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4년 전, 별 하나가 하늘로 솟았다. 매염방(메이옌팡). 앞서 8개월여 전, 스스로 안녕을 고한 절친한 친구, 장국영의 뒤를 이었다. 자궁경부암이라고 했다. 2003년은 그랬다. 장국영, 매염방... 나는, 내가 관통한 어떤 시대가 접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열렬한 팬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내 홍콩영화의 한때와 궤를 같이했던 스타였다. 그들의 몸짓과 솰라솰라에, 나는 눈과 귀를 쫑긋거렸다.
매염방은, 어째 좀 무서웠다. 인상이 강렬해서였을까. 왕조현, 종초홍, 장만옥, 임청하 등에 비해 호감도는 솔직히 떨어졌다. 그래도 꾸준히 내가 만난 영화에서 그는 등장했다. <인지구> <반생연> <미라클> <홍번구> <심사관> <신조협려> <영웅본색3> <금지옥엽2> 등등. 그리고, 우연찮게, 국내엔 개봉도 않은, 마지막 유작이 된 <남인사십>을 봤다. 그는, 내 호감도와는 무관하게 홍콩에서, 아시아에서 대스타였다. 한국에도 1번 왔었다. 88올림픽이 열리기 전의 행사에서. 그는 결혼을 않았다. 새로운 생활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단다. 죽기 전 2003년 생애 마지막 콘서트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는 평생 결혼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말도 남겼단다.
그런 그는 생전, 언론과의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했단다. "내가 이일을 그만둔 후에 나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지 모르겠어요. 내 소망은 사람들이 하늘의 별을 볼 때 내이름을 떠올렸으면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는, 소망은 이룬 셈이겠다. 오늘 누군가는, 차가운 기운 속에서 별을 보며, 매염방을 떠올릴 테니까. 저 구름 위에서, 절친한 오누이 사이같던 장국영과 함께, 구름 아래를 쳐다보면서 웃음 지을지도...
아래, 3년 전, 그의 1주기를 맞아 긁적였던 글. 다시 끄집어냈다. ==========================================================
저물어가는 한해. 13월, 14월이 아닌 이제는 2005년이라는 새로운 주기를 맞이해야 할 길목. 더 이상 디딜 곳도 거의 남아있질 않고 지나간 날들에 대한 기억들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시기다. 가는 해를 잊기 위한 사람들의 들뜬 몸부림과 외침, 그리고 오는 해를 맞이하려는 설렘과 기대가 교차하는 즈음.
12월의 끝머리는 그런 시기다. 1년 전도 마찬가지였다. 2003년의 마지막을 하루 앞둔 날, 바다 건너 해외에서 온 소식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한 시대의 접힘에 방점을 찍었다.
'2003년 12월 30일 홍콩 배우 매염방 사망'
살아생전 도도한 표정의 매염방, 그녀는 늘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이면에는 쓸쓸함과 슬픔을 품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달뜬 세밑 풍경 속에서 홀연히 날아든 그녀의 죽음. 그해 봄 장국영의 죽음에 이어 그녀가 2003년을 마무리 지었다. 한해가 지나고 또 다른 해를 맞으며 자연스레 먹는 나이는 그저 숫자가 쌓이고 있다는 관념일 수 있다. 오히려 아이의 성장과 누군가의 죽음이 내게 세월의 흐름을 알려주곤 한다. 두 배우의 죽음이 겹쳤던 2003년의 풍경은 그래서 ‘한 시대가 저물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한 시대의 영화를 풍미했으며 학창시절과 함께 했던 그들의 죽음 앞에 문득 ‘나이듦’에 대한 단상이 뽀로롱 피어나기도 했다.
4살 때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매염방(1963년 출생)은 1982년 홍콩의 대중음악 경연대회인 신수가창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공식적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1984년부터 영화 출연했고 1987년 장국영과 함께 나온 <인지구>를 통해 본격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해 <영웅본색3> <심사관> <금지옥엽2>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그녀 역시 1980~1990년대 홍콩영화의 전성기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3년 자궁경부암에 걸린 사실이 알려졌고 결국 그 해의 막바지 41살의 나이로 장국영의 뒤를 따랐다.
