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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 for U

수운잡방으로 오실래요? : 숲에게 보내는 답장

by 낭만_커피 2012. 5. 8.

그러니까, 이것은 답장입니다. 이제는 케케묵은 골동품 같은 뉘앙스가 돼 버린 편지. 그 편지를 받아들고 찡했던 제 마음의 울림을 담은 답신이죠. 물론 앞서, 제 마음을 흔들었던 《숲에게 길을 묻다》에서 이어진 작은 인연 덕분이기도 하겠죠.


이 편지를 받은 저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숲이 뿜은 피톤치드를 그의 분신인 종이를 통해 받은 기분이라고 할까요. 선생님이 지닌 행운을 나눈 까닭이기도 할 겁니다. ‘제 스스로 찾은 기쁨과 즐거움의 삶의 시간을 재조립시키는 마법’을 볼 수 있어서이기도 하고요.

 

삶의 변곡점. 저도 제게 불쑥 다가왔던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내 선택을 위해 모든 것을 뒤집는다는 것. 그 순간은 각자에게 다른 형태이자 내용이겠지만, 그때의 느낌, 여전히 잊지 못합니다. 그냥 주어진 대로만 살다가는 죽을 것 같아서 탈출을 감행했던 순간. 노예의 편안과 자본의 (거짓)평안을 거부하고 나섰던 순간. 그 순간을 다시 오롯이 기억해낸 것도 선생님의 책 덕분입니다.

 


여우숲을 떠올렸습니다. 선생님을 처음 만나 뵀을 때 상상했던 그 숲.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 접했던 그 숲. 숲 학교가 들어서고 만났던 그 숲. 한때, 서울, CEO... 선생님의 몸과 마음에 묻은 그 기억이 낙엽처럼 썩어서 새로운 삶의 흙이 됐고, 그 흙이 뿌려진 숲은 참 좋았습니다. 그제서 깨달았습니다. 흙 묻었다며 더럽다고 야단치던 도시 어른들의 어리석음을. 저는 그래서 그런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울러 백오산방. 선생님 스스로 짓고, 선생님의 삶을 고스란히 품은 그 집. 저는 아직 도시의 네모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제 살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 그리고 상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압니다.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것이며,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지으면 더 행복하다는 것을.

 

당장은 아니지만, 성급하게도 저는 이미 제 살 집의 이름을 정했습니다. 살짝 알려드리자면, 수운잡방입니다. 조선 중종 때 안동 출신 김유가 지은 전통 요리서의 이름이기도 하지요. ‘풍류를 아는 사람에게 대접하는 특별한 요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제 사는 곳에서 그렇게 풍류를 아는 사람에게만 커피를 비롯해 요리를 대접하고 싶거든요. 


제 소박한 바람은 그것입니다. 선생님의 편지를 읽으며 조금 더 선연하게 그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게 다 선생님을 비롯한 바람잡이들 때문(!)입니다. 백오산방을 비롯, 몇몇 분들이 살 집을 스스로 짓고 그 안에서 스스로 노래하는 풍경을 자꾸 접해서 그렇습니다. 그 분들, 그렇게 살 집을 스스로 짓고, 농사도 짓고, 숲과 자연에 기대 온전한 자신만의 삶을 모색하고 실험하십니다. 저는 그것에 마구 끌리는 학생인 셈이죠.


물론 저는 바지런한 농사꾼은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천성이 한량이라, 온 몸과 마음을 쏟아야 할 농사꾼의 자질에 턱도 없이 모자라서죠. 다만 텃밭을 어떻게든 가꿀 생각입니다. 커피도 퉁퉁 볶을 생각이고요. 그리고 선생님의 기조를 빌리려고요. 내가 만든 농작물과 볶은 커피를 돈으로만 사려는 사람에게 팔지 않을 심산입니다. '따라쟁이'라고 호통 치진 마세요. 하하. 그냥 선생님 생각에 동조하는 한 사람이라고 여겨주세요. 


더구나 그건 제가 결국 하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였다고요. 커피 얘깁니다. 공정무역 커피를 다루면서, 공정무역 커피산지를 다녀오면서, 저는 그만 ‘형님’했습니다. 우리가 먹는 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을 중요시 여겼던 제게, 산지를 직접 다녀온 경험은 또 다른 축복이자, 배움이었습니다. 커피열매 한 톨에 담긴 자연과 농부들의 노고, 하얗게 피는 커피 꽃과 빨갛게 혹은 노랗게 익는 커피 열매의 향기에 감사하는 사람에게만 커피를 팔 수 있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물론 충분하지만, 제 수운잡방엔 더 까탈로 대하고 싶었습니다.


