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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무비일락

영화의 아름다움을 덮는 현실의 잔인함!

by 낭만_커피 2012. 6. 24.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의 버스. 일부러 볼 생각은 아니었다. 바깥을 보고자 옆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는 순간, 문자가 들어왔다. 이별을 통보한다.  

 

'오빠랑 성격이 안 맞는 것 같아. 더 이상 만나지 말자. 연락하지 마.'

 

힐긋. 옆에 앉은 여자의 표정을 본다. 무덤덤한 듯 짜증이 섞인 얼굴. 물론, 그 뒤에 일렁이는 감정은 또 다른 물결이리라. 헤어짐 앞에 무덤덤과 짜증은 제3자의 남의 속도 모르는 지껄임일 테니. 오빠라는 남자, 전화를 시도했으나 여자는 받지 않더니, 전원을 꺼버렸다. 본의 아니게, 헤어지는 연인들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상황?

 

그냥 궁금했다. 다시 힐긋.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쓸쓸해 보였다. 어떤 생각들이 여자를 헤집고 있을까. 알 수 없었지만, 사랑이 깨지는 세계는 슬픈 표정일 것이다. 그들에게 세상은 가혹하다. 트루먼 카포티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 

 

그들에겐, '멈춤'이 필요하나, 세상은 무심한 듯 시크하다. 젠장, 내가 다 슬프네.   

 

그 상황이 참으로 묘했던 것은, 애틋하고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만나고 직후였기 때문이다.

<스롤란 마이러브>. 캄보디아에서 펼쳐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어떤 실화였기에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냐!

  

 

남자는 대학 졸업 후 캄보디아로 배낭여행을 온 독일 남자.

여자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거리에서 몸을 파는, 에이즈에 걸린 캄보디아 여자.

장난 같이 시작한 사랑, 그러나 남자, 여자에게 모든 것을 바친다.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다. 캄보디아판 <너는 내 운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허나 만듦새, 구성 등 영화는 허술하다. 

그토록 애절한 사랑이건만, 영화는 극적인 소재의 무게감에 턱도 없이 모자란다.

어설프게 소재를 휘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극중에선 벤이 스레이케오와의 사랑을 지키겠다는 결연함의 계기나 이유가 크게 와닿진 않는다. 

왜 그가 그토록 매달리는지, 왜 저토록 백방으로 애를 쓰는지, 

그녀에 대한 사랑을 충실하게 그려주지 못했다. 

오로지 신파와 감정적 접촉으로 뒤범벅한다.   

 

그럼에도 나는 묵묵히 그들을 지켜봤다. 

벤(데이빗 크로스)과 스레이케오(아핀야 사쿨자로엔숙)의 사랑을 흡입했다.

첫 눈에 빠진 사랑을 믿으니까. 그것이 때론 생의 모든 것이 될 수 있음을 아니까.

그녀가 생계를 위해 몸을 판다는 것을 알아도,

그녀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들어도,

벤이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가 그녀를 살리기 위해 애를 쓸 수밖에 없음을 바라본다. 

살다보면 그 무엇으로도 설명하거나 타인을 이해시킬 수 없는, 그래야만 하는 사건이 온다. 

물론 벤도 짜증도 내고, 슬픔을 억누르기도 한다. 사람이니까.

그래서 지켜봤고, 끝까지 그들을 응원했다. 그것을 사랑으로 봐야할지 헷갈렸지만.

 

스레이케오를 연기한 아핀야는 태국의 유명 배우라는데, 참 귀엽고 사랑스럽다.

벤의 데이빗은 <더 리더>의 바로 그 어린 남자다. 어느덧 훌쩍 큰 청년이 됐다.

 

극중 성격도, 문화도, 국적도, 그 모든 것이 다 다른 두 사람은 사랑을 하고, 헤어짐을 거부하더라만,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확인했던 버스 안. 문자(디지털) 통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헤어짐의 방식. 그렇게 당해 본 나는,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지 안다.

 

문자 통보를 당한 그 남자. 여자에게 어떤 잘못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별의 방식 때문에, 나는 그 남자가 아팠다.

영화는 잠시 아름다웠지만, 세상은 잔인하구나.

 

아, 그나저나 나는 캄보디아에 갔을 때,

스레이케오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왜 만나지 못했을까. ㅠㅠ

팔자로다.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