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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어리석음의 기록

[내 좋은 친구들, ‘F4’와 인사하실래요?] ② 불순함을 옹호하고 개인을 우위에 놓다

by 낭만_커피 2011. 1. 13.
단일민족의 허구 혹은 신화가 깨진 것은 최근이었다. 그전까지는 순수(결)함은 자랑이요, 대세였다. 파리에 체류했던 저널리스트 고종석이 일찌감치 그 허구의 위험성과 관용의 필요함을 간파하고, 그 불온함을 전파한 책. 논리 정연한 글은 편지글 형식을 띠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하다. 과연 파리가 아니었다면, 그 생각, 그 논리, 가능했을까.
- 준수 100자평 -


[내 좋은 친구들, ‘F4’와 인사하실래요?] ① 인트로

불순함을 옹호하고 개인을 우위에 놓다, 《고종석의 유럽통신》

그건 구원이었어. 군대라는, 인분을 떠먹게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던 것은 아니지만, 폭압과 계급질서가 일상화된 감옥에서 만난. 으, 지옥에서 보낸 한철. 좀 과장하자면, ‘유럽통신’이라는 제목이 아녔다면, 군 간부들이 고종석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었다면, 불온서적으로 주홍글씨를 새기고, 날 영창으로 넣지 않았을까 싶은 이 친구, 《고종석의 유럽통신》.

어쨌든 그 엿 같았던 ‘짬밥’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효되면서 책을 읽는데도 약간의 숨통이 트이자, 구원처럼 다가왔던 것이 고종석! 당시 격월간 무료잡지로 발간되던 <지성과 패기>의 한 꼭지로 연재되던 ‘고종석의 유럽통신’. 그 감옥 같은 곳에서 나는, 그 글을 통해 유체이탈을 꾀했지. 막막한 군 생활에 숨통을 틔워준 산소호흡기 같았다고나 할까.

당시 프리랜스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파리에 체류하면서 여러 지인들에게 띄운 편지글을, 내게 보낸 글이 아닐까 착각(!)하면서, 내가 몰랐던 어떤 세상을 읽고 흡수했지. 그러니까, 그 친구를 통해 세상을 보고 읽었고, 배운 게지. 유럽을 배회하면서 건넨 비판적 세상읽기가 송두리째 날 흔들었어. 당시만 해도, 순수는 무조건 좋은 것! 개인보다 조직을 늘 우선! 이라는 것이 나를 감싼 가치관이었으니까. 제도권 교육의 폐해, 맞지? 꽐라~

그러나 내 친구는, 고종석은 말했지. 천만에. 순수는 광기, 조직의 논리는 폭력. 물론 그것이 다는 아녔지만, 당시 군대에 갇혀있던 나로선 정신의 탈주를 꾀할 수 있었어. 숨통이 트인 게지. 나는 조직의 구성원이 아닌, 독립적인 개체로서 인류의 한 구성원이라는 것. 개인주의라면 치를 떨만한 군대에서 만난 청량감. “세계시민주의로서의 개인주의는 불순함에 대한 사랑이고, 관용에 대한 경배입니다.”

나는 새로운 시선과 세상을 만났지. 어쩌면 지금의 나를 일정부분 형성하게 만든 이야기. “종교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모든 교조주의, 근본주의의 심리적 뿌리는 순수(결)성에 대한 욕망입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순수(결)함이냐 불순함이냐의 문제가 될 수도 있겠는데, 저는 말할 나위 없이 불순함의 편입니다. 순수함에 대한 열정, 순결함에 대한 광기는 결국 불순함에 대한 증오, 요컨대 타인에 대한 증오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역사상 그 순수함에 대한 집착이 가져온 가공할 재해를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그 불온함이 열어준 세상 덕분에, 나는 기존의 주류 가치가 심어놓은 감옥에서 탈피할 수 있었어. 알다시피, 불온함이란 그런 거잖아. 지배세력과 기성세대가 해석 불가능한, 자신들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것들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가리키는 것.

21세기에도 여전히 야만이 지배한다는 건, 이미 증명된 사실이지. (방송가에서) 퇴출시키고, (이 땅에서) 강제출국 시키고,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면서 갈 곳을 묻는 당신에게 국가가 폭력으로 대답하는 세상’이잖아. 결국 순수(결)에 대한, 조직의 논리를 우선시하는 욕망이 만들어놓은 지옥도.

그러니까, 이 후지고, 비겁한 세상에서 나는 아직도 내 친구가 알려준 가치를 마음 깊이 품고 있어. 이미 속물이 돼 버렸지만, 그것이 자연스럽지만, 그래도 세상의 주류가치에 미욱하나마 저항하고자 하는 내 불온함의 원천 중 하나. 책을 구하기 힘들다고? 그렇다면 그저 ‘고종석’을 읽어도 좋겠다. 그 불온함은 《자유의 무늬》《서얼단상》 등에서도 묻어나거든. 어때? 내 친구, 괜찮지?

[다음 시간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