 나타나게 하는 테스토스테론에 지배당하는 아해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저 보는 수밖에. 더구나 당시는, B자 비디오가 판을 치는 세상 아니던가! 구하려는 자, 맘만 먹으면 구하고, 보려는 자,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그런 틈에 어느 누가, 먼저 보고선 "야하지 않다"고 진실(!)을 발설했지만, 한번 불붙은 아해들의 욕정(?)을 잠재우기엔 무리였다.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도 필요하지 않은가 말이다. 검찰이나 PD수첩의 검증도 필요없다. 이럴 때의 아해들은 무조건 자신의 눈으로 봐야 직성이 풀린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아해들의 레이더에, 아쌀한 기회가 왔다. 한 아해의 부모님이 주말에 집을 비운다는 희소식. 아해들은, 작전을 짰다. 비디오가게 아저씨를 꼬실려서, 일단 비디오테이프를 빌린 뒤, 녀석의 집에서 '거사'를 치른다는 것. 오호, 드디어. 녀석들의 테스토스테론이 용두질을 친다. 눈꼬리 올라가는 것 봐라.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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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마조마한 가슴을 부여잡고, 거사를 치르던 아해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뭐? 당신도 알 것이다. '빨리감기(FF)'의 마술. 빨간 비디오를 볼 때, 가장 손에 익은, 그리고 가장 많이 누르는 우리의 친구. FF는, 이야기나 대사의 맥락에서 자유롭고싶은 이들의 본능에 가깝다. '돌려돌려'는 우리의 가장 흔한 대사였고. 뭐, 어쨌든 보다보다 우리가 원하던, 장면들은 쉽게 노출(?)되지 않았고, 예기치 않은 친구아해 부모님의 이른 귀환으로 우리의 거사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던 것 같다.

내게, <더티 댄싱>의 첫 기억은 이렇게 아픔(?)으로 남아있다. 개봉 당시, 아마 '연소자 관람불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거사를 실패하고보니, 극장가서 볼 '열정'까지는 없었던가보다. 뭐 당시는, '연소자관람불가'라도 맘만 먹으면, 임검에 걸리지만 않으면, 보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우린, 그랬다.^^; 그러면서 <더티 댄싱>은 엄청난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OST는 주야장천 울려댔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누나들은 조금 과장해서, 아주 자지러질 정도가 아니었던가 싶다. 나는 그리고, 대학에 들어간 이후, <더티 댄싱>을 제대로 만났다. 후, 제니퍼 그레이 청순함과 패트릭 스웨이지의 터프함은 절묘한 앙상블을 이뤘고, 춤은 폭발할 것 같았다. 흥겨웠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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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난 월요일(19일). 20년만의 귀환, 더티 댄싱의 역습. 날 잊고 살았냐,는 듯이, 극장 간판은 '오빠가 돌아왔다'도 아니고, '더티 댄싱이 돌아왔다!'. 유후~ 알싸하고 멋지게도, 그림으로 된 간판. 이 얼마만이냐. 나는, 그것부터 마음에 들었다. 그래, <더티 댄싱> 시사회였다. 드림시네마가 마지막으로 불꽃을 태울 야심작(!)이라고 했다. 서울에 남은 유일한 단관 극장으로서, 내년 언젠가 인근 재개발로 사라질 운명이라고 한다. 일종의 폐관 기념행사다. 이전 '화양극장'이었으며, 내겐 '시사회 전용관'으로서의 기억과 흔적만 남긴 곳.

사라진다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인데, 20년 전의 영화를 다시 불러오는 센스가 곁들여졌으니, 이건 'Must-See' 아닌가. 극장 대표가 시사회 시작 전에 나와, 이 영화를 위해 스크린과 음향을 다시 교체했단다. 괜히 뭉클해진다. 사라지는 것에 마지막 생명감을 부여한 그 정성(!)과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져서. <더티 댄싱>의 간택은, 내 또래인 듯한 김은주 대표의 추억과 경험 때문이란다. 중학생이었던 그가 재개봉관에 숨어 들어가 <더티 댄싱>을 보면서 춤과 노래에 반했고, 그 잊을 수 없었던 짜릿함 덕분에.

어쨌거나, 나는 온전하게 <더티 댄싱>을 느끼기 위해, 맨 뒷자리에 넉넉하게 앉았다. 극장의 모든 것을 흡수하기 위해. 불이 꺼지고, The Ronettes의 'Be My Baby'가 흘러나오면서 영화가 시작되자, 나는 심장이 살짜기 벌렁거렸다. 오오오, 이건 무엔가. 무에타이 콩따꽁. 커흑, 뽀송뽀송 제니퍼 그레이와 울럭불럭 패트릭 스웨이지의 앳띤 모습도 반가웠다. 이야기는 역시나 촌스럽고, 빤히 알고 있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당신도 알다피시, 그건 <더티 댄싱>에 전혀 중요치 않다. 나는, 서서히 빠져들었고, 몸을 들썩이고 탭을 구르고 있었다. 눈은 즐거웠고, 귀는 기뻐했으며, 코는 씩씩거렸다. 킁. 그래, 맞다. <더티 댄싱>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보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영화임을 다시 확인했다. 더불어 춤추고 싶었다. 부비부비. 전혀 야하지 않고, 즐거울 뿐인. 더구나, 클라이막스에선 정말 찡했다규. 쟈니와 베이비가 '(I've Had) The Time Of My Life'에 맞춰, 그 보수적인 시선들과 맞설 땐. 그래, 그땐 1963년이라고 했다. 케네디 대통령이 죽은 해이고, 비틀즈가 미국 땅을 밟기 전 해. 보수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창궐하고 있던 때였겠지. 뭐, 그런거야 중요치 않고, 다시 보는 그 장면이 어찌나 뭉클하던지. 그 뻔한 스토리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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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구구절절 썰이 길었다만, 일단 영화를 보라.
당신의 감성 노화를 혹은 감정불감증을 테스트하기에 딱 좋은 영화다.
심장이 뛰고, 발을 구르게 된다면, 걱정은 잠시 뒤로 미뤄도 좋고,
이미 감성 노화에 접어들었더라도, 어쩌면 불같은 감성의 격발을 경험할 수도 있겠지.
뭐, 아무래도 아니라면, 당신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닐지도 몰러. ^^;;;

아참, 그리고 1988년 '미성년자관람불가'였던, 우리 아해들의 야한 영화는, '15세 관람가'로 재개봉 된다.
1980년대 우리의 야함이 얼마나 쪽팔린 기준이었던가,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더티~'하고 싶다. 오~ 베이비~~

23일부터 드림시네마에서 폐관하는 그날까지, <더티 댄싱>은 함께 한다.
극장은 '추억'컨셉트에 맞게 1980년대 레코드판이나 영사기 등을 꾸며놨다. 관람료도 20년 전과 같은 3500원!
당신은 혹시 재개봉했으면 하는 영화가 있는가? 제대로 대면, 이런 제대로 된 키스를 해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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