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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 for U

가을의 끝-겨울의 시작, 벚꽃 지다

by 낭만_커피 2010. 11. 18.
#1. 그 남자, 달리다
따져 보면 그 남자, 사랑 앞에 한 번도 ‘쿨 한 남자’였던 적이 없습니다. 그 어느 해 겨울, 요즘처럼 길을 인도하는 여성의 목소리, 즉 내비게이션은 자취도 없던 시절. 운전면허증을 딴 뒤, 차를 몰았던 경험이라곤 열 손가락도 되지 않고, 보조 운전사도 없었으며, 처음 가는 길인데다, 결정적으로 내 나라도 아닌 다른 나라. 내 나라로 돌아가기까지 남은 시간은 달랑 사흘 여. 대륙 횡단까지는 아녔지만, 가는 데만 스무 여 시간을 달려야 하는 곳. 따라서 돌아오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가지 않는 게 상책이었던 그때.

그런데도, 그 남자, 질렀습니다. 아니 질러야 했습니다. 가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봐야 했습니다. 보고 싶다, 그것만으로도 앞뒤 재지 않고 행동이 앞설 수 있었던 그때. 순정이 팔딱 숨 쉬고, ‘먹고사니즘’의 현실적 중력 없이 하나만 바라볼 수 있었던 때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겁니다.

차를 렌트했고, 시동을 걸었고, 그 남자, 달렸습니다. 초보운전자의 불안한 마음은 그닥 없었던 것 같습니다. 눈앞의 창을 통해 그 남자가 본 것은, 길이 아닌 그녀였나 봅니다. 그 남자의 속엔, 이 말만 둥둥 떠다녔을 겁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그녀에게 가는 길. 그저 페달만 밟았습니다. 휴게소에서 잠시 눈을 붙인 외에, 먹는 것도 햄버거를 사서, 차 안에서 삼켰습니다. 오로지, 그녀를 봐야한다는 일념. 하나만 생각하고, 하나만 바라보고 있었나 봅니다. 그녀가 거주하는 마을로 가까스로 진입해서도 엄청 헤맸습니다. 자정을 넘은 시간, 그녀가 자원봉사하고 있던 중증 지적장애인 재활커뮤니티에 마침내 발을 디뎠습니다. 그리 보고 싶던 그녀를 만났습니다. 킁킁, 환한 웃음과 함께 터지는 눈물. 그 남자, 그렇게 울보였다지요. 고마워, 고마워...


그녀는 여전히 빛이 났고, 아름다웠다지요. 물론, 자발적이었지만, 중증 지적장애인을 향한 헌신이 때론 힘겹다고 토로하기도 했던 그녀. 막상 눈앞에서 그녀는 그런 기색, 부러 비추지 않았습니다. 굳이 그 남자도 꺼내질 않았습니다. 그들은, 만났고, 그 남자,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이제 봤으니 됐어. 오로지 순정만으로도 지탱되던 시절의 그 남자, 두 시간여의 짧은 오밤중 만남으로 충분했나 봅니다.


그 남자, 돌아가는 길, 긴장이 풀리고 피곤했던지, 졸음운전으로 자칫 큰일 날 뻔도 했지만, 어쨌든 내 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남자, 어렴풋이 알았습니다. 아, 사랑은 목숨을 걸어야 할 수 있는 거구나. 다른 것, 없습니다. 보고 싶다. 그것만으로 생의 모든 것을 걸 수도 있구나. 아마도, 현실의 중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때라서, 가능했던 이야기였겠죠?


#2. 그 남자, 휘청거리다

하지만, 때론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사람살이. 그녀가 떠난 자리. 그 남자, 연애도 하고, 사랑도 했다지요. 누군가에겐 ‘쿨 한 남자군요’, 라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쿨 함이 대세처럼 휩쓸던 시절, 그 남자도 쿨 함이 좋은 것이란 착각을 하고, 헛발질도 했습니다. 나중에서야 깨닫고 반성하지만, 그 남자의 쿨 함은, 유치함, 지질함, 미숙함의 다른 말이었습니다. 그녀(들)에겐, 미안한 때늦은 실토지만, 그건 곧,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그 남자에게 쿨 함을 느꼈다면, 그건 사랑이 아녔기 때문입니다.


