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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 for U

"연애는 혁명이다"

by 낭만_커피 2011. 1. 3.
혁명도, 보수화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혁명을 하지 말아야 할, 혁명이 일어나선 안 될 이유는 아니다. 언젠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산다. 혹은 살아간다. 또 어떻게든 끝날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에 빠진다. 혁명이 보수화되는 건, 혁명이 영원히 필요한 까닭이기도 하다. 보수화된 무엇을 뒤엎는 것이 혁명이니까. 

“OOO 공항에서 노트북은 되고 데스크톱은 안 된다는 거예요. 무슨 차이냐고 물으니 관광객이면 노트북이면 충분한데 너는 살러온 거 아니냐고 따지더군요. 학생비자로 바꿀 거라고 하니 학교 사인을 받아오라데요. 일단 학과장 사인을 받아가니 대학총장 사인이 필요하다고 하고, 그걸 받아가니 교육부 장관 사인을 받아오래요. 그러면서 OO를 알게 되었어요. 힘센 사람의 ‘빽’과 돈이 움직이는 나라라는 걸.”

어디 이야기일까. 조금은 놀랍게도, 혁명 52년의 나라이다. OOO은 하바나이며, OO은 쿠바다. 다를 줄 알았던 그곳이건만, 방금 언급한 에피소드는 여느 자본주의 국가와도 다르지 않은 단면이다. 극단적으로 지금, 쿠바에 남은 건, 춤과 음악뿐이라는 얘기도 있다.

"혁명은 50년 전에 끝났다. 지금은 사람들은 일하는 척하고 정부는 월급을 주는 척할 뿐이다. 쿠바는 모두가 가난하고 논리적인 게 하나도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춤과 음악뿐이다." 다큐 <쿠바의 연인>에 나오는 쿠바인들은 이리 말한단다.


그러고 보니, 그 말은 80년대 소련을 위시한 동구유럽의 몰락이 눈에 띄게 진행되던 그 시절에 널리 퍼졌던 냉소였다. "우리는 일을 하는 척하고 그들은 보수를 주는 척한다"는 웃지 못할 우스개.

그럼에도, 남다은 영화평론가였던가, 세상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아파하는 것이 좋은 어른이라는 말, 함께 겹친다. 세상이 목을 죄어도 버텨야 한다는 것. 무엇인가 변할 때까지 견뎌야 한다는 것. 세상은 쉽게 변할 수 있다고 다독이는 대신, 그래도 이 세상을 버텨야 한다고 말하는 어른. 그런 어른들이 있다. 나도 언젠가, 그런 어른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쿠바의 연인>은, 그렇게 혁명 보수화의 길을 거닌 쿠바도 담았지만, 쿠바가 아직도 버틸 수 있는 이유를 말해주는 것 같다. 정호현 감독의 말이다. "길이 막혀 10분 걸릴 거리를 30분 걸려서 가요. 나는 열받는데 오로(정호현 감독의 쿠바인 남편)는 우리가 같이 있는데 왜 화를 내냐는 거예요. 지나간 거나 다가올 거보다 지금이 중요하다는 거죠." 아, 그래. 함께 있다는 것, 지금이 중요하다는 것. 

아울러, 많은 쿠바인들은 이렇단다. 가족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한없이 따뜻하지만 서로의 선택을 존중해서 간섭이 없고, 이웃들은 그런 가족이 확대된 것이다. 5분이면 걸어갈 거리를 이웃들과 일일이 손잡고 이야기하느라 30분이 걸리기도 하고.

매해 신년 무렵, 내가 쿠바를 꿈꾸는 이유다. 1959년 1월1일 혁명과 함께 그 혁명이 보수화된 곳, 쿠바. 그럼에도 나는 혁명을 꿈꾸기 위해, 아니 춤과 음악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내 사랑하는 이와 함께 쿠바를 거니는 '지금'이라면, 그것으로도 나는 혁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낭만일 수도 있는 꿈.

