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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무비일락

유쾌함과 불쾌함의 동거

by 낭만_커피 2012. 6. 29.

Bad Boys. 직역하면, 나쁜 녀석들. 하지만 우리는 스크린을 응시하기도 전에 이미 안다.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되레 나쁜 적을 검거하고 섬멸하는 '착한' 우리(?) 편이다. 그들은 정의(正義)와 선(善)의 편에 있(다고 주입 받)는 경찰이며, 그들의 종횡무진은 악(惡)을 없애는 정당한 작업이자 활동이다. 그들은 물론, 현실에서 늘 만날 수 있는 비리(非理)와 결탁한 무적 경찰도 아니다. 그냥 '우리' 편이다.


그렇다면, 왜 '나쁜(bad)'이란 수식어를 선사했지? 심각하게 생각할 이윤 없겠다. 그저 웃고 즐기자는 레토릭이다. 일종의 반어법? 표현하려는 내용과 반대되는 말을 통해 어떤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 아마도 이런 표현 효과를 통해 그들이 '좋은 녀석들(Good Boys)'임을 주입시키고자 한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들은 좋은 녀석들이 맞을까? 


미안하다. 솔직히 이런 고민, 불필요하다. <나쁜 녀석들2>는 여름 무더위를 날려 보내기 위한 전형적인 블록버스터일 뿐이다. 때리고 부수고 깃발을 높이 들어라.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악을 섬멸하는 것이 아니다. 관객의 아드레날린 지수를 치솟게 하는 것이다. 별책부록으로, 행여 비위에 맞지 않아 성질이 나면 '우싸~'라고 외치면서 '성질 죽이는 법'도 들어가있다. 이래저래, 여름 영화, 맞다.

 

You Guys, Back... Man~


그들을 만나는 건, 여름이 제격이다. 1편 <나쁜 녀석들>의 성공이후 8년, 오래 걸리긴 했다. 성공한 블록버스터 치고는 말이다. 2편이 나오기 8년 전, 빛나는 재담과 익살을 통해 쾌감을 선사해주던 두 악동들. 돌아온 조건은 하나다. '더 커져라, 세져라, 빨라져라'는 주문을 외치며 속편의 룰에 충실할 것.

 


마커스(마틴 로렌스)와 마이크(윌 스미스), 재미난 콤비다. 두 악동, 2편의 출발선상부터 화끈하다. 백호주의에 인종차별을 일삼는 KKK단의 집회에 깜짝 등장한다. 극의 긴장감 단숨에 유발시킨다. 총알, 무차별로 갈겨댄다. 관객을 향한 선전포고다. 보고 화끈하게 즐기시라. 앞으로 나올 영화의 모든 것을 그렇게 규정짓는다.


도로 추격씬이 빠질 수 없다. 전반부 관객의 시각을 압도한다. 무분별한 차량 파괴, 짜릿한 속도감 등을 통해 관객의 재미와 긴장감을 보장한다. 60대의 차량, 150여명의 경찰을 투입했다는 이 추격씬, 페라리의 위용은 유난히 돋보인다(PPL로 추정되지만). 끝내준다. 스크린이 터져나갈 것 같다. 1편보다 더 커지고 세진 증거다.  


더불어 살상과 폭력의 강도에서도 전편을 압도한다. 고어 장면도 태연하게 선보인다. 시체는 거리를 나뒹굴고, 머리 뚜껑이 툭하니 열린다. 주검의 배를 갈라 아무렇지 않게 심장을 들어내기도 한다. 비위 약한 사람, 토 나온다. 너무 나간다. 속편의 중압감에 눌렸다는 증거다.  

 

함께 있을 때 두려울 게 없었다


그래도 이 영화가 유쾌하다면, 두 악동들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만한 입담 덕분이다. 물에 빠져 익사해도 주둥이는 죽지 않고 둥둥 떠다닐 것 같은 현란한 입담. 두 악동, 제리 브룩하이머(제작자)와 마이클 베이(감독)의 자장 안에서 빛을 발한다. 콤비 플레이의 정수다. 


마이크와 마커스. 흑인이라는 인종적 동질감 외에 다른 요소에서는 판이하게 다르다. 과잉․과격(마이크)과 온순․소심(마커스)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가 펼쳐진다. 그건 필연적으로 한쪽의 이탈을 예고한다. 그럼에도, 그들을 묶는 끈이 단단하다. 'Bad Boys For Life'라는 슬로건이 이를 대변한다. 전자양판점에서의 게이 소동이나 마커스의 동생, 시드를 둘러싼 신경전은 둘 사이의 끈적끈적한 관계를 가늠하게 해준다. 삐걱거리면서도 의리, 충만하다. 때론 달라서 더 좋은 사이다.

 

동성애자에 대한 경멸 등 정치적으로 위험한 발언도 존재하지만 블록버스터 유머로 넘길 수는 있다. 물론 그것, 영화의 만듦새와 무관하게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추정하게 만든다. 


