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종드 쭌/무비일락

이토록 짜릿한 원나잇이라니, 생은 그걸로 충분해!!

by 낭만_커피 2011. 11. 21.

애원했다. 딱 하룻밤. 원나잇만 같이 보내자고. 격정적이고 격렬하며 가슴 뛸 일이니, 원나잇, 원나잇만!

뭐, 원나잇스탠드? 유후~ 앙큼하게 그런 상상을. *^.~* 최근 팡 터졌던 일화도 떠오른다. 한 어른이 중딩에게 물었다. 호텔에서 파는 게 뭘까요? 중딩 왈, "하룻밤이요." 아, 이 스스럼 없는 직설의 향연. 물론 그것은 원나잇스탠드 아닌 액면 그대로의 것일 게다. 나는 그 중딩의 답변을 전해듣곤 팡 터졌었다. 닳을 대로 닳아버린, 찌들만큼 찌든 수컷남자인 나는 그 질문에 뭐라고 답할까? 도 궁금했다.

그런데, 원나잇을 간절히 원하는 이 남자의 애원은 아들을 향한 것이다. 최악의 아빠였으나, 이번만큼은 잘해보고 싶다는 아빠. 자신이 양육할 수 없는 아들, 부자 이모와 이모부가 양육권을 지닌 아들과 어쩌면 생애 최고로 짜릿한 원나잇을 보내고 싶은 것이다. 그들의 고철덩어리 '아톰(ATOM)'과 함께.

<리얼 스틸>. 사과할 줄 모르는, 고집불통의 전직복서 찰리 켄튼(휴 잭맨)와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팔리기까지 한 아들 맥스 켄튼(다코다 고요)의 엎치락뒤치락 감동작렬 부자(父子)드라마! 라고 규정하고 싶진 않다. 

나는 마냥 부자의 이야기로만 보질 못했다. 둘은 그냥 한대의 고철로봇을 공유한 사업적 파트너이기도 했으니까. 

찰리는 끝내 챔피언엔 오르지 못했으나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던 전직 복서다. 말하자면, 심심한 챔피언보다 버라이어티한 도전자. 지루한 챔피언 벨트보다 반짝반짝 빛나는 도전을 했던 복서. 

뭐, 때로 인생은 그런 것으로도 충분할 수도 있다. 지루하게 챔피언 벨트를 차고 있다가 권태에 빠지느니, 반짝하는 순간을 지니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허나, 그 순간만 움켜쥐고선, "내가 왕년에~" "나도 해봐서 아는데~" 따위만 읊는 것도 참 비루하고 너절한 짓이다. 찰리는 그렇진 않으나 좀 궁색하긴 하다. 은퇴한 뒤 로봇복싱으로 근근히 먹고사는데, 신통치 않다. 시합은 번번이 지고, 돈은 없으며, 사랑하는 여자가 있어도 표현할 줄 모르는 먹통이다.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인생. 99%다.

파트너이자 아들인 맥스의 등장이 그를 달라지게 한다. 그렇다고, 없는 아들이 갑자기 생겼다고 아버지 노릇을 하겠다고 이를 앙 다무는 건 아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달라지는 건, 사소하고 작은 승리에서 비롯된다. 번번이 실패만 하던 그에게 이 사소한 성공은 다르다.

고철더미에서 건진 로봇, 아톰의 처지는 찰리와 다르지 않다. 폐기처분된 것이나 다름없던 아톰에게 파이터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건, 맥스다. 어리지만, 훌륭한 사업파트너. 로봇과 교감할 줄 아는 아이의 마음을 어찌 욕하리오. 그런 어린 시절을 관통했던 자라면. 

그리고 <리얼 스틸>은 익히 예정된 수순을 따른다. 고철 로봇파이터의 승승장구. 비루하고 궁색하던 찰리의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오는가. 맥스의 천진난만함과 우격다짐은 최강 로봇파이터 제우스와의 경기를 성사시킨다. 

생각해보라. 폐기직전의 고철과 세상 모든 첨단(돈)으로 무장한(쳐바른) 명품의 대결. 자, 누구 편을 들겠는가. 의도적이든 아니든, 당신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겠는가. 승패? 물론, 중요하다. 이기고 지고의 문제만큼 99%의 우리를 옥죄는 것이 있으랴. 그런데도, <리얼 스틸>은 그것을 뛰어넘었던 <록키>를 뒤따른다. 모방한다.
 

