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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그 사람 인 시네마

시월의 마지막 날, 그리고 리버피닉스

by 낭만_커피 2007. 10. 31.
시월의 마지막 날.
그 날이 주는 감상과 함께 찾아오는 한 사람. '리버 피닉스'.

어제밤 이삿짐 정리를 하면서, '아이다호' DVD를 틀었다. 정리를 하면서 힐깃거렷다.
어차피 시월의 마지막 날, 어떻게든 떠오르는 그 사람의 흔적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났다. 아름다워서.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1993년10월31일. 14년이 지났다.
나는 14년을 고스란히 흡수했지만, 그는 이미 박제된 청춘.
9월의 마지막 날은 제임스 딘, 10월의 마지막 날은 리버피닉스.
가을 시즌은 요절한 청춘들의 이야기가 널리 퍼진다.

'아이다호'를 다시 떠올리다. 3년 전 국정브리핑에 긁적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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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이제 인생에 아무런 미련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의 삶 자체가 매우 피곤한 것이었고,
또 그렇게 사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습니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피곤의 연속이며 기후 또한 참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우스꽝스러우리만치
격렬한 슬픔에 빠진다 할지라도 스스로 생명을 단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도 평생을 살아가면서 몇 년쯤의
참된 규칙을 가져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이 단 한 번으로 끝난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사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하라르에서 쓴 ‘랭보’의 편지 중에서 -

◆ 또 다른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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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호> 포스터

어쩔 수가 없다. 그 10월 31일이 오면. '또!'냐는 소리가 나와도, 어쩌란 말이냐. 가슴 속에서 서걱거리는 바람소리를 듣자면, 가을 낙엽의 방랑에 눈길을 주자면, 희뿌연 거리의 표정을 보자면, 관념은 하염없이 부유한다. Fly Fly~ 그리고 꽂힌다. Feel Feel~ 두 사람. 이 즈음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두 사람. 바람구두를 신은 그 사람들 말이다.

얼마 전 10월 20일 탄생 150주년을 맞았던 아르튀르 랭보의 방랑은, 37년의 삶을 지옥에서의 한철처럼 살다가, 지난 11월 10일에 종결됐었다. 바람구두를 신고 훌쩍 생을 마감했던 그처럼 또 하나의 바람구두는 리버 피닉스의 몫이었다. ‘아~ 피곤해’하며 길바닥에 철퍽 드러눕고선 일어나지 않은 바람구두.

역시나 아이다호로 가는 길은 너무 멀고 피곤했다. 10월 31일은 어쩌면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어쩌면 그리 랭보의 삶과 죽음 사이에 끼인 날을 택할 수 있는가 말이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 마음의 고향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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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 그 날 리버를 떠올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다. 

‘열일곱에 방탕할 것을 권고’했던 랭보의 말을 뒤늦게 섭렵했기 때문일까. <아이다호>의 마이크(리버 피닉스)는 길 위에서 ‘오만방탕’하게도 흐느적거린다. 초점 없는 눈빛과 휘청대는 발걸음. 안식처를 잃은 마이크는 바람구두를 신고 거리에서 부랑한다. 부랑부랑방탕방탕. 마음의 안식처를 찾지 못한 이들의 필연적인 행보다. 또한 집시의 피를 물려받은 자에겐 숙명과도 같은 궤적이다.   

선택은 결국 하나다. 마음 깊은 곳의 ‘어머니’를 찾아 떠나는 아이다호행. 포틀랜드의 사창가에서 몸을 팔아 고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건 더 할 짓이 못된다. 그런데 유일한 이정표라곤 사막 한 가운데 자리한 아담한 집과 끝없이 뻗은 아스팔트뿐이다. 긴장하면 갑자기 혼수상태로 빠져드는 기면발작증 환자인 주제에 기어코 길을 나서는 그 똥고집은 어떻고.

