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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 for U

당신, 내가 둥지를 틀고 싶은 공간

by 낭만_커피 2011. 10. 9.

(10월9일, 김진숙 위원이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타워크레인에 오른 지 277일째다.
그를 지키는 정흥영, 박영제, 박성호 씨가 오른 지 105일째 되는 날.
)

내가 믿는 것 중의 하나인데, 공간은, 그곳에서 둥지를 틀고 사는 사람을 닮아간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면, 소유하고 재산증식(집을 재테크라고 일컫는 주객전도)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공간은 사람을 닮는다. 꼭 주인장이 아니라도. 다른 말로, 사람은 공간을 변화시킨다. 공간과 사람이 나누는 교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카페를 드나들 때마다, 나는 공간을 통해 사람을 느낀다. 주인이든 일하는 사람이든.   

내가 살고 싶은 공간, 사는 공간이 어때야 하는가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와 직결된 문제다. 무엇이 되기 위해,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공간은 허영의 결과물이며, 허구의 공간이다. 사람을 닮지 못한다. 사람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 공간에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그저 물화된 하나의 상품일 뿐이다. 개별의 인간이 지닌 구체적인 존엄이 묻어있질 않다.

그러니, 내가 둥지를 틀고 싶은 공간은, 내가 온전하게 묻어나는 곳이면 좋겠다. 실은, 공간은 그렇게 변해가기 마련이다. 공간과 교감을 나누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랄까. 그 사람이 지닌 독특한 느낌, 그것이 공간에 묻어난다. 공간이 사람을 품는다면, 사람은 공간을 하나의 개성으로 빚어낸다.


커피향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내가 둥지를 튼 공간은 그래서, 커피향 같은 곳이다. 커피향 같은 곳이라니? 그건 뭔가. 우선, 커피향은 정형화되지 않았다. 어떤 콩을 어떻게 볶느냐에 따라, 혹은 어떻게 추출하느냐에 따라, 그때 기분 상태나 조건에 따라, 향은 각양각색이다. 오늘은 이런 향, 내일은 저런 향,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의 향기 같은 커피 향.

반듯반듯하고 질서정연한 공간은 그래서 매력이 없다. 그런 대표적인 공간이라면, 아우슈비츠를 떠올리면 된다. 획일적이고 정형화된 공간이다. 우리네 많은 아파트 단지가 그렇다. 그러니 하나 같이 똑같은 모습으로만 살고자 한다. 욕망도 뻔하고, 사는 모습도 빤하다. 남들 생각으로 살고, 남들 눈치에 휘둘린다. 개성이 없다. 자기가 없다. 파시스트적 주거 공간 같다. 아파트 공화국의 비극이다. 그걸 획책한 토건업자들의 파시스트성이 놀라울 정도다.  

그러니 커피향 같은 내 공간은, 어디에도 없는 공간이다. 어디에도 없는 내 존재와 다르지 않다. 공간이 크거나 넓을 필요도 없고, 남들 보기에 버젓할 이유도 없다. 베스트가 아닌 온리니까. 그것이 내 커피였으면 하니까. 내 자존감과 그대로 조응할 수 있는 공간, 커피향 같은 나의 공간이다. 

아마도 커피향이 잘 배려면, 낡은 공간이면 더 좋을 것이다. 낡은 건물을 개조한 그런 공간. 소박하고, 화려한 것과도 거리가 멀다. 커피향을 잘 품고 있으려면 목조 건물이면 좋겠다. 커피향의 통풍이 잘 되게끔 길쭉한 공간을 품은 것도 좋겠고. 나는 나무를 다루고 만지는 '목수'가 되고 싶은 생각도 크기 때문에, 내가 둥지를 틀 공간에 쓰일 나무를 직접 자르고 합을 맞춰서 그 공간을 꾸몄으면 좋겠다. 내가 커피를 볶고 내리는 특정한 공간을 커피나무로 조응할 수 있으면 아싸라비야~

그래서 내가 둥지를 튼 공간은 대지 얼마에, 방이 몇 개고, 몇 제곱미터(평)이며, 시가로 얼마라는 말이 필요없다. 그저 내가 묻어나고, 타인을 배려하고 유머가 있는,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즐거움이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 비싸거나 화려하진 않아도, 어디서든 즐길 수 없는 맛의 호사가 풀풀 풍기는 그런 작은 집.

그런 맛의 호사를 위해, 자급자족할 수 있고, 내 좋아하는 손님들을 위해 음식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텃밭만 마련돼 있으면 그야말로 딱이다. 좋은 음식과 커피가 있는 나의 아주 작은 집.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세레나데를 불러줄 수 있는 집. 사랑하는 우리 각자 좋아하는 영화와 책이 공간 곳곳에 자신의 위치를 점하고, 턴테이블에선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와 공간을 채우는 집. 당신과 내가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꽉 찰 수 있는 집.  

그런 호사를 위해 가능한 석유 사용을 극히 줄여야 할 것이다. 지속가능하고, 더 적은 자원을 사용하되 유지하기 더 쉽고 환경에 더 적은 영향을 미치는 적정기술로 집안의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 과거 내가 만들었던 자전거 발전기 등으로 커피콩도 볶고, 세탁기도 돌릴 수 있는 그런. 그리고 휴식 시간, 나는 그녀를 위해 커피를 볶아 뽑아주며, 우쿨렐레로 음악을 선사할 것이다. 효율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고, 재테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구체적인 실존을 담아내기 위한 그릇으로 존재하는 집. 나는 꿈꾼다. 그곳에서 글을 쓰고 커피향을 만들고, 작은 텃밭농부로 살아갔으면 하는 그런 바람.    

사실, 뭔가 꼭 있어야 한다면, 다른 건 필요없다. 오직 당신만 있으면 된다. 당신 하나 만으로 꽉 차는 집이다. 다른 모든 조건들은 그저 거들뿐. '내집마련'이라는 부풀린 허영섞인 신화에 휘둘리지 않고, 사랑과 순간으로 충만한 우리의 공간이자 집. 우리를 닮은 집에서, 집에 우리의 흔적을 하나둘 남기며, 그렇게 살고 싶다. 어쩌면, 당신이 곧 나의 집이요, 내가 곧 당신의 집이다. 당신이라는 집, 나는 그곳에서 살고 사랑하고 잠들고 싶다. 나는, 그런 집, 찾고 있다. 

참, 
집에 이 정도 포스터는 걸려 있어줘야겠다. 
10월9일 체 게바라의 기일에는, 쿠바 크리스탈 마운틴을 볶고 내려서 함께 마시고,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나 <CHE> 등의 영화를 보거나, 체와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쿠바의 흥겨운 음악에 맞춰 함께 살사를 출 수 있는 당신이라는 집. 그런 10월9일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