쉽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일회성 결심이 아닌 삶을 송두리째 바꿀 때부터 스멀스멀 스며든 사유입니다. 불가능할 거라고 좌절하지도 않습니다. 선생님의 편지 덕분입니다. 선생님 말씀, 기억합니다. “작은 확신을 실현하는 것조차 온 생애가 필요하다.” 더불어 이것도. “하찮은 소망의 실현도 만만치 않다. 자신을 둘러싼 관계와 억압을 설득하고 깨 부셔야만 얻게 되는 전리품인 탓이다.”


아무렴요. 그래야 한다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것은 언제나 힘들고 쉬이 오지 않는 법이잖아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겨울나기’를 마음에 새겼습니다. 겨울이 온 것을 알지 못하기에 오는 우리의 불행, 겨울엔 간결해지며 버티고 견뎌야 한다는 것에 대한. 지금의 이상야릇하게 뜨거운 봄도 겨울을 견뎠기에 가능했다는 것도.


그리하여 선생님이 말씀하신 성장의 방식, 아니 방식이라기보다 철학에 저도 좀 더 근접조우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 그만큼 투철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니까요. 좀 더 크고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단단하게 다져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비료나 농약을 주어 단기적 성과를 얻는 방식이 아닌 이 땅을 써야 할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것 말입니다.

 

아마 농사꾼이자 숲학교 교장인 선생님도 그렇지만, 커피를 만드는 저도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책에서 말씀하신 것 기억하실 거예요.


“상대적으로 모양은 조금 못났어도 자연의 수많은 은혜로 빚어지는 농산물의 건강한 맛을 인정할 줄 아는 소비자, 여느 공산품처럼 모든 농작물도 최종 가격만을 통해 그 가치가 결정된다고 믿는 것이 아닌, 땅과 햇빛과 바람과 물과 다른 무수한 생명들과의 관계가 빚어내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인정하고 그 모든 것의 수고로움에 감사할 줄 아는 그런 소비자를 만나야 합니다.”(p.68)


사실 저는 이들 소비자 앞에 굳이 ‘착한’이라는 수사를 붙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은 선생님이 말씀하신 ‘인간’보다는 ‘사람’일 테고, 그저 우리들의 동지라고 여기고 싶습니다. 얼마 전 들은 얘기인데, ‘농부로부터’라는 유기농 가게가 있습니다. 그곳엔 ‘생긴 대로 좋아’라는 코너가 있는 모양입니다. 외모지상주의를 타파하는 이 코너, 흠집이 난 과일을 모아서 싸게 파는 자리라고 합니다.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네요.

 

“겉모양새로 가치를 결정하는 시선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세상에는 우리가 여유롭게 누릴 수 있는 것이 한 겹 더 늘어납니다.”


한량이 바라는 포인트가 저기 있습니다. 여유롭게 누릴 수 있는 것이 한 겹 더 늘어난다는 것. 나중에, 제가 꼭 숲에 있는 것이 아니더라도, 있는 곳이 어디든, 제가 견지하고 싶은 것을 담은 이 편지를 한 번씩 들춰보겠습니다.

 

선생님이 자연스럽게 하신 이 말씀, 기억하실 겁니다.  “숲 생활 3년 만에 나는 풀도 나무도 강아지도 모두 생명인 것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놈이 되어버렸나 봅니다.”


저도 언젠가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남의 인생을 살지 않게, 자기다움을 추구하며 살 수 있는 길을 조금씩 만들고 있습니다. 경제적 불편이라는 겨울이 아직 남아 있지만, 저는 생각보다 잘 버티고 견디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을 얻었고, 이런 편지에 감흥 할 줄 아는 사람도 됐습니다. 아주 가끔은 스스로 버티고 견뎌준 것이 대견해서 토닥토닥해주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무언가를 대표하기보다 지키기로 마음먹은 것을 꾸준히 지치지 않고 지켜나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이 편지, 잘 간직하겠습니다. 선생님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여우숲, 참 좋았습니다. 산과 바다, 바람소리는 잘 있는지요? 참 이 책을 읽고 궁금했는데요. 절룩거리던 자자. 눈에 밟히더군요. 

 

자자의 숨결이 깃든 그 여우숲, 저는 참 좋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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