그래, 새해로구나. 쿠바가 다가온 것을 보니. 크리스탈 마운틴을 마시며, 쿠바인들의 춤과 음악에 함께 어깨춤을 들썩이는 꿈. 그 어느 해, 1월1일을 쿠바에서 만날 것을 고대하는 꿈.


맞다. 지금 내겐 3개의 쿠바가 대기하고 있구나. [체 게바라와 쿠바, 코르다 사진전]이 티켓을 건네 '니 언제 올 낀데' 기다리고 있고, 송일곤 감독의
《낭만 쿠바》가 '니 언제 읽을 낀데' 푸른 책장을 뽐내고 있다. 그리고, <쿠바의 연인>.  2009년12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시간이 맞질 않아, 못 봐서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이 영화, 드디어 1년 이상의 숙성 기간을 거쳐 오는 13일 개봉한다. 말인 즉슨,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이 영화, 아주 선정적(?)인 카피로 말초신경을 꿈틀대게 만든다. "연애는 혁명이다!" 늘 시부렁거렸듯, 송두리째 모든 걸 바꿔버린다는 의미에서 연애는 혁명이 맞다. 된장, 이런 새끈한 카피하곤. 쿠바, 혁명, 연애. 모든 것을 버무린 다큐이자 영화일세. (아직, 보진 못했다만, 레시피만 보면 뭐!) 혁명적 연애. 13월의 이야기. 그것이 어느 해, 쿠바에서도 펼쳐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해 벽두 덕담으로 채워도 모자랄 시기이건만, 언제나처럼, 까칠하게도, 나는 모든 이들이 행복해지길 바라진 않는다. 그 모든 이에는 얼토당토 않은 인간들까지 싸그리 포함될 테니까. 그건 싫고. 아직 좋은 어른이 되긴 그른 나는,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혹은 사랑할 사람들에게, 또는 이 지구상의 약하고 소외 받는 이들에게, 행복을 기원한다.

살아간다는 건 그렇다. 대개의 사람에겐 슬픔, 분노, 노여움, 불안, 외로움 등이 기쁨, 즐거움, 환희 등보다 절대 비중을 놓고 보자면 훨씬 많고 크다. 그럼에도 부디 버티고 견뎌주길. 나에게도 해당하는 말. 아울러, 우리에게 어떤 식이든 혁명이 함께 하길. 13월의 생일, 축하해. 당신과 함께 쿠바 가고 싶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그라시아스 아 라 비다(생에 감사드리며·Gracias a la vida)'를 들으며.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파도 금세 나아 발랄한 그 말과 웃음을 띄길...

그리하여, 올해 내가 되고 싶은 건, 호모 엠파티쿠스(공감하는 인간). 물론, 당신을 향한 공감이 제일 우선. 2011년, 커피로 할 수 있는 일. 공정무역과 사회적기업.

올해도 다시 한 번, D.H.로렌스가 건넨 이 혁명의 시를.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에는 혁명에 가담하지 마라
그저 원수들의 눈에 침이라도 한 번 뱉기 위해서 하라

돈을 좇는 혁명은 하지 말고
돈을 깡그리 비웃는 혁명을 하라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은 하지 마라
혁명은 우리의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어야 한다
사과 실린 수레를 뒤집고 사과가 어느 방향으로
굴러가는 가를 보는 짓이란 얼마나 가소로운가?

노동자 계급을 위한 혁명도 하지 마라
우리 모두가 자력으로 괜찮은 귀족이 되는 그런 혁명을 하라
즐겁게 도망치는 당나귀들처럼 뒷발질이나 한 번 하라
어쨌든 세계 노동자들을 위한 혁명은 하지 마라
노동은 이제껏 우리가 너무 많이 해온 것이 아닌가?
우리 노동을 폐지하자, 우리 일 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자!
일은 재미일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 일은 노동이 아니다
우리 노동을 그렇게 하자! 우리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제대로 된 혁명 : 로렌스 시선집》(D.H.로렌스|류점석 옮김/아우라 펴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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