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 유약했다. 눈빛에서도 그것은, 드러났다. 그러나 의외의 강단이 있었다. "오 캡틴, 마이 캡틴"(<죽은 시인의 사회>)을 외칠 때, 나는 완전 뒤집어졌다. 감동도 만빵 우적우적. 영화관에 책상이 있었다면, 냉큼 올라갔을 게다. 당시, 나는 '토드 앤더슨'이 되고 싶었다. 영화 속 토드처럼, 나도 그때, 고등학생이었다. 소년은, 세상과 처음 그렇게 맞장을 떴다. 여리고 내성적이었던 소년의 흔적.
이 남자, 솔직하고 개구진데다 능글능글했다. 기찻칸에서 처음 본 여자에게 눙치더니, 자신의 목적지에 여자를 내리게까지 만들었다. 그리곤 원나잇스탠드까지. 진정한 '꾼'의 자세닷! '제시'는 오래 산 부부의 권태감을 얘기하고, 사랑과 로맨스를 때론 회의했다. 그러면서 사랑을 긍정하는 '셀린느'와 죽을 딱딱 맞췄다. 해 뜰 때까지 산책과 수다로 충만했던 그들. 당시, 나는 '제시'가 부러웠다. 기차를 타고, 유럽여행을 하고 싶었다. 특히, 독일어를 쓰는 중년부부가 말다툼을 벌이는 칸에. 그리곤 기차에 그녀를 태워보내며, "9번 트랙, 6개월 후 6시"(<비포 선라이즈>)를 기약하고 싶었다. 영화 속 제시처럼, 나도 그때, 20대였다. 청년은, 로맨스와 그렇게 마주했다. 젊고 생기발랄한 청춘의 표상.
이 남자, 우수와 그리움이 깃들어있었다. 움푹 파인 눈가와 주름 자글자글한 미간. 찬란했던, 그러면서도 유약함을 품고 있던 미모는, 세월에 깎여 까끌까끌. '이토록 뜨거웠던 순간'을 관통하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형의 모습이랄까.^^; 지리멸렬하고 섹스리스와 다름없는 윤기없는 생을 힘겹게 지탱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9년 전과 달리 이제는 로맨스를 옹호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제시'처럼 파리를 거닐고 싶었다. 오래된 로맨스를 품고서. 그리곤, 어떤 노래를 들으며, "I know..."라는 말을 툭 던지고 싶었다. 영화 속 제시처럼, 나도 그때, 30대였다. 청년과 중년 사이에서, 현실은 촘촘히 생을 옥죄고 있었다. 그럼에도, 까르페 디엠(Carpe Diem)
그래, 나 역시, 에단 호크와 '같이 늙어가는 처지'이다. 10대 <죽은 시인의 사회>부터, 20대 <비포 선라이즈> 30대<비포 선셋>. 그리고 이후에 올 무언가. 특히나 <비포~> 연작은 내 20대와 30대의 감성과 로맨스를 지배하는 중요한 영화포인트. 내 생애 후일담이 가장 궁금했던 영화, <비포 선라이즈>와 9년 후 어쩌면 가장 세월을 현명하게 머금은 영화, <비포 선셋>은 그래서, 내겐 너무도 소중한 영화. 톰 크루즈과(科)는 아니지만, 에단 호크는 독특한 꽃미남이었다. 그 유약해뵈는 눈빛에선, 슬픔과 외로움이 늘 한켠에서 묻어있었다. 마냥, 세월을 먹은 것이 아님을 드러낸 눈빛의 진화. 세월의 농익음이, 현실의 고단함이, 시간의 잔인함이...
너에게, 에단 호크를 권한다. 물론, 소설보다는 영화. 나도 에단 형의 소설은 못봤으니까.^^;
에단 호크와 동년배라는 김혜리 씨네21기자의 맛깔스런 대화록. 찬찬히 에단 호크를 느껴보시라~
☞ <비포 선라이즈> 이후 12년, 에단 호크가 동년배 기자와 필담을 나누다
☞ X세대 스타에서 중견배우로, 에단 호크의 뜨거운 순간들
<이토록 뜨거운 순간>도 그래서, 기대!
그리고 또 언젠가, 좀더 에단호크에 대해 풀어볼께. 내가 간직하고 있는 에단 형에 대해.
근데, 뭐니뭐니해도,
입술이 뽀개질 정도의 이 강렬한 키스~
나도 기차역 플랫폼에서, 떠날 기차를 앞에 두고, 절절한 이 키스를 하고 싶어~^^;
☞ 2007/10/22 - [메종드 쭌/사랑, 글쎄 뭐랄까‥]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루를 떠올리다... <비포 선라이즈>&<비포 선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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