<연인>, 매염방을 기억하다
그리고 1년. 그 흔한 세밑 풍경 속에서 그녀를 떠올리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1년 동안 그녀의 빈 공간을 느꼈던 적도 있다. 장이모우 감독의 <연인>은 엔딩 크래딧에서 ‘매염방을 추모한다’는 글귀를 아로새겨 놓았다. <연인>에서 비도문의 두목 역은 애초 매염방의 몫이었다. 지병을 앓고 있음에도 그녀는 마지막 연기 투혼을 불사르고 싶어 했다. 장이모우 감독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중요한 배역을 맡겼고 함께 캐스팅된 유덕화도 그녀에게 찬사를 보냈다.
힘겹지만 최선을 다해 촬영에 나섰던 매염방이었지만 병세 악화 앞에 도리가 없었다. 촬영 도중, 그녀는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고 결국 사망에 이르고 말았다. 매서운 겨울바람 앞에 그녀의 의지는 눈 녹듯 스러졌고 장이모우와 유덕화의 우정도 더 이상 그녀를 지탱하기엔 힘겨웠다. 그리고 수많은 팬들에게 슬픔을 선사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연인> 제작진은 매염방의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고 한다. 중요한 배역이었음에도 대역을 구하자는 의견에 <연인> 제작진은 비도문의 두목에게 삿갓을 깊게 눌러 써 얼굴을 보이지 않게 했다.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까지 그녀의 혼을 남겨두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게라도 그녀가 <연인> 속에서 살아있게끔 만들었다. 필름 어디에도 그녀는 남아있지 않지만 연인의 제작진은 그녀가 <연인>에 출연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다.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 속밖에 없다는 말은 그렇게도 적용된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녀는 어쩌면 또 다른 생명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인>의 내러티브가 휘청거린 것도 어쩌면 그녀의 부재가 한몫했다는 것이 그래서 수긍이 간다.
살아생전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난 그 때…
'남인사십' 포스터
그리고 우연찮게도 200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남인사십>이 그녀의 유작임을 알았다. 물론 이 영화는 국내에서 개봉되지 않았다. ‘영화제’란 통로를 통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그런 영화들이 있는데 <남인사십> 역시 그랬다.
홍콩 뉴웨이브를 이끈 대표적 여성감독 허안화,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 홍콩 느와르의 한 축을 담당했고 ‘4대 천황’의 한명이었던 장학우, 그리고 매염방이란 타이틀에도 불구, 이미 꺾여버린 홍콩영화의 위상과 영화가 가진 톤을 감안하면 국내 극장 개봉은 어려울 듯싶었고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옛 사랑의 그림자 속에서 가냘픈 한숨을 내쉬던 매염방의 모습이 아로새겨진 영화였다.
영화는 그랬다. 그냥 우울했다. 평온한 가정에 불현듯 엄습해온 과거의 그림자와 새로운 사랑에 중년의 남녀는 흔들린다. 호수처럼 잔잔한 일상에 던져진 돌은 두 남녀의 안온한 일상에 금을 긋는다. 세월을 머금은 장학우와 매염방은 어느덧 원숙함을 드리우고 있었고 그들을 통해 나는 세월과 사람살이를 엿보았다. 그리고 도돌이표처럼 되돌아오곤 하는 세월의 무심함도 느껴야했다.
남자 나이 ‘40’. ‘불혹’(不惑),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이. 20∼30대 불안과 열정의 시기를 넘어선 자들에게 붙는 타이틀이다. ‘중년’이란 이름으로 그들은 청년과 장년의 시기에 이음새를 매듭한다.
그런데 최소한 한국 사회에서 40대란 시기가 좀 우울하다. 40대의 돌연사(과로 등에 의한), 암 발병률 등이 세계적으로 가장 높다는 통계에서부터 가정과 직장의 압박. 사회제도와 별다른 마찰 없이 살아왔다손 치더라도 40대가 가지는 일상의 무게감은 만만치 않다.
이와 함께 ‘중년의 위기’란 말도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위기의 시기에 닥치는 유혹은 과연 개개인의 몫으로 남겨야 할까. 대개의 40대가 지닌 위치는 사회적으로나 가정에서나 왠지 샌드위치처럼 압박을 받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떤 유혹과도 절연하고 넘어가지 않는다는 ‘불혹’이란 타이틀은 뼈있는 농담일까, 그렇지 않으면 시대의 변화를 따르지 못한 구닥다리 지칭일까.