쿨 한 사랑? 단호하게 말하건대, 그런 건, 없습니다. 사랑이 어찌 쿨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사랑은 핫, 뜨거움입니다. 제 아무리 ‘사랑’이라는 말이, 현실의 풍랑 앞에 질척거린다손, 쿨 할 순 없는 법입니다. 쿨 한 남자, 라고 말을 건넸던 그녀에게 그 남자,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사랑 앞에선 쿨 할 수 없으니까요. 사랑은 때론, 목숨을 걸어야 가능한 것이니까요.



#3. 이 남자, 목숨을 걸다

독희, 손독희라는 이름의 이 남자. 주먹질 좀 하고 다녔던 남자군요. 조폭에서 이른바 ‘배신’을 때리고 돈을 들고 튄 남자네요. 사실 배신이랄 것도 없어요. 조폭 세계에 무슨 ‘의리’가 있어서 ‘배신’이 있단 말입니까. 조폭들의 의리? 그건 작가 박민규의 표현을 빌자면, ‘조까라, 마이싱이다’. 의리로 포장된 그것은, 바로 이권이요, 탐욕이 본질입니다.


어쨌든, 독희. 들고 튄 돈으로 소식 끊고 떨어져 살던 어머니와 새 집 사서 잘 살아 보겠다, 는 생각으로 집에 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치매에 걸려 있고, 아들도 잘 못 알아봅니다. 기껏 돌아온 집에서도, 마음 붙일 수 없던 이 남자. 인근 ‘지순상회’에서 박카스나 사서 마시는 것이 소일거리입니다. 기쁘거나 열 받거나, 박카스.


지순상회. 이름 거 참, 촌빨 날린다 싶으면서도, 주인장의 이름일 것 같은 ‘필’도 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지순’, 맞습니다. 아마도, ‘지고지순’에서 따온 말이겠지요. 그런데, 이 낭자, 눈이 보이질 않습니다. 가게 바로 앞에 놓은 긴 의자에 늘 부딪히고, 가게 앞에 있는 전봇대까지도 가기 힘들 정도입니다. 동생, 지성은 그런 누나가 안타까워서 어떻게든 돈을 벌어 수술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동네 양아치들 앞에서도 주눅 들어 사는 처지입니다.



신파, 딱 티가 풀풀 납니다. 지고지순한 눈이 먼 여자와 주먹을 쓰지만 나름 순정파인 남자의 만남이라니. ‘보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을 향해 어떻게 달려갈 것인지, 보입니다. 당신도 그리 느끼듯, 식상하고 상투적이며 진부한 이야기겠지요. 맞아요. 틀리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안 봐도 비디오인 여정입니다. 아 참, 혹시 오해할까봐 그러는데, 그게 마냥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이 팍팍한 사람살이에 때론 신파, 라는 윤활유가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요. 신파의 힘을 무시하지 마세요.


그러다, 냄새에서 한 번 멈칫했습니다. 개코도 아니요, 후각이 발달하지도 않았지만, 사람마다 냄새가 있다는 말. 사랑 해 본 당신이라면, 알지요? 그 사람만 품고 있는, 그 사람만의 냄새. 사랑은, 때론 그 냄새에 중독되는 과정이기도 하지요. 사람마다 미묘하게 달리 나는 냄새. 그 냄새를 음미하고 알아차리게 되는 것도 사랑이지요.


“당신의 네 번째 손가락의 냄새”를 언급하는 지순. 아마도 눈 대신 다른 신체기관이 더 예민할 법한 그녀는 더욱 민감하게 그 냄새를 맡게 되겠지요. 사람이 품은 냄새도 그렇지만, 한 사람의 신체마다 냄새가 달리 분포돼 있을 수도 있겠구나.
 