어쨌든, 그들은 뭉쳤고 콤비 플레이는 잘 빠진 상품이다. 그들의 화학 작용, '1+1=2'라는 수학적 공식을 넘어선다. 신나고 박진감 넘친다. 아드레날린 팍팍. 함께 붙여 놓으니, 그야말로 두려울 게 없다. 시너지 확실하다. 다만 그들의 찰떡궁합, 과잉 화학작용도 야기한다. 쿠바 반격 작전이 그렇다. 오버였다. 미국의 적성국 쿠바에 대한 감독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방법도 밉상이다. 밉다면 쿠바 정부가 미워야지, 쿠바 인민, 그것도 판자촌에 사는 인민을 무시하는 건, 졸렬하다. 그 잔혹무도함, 불편하다. 그것만 놓고 보면, 그들은 진짜 나쁜 녀석들이다. 똥오줌 구별 못하는 무지의 처사이자 소양 없는 짓거리다. 

 

그래서, 짧지만 불편한 어떤 여운!  


또 있다. 이념에 의한 냉전시대가 일단락된 이후 미국은 '마약'도 적으로 상정해 놓은 것 같다. 허나 그것이 지독히 편향적인 데다 왜곡까지 가세한다. 상업주의와 결탁한 마약에 대한 응징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정작 그들의 의도는 따로 있다. 그걸 교묘히 감췄다. 불편부당하다.


<나쁜 녀석들2> , 1편과 마찬가지로, 마약 카르텔의 소탕 작전에 이야기의 핵심을 둔다. '마약 제조지'라는 설명까지 친절히 곁들여 쿠바의 판자촌을 밀어버리는 무대뽀 과격함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기시감을 느낀다. 대량 살상무기가 있다는 땡깡으로 이라크를 밀어 버렸던 미국의 모습. 바로 오버랩 된다. 쿠바가 왜 그들의 파괴행각에 희생양이 돼야 하는지, 타당성 떨어진다. 적성국? 이념 대립?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더 이상 무기를 투하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이념차 때문에 그럴 리가 없다. 그냥 미국에게 개기는 모든 녀석들이 미운 거다. 졸렬한 미국이다. 많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는 그런 미국의 졸렬함이 DNA처럼 박혀 있다.  

 


또 하나, 마커스가 마약을 우연찮게 흡인하는 것을 보고 떠오른 생각. (마약이라면 극도로 무조건 혐오하는 사람, 읽지 마시라. 심경이 극도로 불편해 질 수 있다.) 개인의 자유는 그 행위가 타인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는 자유주의에 근거했을 때, 마약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는 뭔가 구리다. 물론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를 두고.


마약이 늘 범죄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마약이 가정 파괴니 범죄 유도니, 온갖 해악의 근원인 것처럼 호도하는 건 뭔가 생각해볼 거리가 있다. 물론, 중독의 문제는 좀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지만, 마약류 모두가 중독성을 지닌 건 아니다. 마약이라고 규정된 것을 해서 행여 자해를 하더라도 그것이 범죄로 규정돼야 하는가의 문제. 도덕적인 비난은 가능하겠다. 그러나 법적인 제재는 우습지 않나? 순수한 개인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권리장전 중 하나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 개인에게 실존의 책임을 안겨준 의미가 있었다.


마약을 굳이 옹호하기 위한 발언은 아니다만, 마약이 너무 일방적으로 매도 당하는 건 불편하다. 가령, 1960년대 문화적 자유주의를 상징했던 도어즈, 특히 짐 모리슨. 그(들)에게 문화적 자유주의의 질료는 마약이었다. 고종석 선생에 의하면, 이들의 문화적 자유주의는 기성체제의 갑각을 깨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자유주의로 뻗어나갈 에너지를 내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시인이자 화가였으며, 앙드레 지드의 문학적 선양을 받았던 미쇼의 경우, 자신의 예술 세계를 정신의 한 극점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마약복용을 했다. 마약복용, 반드시 비난만 받아야 하는 걸까?


아, 오해는 마라. 예술성 발현을 위해 마약 복용을 해야 한다는 것, 아니다. 면죄부라고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개인의 영역 안에서 마약소지 혹은 복용이 범죄의 요소가 되는 게 정당한가를 묻는 것이다. 함께 고민해볼 수 있지 않느냐는 제안이다. 그래서 이땅에서 대마초가 받는 대접을 생각하면, 대마초가 안 됐다는 생각도 든다. 대마초, 무조건 마약이다. 왜 마약인지에 대한 논란의 불씨를 지펴도, 지배층은 막무가내다. 무조건 마약!

 

대마초 경험을 한 연예인들도 왠지 불쌍하면서, 한 번쯤 제대로 한 판 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유 영혼을 지닌 예술적 연예인들이 끼를 부려보는 건 어떤가. 대마초를 했다가 발각될 때마다 그들은 죽을 죄를 지은 듯 스스로 범죄자임을 실토한다. 미안하다고 별 생각 없이 사과를 한다. 이런 모습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자유'를 떠올린다.

 

아울러, 그것이 진짜 속마음일까, 가끔 궁금하다. 그러다 죗값(?)을 치르고 복귀할 때마다 왈가왈부 말도 많다. 마약쟁이라는 주홍글씨까지 꼼꼼하게 새겨서 주신다. 과연 우리는 자유를 얼마나 알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물론 무책임한 발언일 수 있다. 연예인들, 여전히 권력 앞에 무기력한 존재들이다. 밥줄 끊기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조용히 수그리고 들어가 자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누구를 위한 것일까. 대중을 위한다면 그러진 않을 텐데. 결국 이 나라의 지배계층이 직조해 놓은 시스템은 허투루 된 것이 아닐세.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