<남인사십>은 제목 그대로 40대에 접어든 남자에게 닥치는 일상의 변화를 담담하게 담고 있다. 뻔하디 뻔하게 중년 남자가 여자의 유혹과 맞닥뜨린다는 진부한 통속극을 떠올릴법한 상상이 들만도 하다. 하긴 일상 속에서 떠돌면서 접하고 듣고 보았던 것도 그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남인사십'에서 그녀의 눈빛은 슬픔을 품고 있었다.
40대 남자에게 닥치는 일상의 변화
하지만 영화의 톤은 무심할 정도로 고요하다. 격정적인 중년의 깨우침이나 삶의 변화를 유도하는 동인은 없다. 무기력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인공들은 오르막이나 내리막 없이 평지만 거닐 뿐이다.
설혹 그런 길이 있었어도 그들은 평지와 똑같은 속도로 걸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황야를 거침없이 뛰어다니던 청년의 시절은 어느덧 속도를 조절하는 중년의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무척이나 성실하고 담담한 일상을 가꾸는 40대의 남자. 고등학교 선생님인 람유곽(장학우)은 직분에 충실하고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부자 친구가 쏘겠다는 식사도 더치페이하자고 할 정도로 고지식하고 자신의 중심을 지켜나가는 그에겐 부인, 만칭(매염방)과 두 아들에게도 자상한 남편이자 따뜻한 아버지다.
하지만 평온하기 그지없는 일상의 창문으로 불어 닥치는 바람은 예고가 없다. 안팎으로 한꺼번에 닥칠 때 일상은 흔들리기 마련이다. 아내의 젊은 시절을 연상시키는 그의 제자가 사랑을 고백한다. 이거 웬 로망스인가 싶을지 몰라도 그는 일말의 관심도 없다.
그러나 아내, 만칭에게 첫 사랑의 그림자가 다가선다. 고등학교 시절, 두 사람의 스승이었지만 불치병을 지닌 채 다시 만칭을 호출했다. 당시 만칭은 유부남인 선생님의 아이를 임신했고 그녀를 짝사랑했던 람유곽은 출산을 돕기 위해 함께 산부인과를 찾았다가 결국 결혼에 이르렀던 것.
그리고 아내는 옛 사랑에 대한 마지막 정리를 위해 봉사를 자원하겠단다. 람유곽은 이를 허락했지만 마음은 마냥 그렇지 않다. 분노와 동정심, 혼란이 가중된 그에게 제자는 점점 더 거리감을 좁힌다. 람유곽 역시 그녀의 솔직함과 자유분방함에 익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남인사십'에서의 매염방
람유곽은 간혹 스승을 회상한다.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일깨워주고 인정해 주던 사람. 하지만 세월은 어느덧 스승의 나이만큼 그를 이끌어갔고 석연찮은 재회의 순간까지 도달했다. 스승과 아내 그리고 자신과 제자, 세월은 그렇게 반복적인 길을 재현하고 있다. 간결하면서도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는 어느덧 연륜이 쌓일 만큼 쌓인 장학우와 매염방의 연기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가슴에 품는다는 것
허안화 감독은 되풀이되는 사랑이야기에 숨결을 불어넣었지만 어쩌면 세월은 모질고도 가혹하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했음인지도 모른다. 대만영화 <하나 그리고 둘>에서도 이 같은 그림이 연출된다. 과거로 돌아가서 새로 시작하고픈 주인공에게 현재도 비슷했을 뿐이라는. 악보에 나와 있든 그렇지 않든 사람살이는 되돌이표의 연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임을.
하지만 그들은 각자 자신의 길에 대해 후회할 수 없다. 선택의 순간에 있어서도, 선택 이후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도 스스로 자유로워지지 못함을 알고 있지만 말이다.
매염방의 죽음이후 느낀 것이지만 그녀는 그렇게 자신에게 다가올 시간들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4살에 시작돼 거의 전 생애를 보낸 연예계 생활. 화려하지만 쓸쓸했을 법한 그녀의 모습이 길게 한숨을 내쉬는 만칭과도 겹쳐졌다. 세밑 풍경은 또 한번 그렇게 곡예를 넘는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가슴에 품는 일로 인해 내 가슴 속에도 세월이 켜켜이 나이테를 그려내고 있는가보다. (2004.12.30 국정넷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