그나마 스콧(키아누 리브스)의 동행이, 이 젊은 날의 고독과 아픔을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 탈출구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 부서지는 청춘의 자화상

여느 청춘이라고 다르겠느냐마는 마이크는 유난하다. 고아나 다름없는 신세, 남창에, 부랑자에, 기면발작증에, 동성애까지. 어느 하나 건조하고 동정 없는 이 세상으로부터 냉대 받지 않을 요인이라곤 없다. 과연 길이라고 그를 환대해줄까? 하지만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기 위해서라도, 빼앗긴 젊음과 고독한 삶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그 길은 필요하다. 그건 마이크의 길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뭐, 스콧이 있다고? 정말 녀석을 믿었나보지? 포틀랜드 시장 아들로 뭐하나 부러울 것 없이 자란 녀석의 응석을. 스콧의 스트리트 라이프는 그저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다. 녀석에겐 물려받을 ‘유산’과 세습될 ‘계급’이 있다. 그건 어떤 상황에서도 그를 지탱할 배경이자 뚜렷한 한계다. 결국 녀석은 냉정하게 내치면서 배신하지 않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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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와 스콧은 포틀랜드 사창가에서 만나 친구가 된다.


그나마 스콧 아버지와 부랑자의 대부인 밥이 공교롭게 같은 날 장례식을 치루는 날, 두 사람의 눈빛은 ‘서로의 길이 다름’을 깨닫게 해준다. 두 사람의 교차하는 눈빛. 마이크는 슬프도록 서글펐고, 스콧은 차갑고 냉정했다. 청춘은 그렇게도 부서진다, 부서진다, 부서진다...

◆ 해브 어 나이스 데이

“Have a nice day” 그런 날을 기다리는 마이크. <아이다호>는 마이크의 삶을, 길과 중첩시켜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그런 나날을 형상화한다. 툭하면 쓰러지는 마이크의 모습은 영화의 끝까지 등장하고 그의 신발, 그의 육체가 각기 다른 차에 실려 또 어딘가로 나선다. “Have a nice day”는 또 그렇게 마이크의 알 수 없는 여정에 대한 의례적인 인사처럼 들러붙는다. 멈추기 위해 그렇게 쉴 새 없이 길을 떠나고, 감식하는 그 남자의 아이러니.

묻고 싶었다.

기면발작증을 일으켜 픽픽 쓰러지는 마이크의 모습이 결국 리버가 아스팔트 위에서 맞이한 차가운 죽음과 오버랩될 수밖에 없지만, 그건 정말 어쩔 수 없지만, 아스팔트가 차갑지도 않더냐, 그렇게 잠이 오더냐,고 말이다. 이제 제대로 길을 찾았냐고 말이다. 추워, 추워, 추워...

◆ 보고 싶다... 듣고 싶다...

<아이다호>는 천상 한 여인도 떠올린다. 라디오 방송에서 리버 피닉스의 죽음을 이야기하다가 애처로이 울먹이던 그 여인, “리버 피닉스의 <아이다호>, 정말 좋지 않으세요”라며 느.닷.없.는. 질문을 던지던 그 여인, 소외받은 영혼들에게 끊임없는 애정을 보여주고, 영화와 세상의 연결고리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혀 넌지시 건네던 그 여인. 고 정은임 아나운서.

그로 인해 <아이다호>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종의 컬트로 소수에 의해 회자되던 이 영화를 작은 목소리, 큰 울림으로 알려주었다. 갑작스런 사고로 이승과의 인연을 끊었던 그도 우연찮게도 ‘길’을 그 배경으로 했다. 어쩌면 그렇게 좋아했던 리버와 <아이다호>와의 인연 때문이었을까. 하늘은 이제 그녀에게 더 이상 경계가 되지 않았고, 리버와의 만남은 성사됐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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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호로 가기 위해 마이크는 끝없이 나 있는 길 위를 걷고 또 걷는다.


하지만, 박제된 것이 아닌 그녀의 생생한 목소리가 너무도 듣고 싶고, 단 한순간, 짧은 찰나가 될지라도 길 위의 감식자였던 리버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그것이, 길 위에 여전히 남아 단 한번의 삶을 꾸려나가는 자의 이루지 못할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