따지고 보면, <리얼 스틸>은 인생 역전을 꿈꾸는 비루한 자들의 환상이다. 고철더미에서 꽃 피기, 개천에서 용 나기, 그로기 상태에서 카운터블로를 날려 역전하기. 인생 한 방을 바라는 99%의 통쾌한 역전극. 일종의 마약이다. 남들 못해도 너라면 (죽어라 노력하면) 할 수 있다고 살살 꼬드겨 불구덩이로 볏짚 짊어지고 뛰어들게 만드는.

심지어 이 영화, 보수적이다. 실패한 복서 찰리와 버려진 아들 맥스, 고철덩어리 아톰이 뭉친 오합지졸이 거대 자본으로 무장한 최첨단 기술로 로봇복싱계를 주름잡는 제우스(와 기업체)를 상대로 '사실상' 승리한 이야기. 그러니, 번번이 실패하는 니들도 (우리가 던져주는) 희망을 가져!, 라고 말한다.  

뭣보다 거슬리는 건, 아시아인에 대한 나쁜 편견을 은연 중에 주입한다. 제우스(와 기업체) 뒤에 있는,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가기 위해 물리쳐야 할 상대(적)로 묘사한 인물들이 아시아계(인도, 일본)다. 과장된 몸짓과 서툰 영어를 구사하고, 악의 섞인 표정과 비열한 웃음을 짓는다. 백인 부자의 기적을 위해 아시아인을 악인 비슷하게 상정한다. (맞아, 이 영화는 디즈니가 만들었지!)

그렇게 뻔하고 상투적인 이야기인데, 나는 그 고철덩어리 아톰(과 찰리)에게 그만, 우리 99%의 모습을 투영하고야 말았다. 쓰러질 때마다 나는 "Wake up(일어나)"을 외쳤고, 레프트 라이트 어퍼컷, 외치는 프로모터가 됐다. 아톰이 다른 로봇을 제압하거나 제우스가 삐걱거릴 때마다,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아아아아!!!   

<리얼 스틸>은 99%가 1%를 점령하는 내용의 영화다, 라고 하면 새빨간 거잣말이다. 이 영화를 그리 보는 건 오독이다. 그럼에도 왠지 오독하고 싶었다. 이 미친 시대를 정면돌파하기 위해선, 그런 오독의 낭만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아톰이 어퍼컷을 날릴 때, 찰리가 셰도우 복싱으로 복서의 본능을 되찾을 때, 속이 다 시원했다.

두 사업파트너의 짜릿한 원나잇은 그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맥스는 수영장도 있고, 스파도 있는 안락한 부자 이모의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찰리는 좀 더 의기양양해져서 인민의 챔피언(People's Champion) 아톰을 데리고 로봇복싱쇼를 전전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민을 위해서!

(영화의 번역은, 'People's Champion'을 '시민의 챔피언'으로 하고 있었는데, 글쎄 좀 불만이다. people을 인민 혹은 민중으로 해줬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흠...)  

허나, 그러면 어떤가. 그들에겐 그토록 짜릿한 원나잇이 있었는데. 그 한순간으로도 생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게 때론 인생이다. 혹은, 이런 것?

사랑하는 여자에게 키스하기 위해 1200마일을 달려가는 것. 찰리가 베일리(에반젤린 릴리)에게 그랬다!!! 베일리가 물었다. 키스하려고 1200마일을 달려온 거야? 찰리 왈. 그럴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쉬파, 이 오글거림 돋는 대사, 휴 잭맨이 대수롭지 않게 하는데, 이 자가 하니까 오글거림 없이 그냥 깔맞춤이다. 잘 나고 볼 일이군, 된장. 센스, 그냥 돋는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사랑하는 사이인지 아닌지, 다소 헷갈렸던 두 사람의 관계. 이 짧은 장면과 대사로 내겐 모든 것이 정리됐다. 두 사람의 애정이 얼마나 단단한지 엿볼 수 있었던, 그리고 그 한 순간만으로도 충분할 법한 인생. (이정도 여자라면, 나도 그런다, 뭐!!!)

그리고 떠올랐던 한 순간.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에서 워싱턴 시애틀로 내달렸던 그때 그 순간... 그때의 나도 1200마일 정도는 내달린 건 아닐까.  

영화를 보고, 한 마디 툭 던졌다. 복싱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글쎄, 마냥 자신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이토록 가슴을 끓게 하는 복싱, 과거에 분명히 있었고, 지금도 있으리라 믿고 싶어졌다. 슈거 레이 레너드가 이 영화의 복싱 슈퍼바이저를 했단다.

마지막으로 휴 잭맨, 이 남자. 콩으로 팥죽을 쑨다고 해도 믿고 말 이 남자의 얼굴. 멋지다, 이 남자. 울버린은 잊어도 좋다. 이 남자, 이젠 찰리 켄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