냄새 맡을 줄 아는 여자, 지순은 이 남자, 독희에게 사이다 냄새가 난다고 하네요. 사이다 냄새가 퍼질 때마다 독희 오빠의 등장을 알게 되니까요. 아, 이참에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냄새에도 한 번 집중해보세요. 그 냄새가, 아마 당신의 사랑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또, 사랑하게 된다는 건, 주변의 온도, 습도, 바람, 햇살의 느낌이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당연히 매일 다른 온도, 습도, 바람, 햇살이겠지만, 평상시와 확연히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지요. 몸은 그것은 반응하게 돼 있고, 마음도 역시 그렇잖아요. 사랑해 보셨으면, 잘 알죠? 나를 둘러싼 온도, 습도, 바람, 햇살이 달라지는 경험. 지순도, 그걸 압니다. 눈이 보이진 않지만, 느낄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이 여자와 이 남자, 예고된 파국을 향해 달립니다. 아마, 이 남자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지순상회가 있는 마을을 떠났어야 했어요. 들고 튄 돈 때문에라도 한 곳에 오래 머물면 발각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뒀어야죠. 도망자 신세일수록 거주 혹은 서식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법이잖아요.


그럼에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하자면, 이 남자가 떠나지 못한 이유는, 태반이 지순 때문이었을 겁니다. 이 남자, 목숨을 걸었던 겁니다.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졌던 이 남자. 부러, 의도한 것은 아녔겠지만 이 남자도 깨달았겠죠. 아, 사랑은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구나.


다만, 많이 아쉽습니다. 신파가 본디 목적을 달성하는데, 밀도나 함량이 떨어집니다. <보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에 끌려, 발걸음을 끌었던 그 남자에겐, 아쉬움이 남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보다 연출력의 문제가 아닐까, 진단도 해봅니다. 눈물, 콧물 짜내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우직하고 강고하게 밀어붙였어야 하지 않나 생각도 해봅니다.


벚꽃이 졌습니다. 벚꽃인지, 다른 꽃인지,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 가을의 끝, 겨울의 시작, <보고 싶습니다>에선 벚꽃이 집니다.



#4. 그 남자, 당신 없이는 못살아

비 나리는 것을 좋아하던 당신입니다. 그 남자, 비 나리는 날, 당신과 같은 우산 아래서 빗물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비 나리는 날, 당신의 냄새는 또 어떨지 궁금한 그 남자입니다. 자랑할 것이 없어 욕이나 잘 했고, 마초적 기질이 농후한 도시에서 그 자양분을 받았으며, 18년 동안 담배를 피워왔던, 당신 표현으로는 니코틴 중독자. 조폭도 아니요, 주먹질도 못하지만, 당신에겐 ‘나쁜’ 남자였던 그 남자.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조금씩 탈색해왔고, 희석해가고 있는 그 남자, 인간을 사랑하라는 말에 고개 끄덕이면서 인류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보통의 남자인 그 남자는 한 사람을 사랑하기가 참 어렵다는 것,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니까요. 성인군자도 아니요, 완성된 인격체도 아닌 가장 보통의 남자에겐, 인류를 사랑하는 일과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그 남자가 자기 할 일 다 한다, 고 말하지만, 그 남자에게 사랑은, 죽을 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현실적 중력 앞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사랑은 자신을 걸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낭창낭창 낭만적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보여도, 그 남자, 나름대로는 용을 쓰며 삽니다. 일상의 모든 것에 자기장이 달라졌고, 주파수가 변했습니다. 같은 행위를 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은 눈에 띄는 변화도 동반하지만, 미세하게 스며들어 일상적 행위에도 그 전과는 다른 모습을 잉태합니다.


그는 더 이상 쿨 한 남자도 아니요, 사랑이 쿨 할 수 있다는 것에는 엑스표(X)를 그어줍니다. 물론, 그 남자, 사랑을 마스터했다거나 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사랑은 풀고 또 풀고, 그래도 풀리지 않을 무엇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작가는, 모름지기 작품에 목숨을 거는 존재라지요. 그 남자, 소심하고 야망 그닥 없는 남자지만, 당신에게만큼은 야심가입니다. 어떤 지위나 위치를 확보하기 위함이 아닌, 당신 손을 잡고 당신과 함께 길을 걸어가는 일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죠. 어쩌면 그 남자, 당신이라는 작품에 목숨을 거는 존재이고 싶습니다. 그 남자에게 사랑은 그렇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아, 여기서 오해는 마세요. ‘목숨을 건다’는 걸 너무 비장하게만 읽지 마세요. 사랑을 비장하게만 한다면 그것만큼 지루한 게 있을까요. 그리 하다가 헛발질도 하기 마련이지요. 모름지기, 사랑은 행복하고 기쁘고 즐거운 것이면서도, 아픔과 아림을 동반하기도 하며, 죽는 그날까지 물고 늘어져야 할 수행의 대상이 아닐까요. 그 남자, 아직은 사랑 지상론자에 가깝기 때문이겠죠. 사랑만이 세상을,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그러니, 목숨 운운 하겠지요.


그 남자가 커피를 사랑한다고요? 천만에. 그 남자는 그렇게 말한 적,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고 있을 뿐. 그 남자,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주고 내려주고 싶은 겁니다. 그 커피가 그 남자의 현실적 삶을 지탱해줄 수 있기를 바라고요. 특히 당신. 그 남자가 당신에게 했던, 2046잔의 커피. 그건 커피 만드는 그 남자의 소망이자 바람이 됐습니다. 그 바람의 달성 여부는, 당신에게 달려있겠죠.


사랑을 하려거든, 목숨을 걸고 하라. 또박또박, 그 말을 씹어봅니다. 가장 보통의 남자이기에 쉽진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남자가 사랑하는 것엔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 도린에게 온 주의를 기울였던 앙드레 고르를 그 남자는, 생각합니다. 역시나 당신과 공유했던 《D에게 보낸 편지》.


“그러다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그 남자가, 사실 감히 고르 할아버지처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말만 앞선다고 당신에게 타박부터 받겠죠. 《늦어도 11월에는》처럼,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해도 마찬가지겠지요. 물론 꼭 그것만이, 사랑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겁니다. 그 남자, 아마 당신과 함께 사랑 탐구도 같이 하고 싶거든요.


그 남자, 지금 ‘올 타임 연애패배자’(대중음악평론가 김봉현의 표현), 윤종신의 신곡, ‘그대 없이는 못 살아’만 주야장천 듣고 있네요. 허허, 윤종신의 ‘환생’도 시도 때도 없이 흥얼거리더니, 여전히 윤종신입니다. 김봉현 평론가는 “연애 패배단의 두목이자 이별 노래계의 끝판왕이며 모든 남성 찌질이의 대표자”인 윤(종신) 두목을 떠나보내자고 말하네요.


뭐, 그것도 그렇지만, 그 남자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윤종신의 노래만으로 이뤄진 주크박스 뮤지컬을 보고 싶다고. 그대 없이는 못 살아. 그 남자, 솔직히 또 하나의 연애 패배담에 당신을 담아두고 싶진 않습니다.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 당신과 나누고 싶은 그 남자니까요.


이것은 그러니까, 당신을 아프게 한 그 남자가, ‘A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고르 할아버지와 도린 할머니의 이야기가, 경이롭게, 거의 전광석화처럼 시작되었듯, 그 남자와 당신도 어찌 보면 그리 하였음을. 아울러, 사랑이 끝난다고 사랑이 끝난 것이 아님을. 고르 할아버지와 도린 할머니도 그랬으니까요. 당신도 기억할 겁니다.


“당신은 이제 막 여든두 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요즘 들어 나는 당신과 또다시 사랑에 빠졌습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D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그 남자도, 호숫가 냄새가 밴 당신의 네 번째 손가락을 기억하고 싶답니다. 진짜 폭풍은, 그 여름이 아닌, 당신이었으니까요. 때론 폭풍처럼 격렬하고 때론 거울처럼 투명한,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