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종드 쭌/무비일락

청춘의 또 다른 이름, <후아유>

by 낭만_커피 2007. 6. 4.
2002년 여름, 전국이 월드컵으로 들끓던 시기에 외따로 만난 영화. 그래서 내겐 6월의 영화. <후아유>!

국정브리핑에도 올렸었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춘은 아름답다”는 식의 청춘예찬은 결코 식상해질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어떤 낯두껍을 하고 있어도 청춘은 한없이 투명에 가깝다. 누가 청춘을 비하해도 그건 진심이 아니다. 청춘은 그 이름만으로 가슴을 설레게 한다, 머리끝까지 피를 역류시키게 만든다, 식은 심장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건 청춘이기 때문이다,라는 이유밖에 없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통해 숱한 경구로 장식된 ‘청춘’의 이름은 시대와 사회상을 반영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어느 순간부터 일정 시기의 청춘을 특정한 말로 규정하고픈 욕망이 꿈틀거렸다. X세대, N세대, W세대, P세대 등등 청춘은 시시각각 다른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 무한한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각종 문구는 카멜레온처럼 수시로 바뀌는 청춘의 빛깔을 대변한다.

그런데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든 규정짓거나 정의하는 것과 별개로 ‘정체성’은 청춘의 한 페이지에 빼곡하게 들어찬 화두다. 끊임없이 자신과 주변을 되묻는 과정은 통과의례이며 위태로운 외줄타기 또한 타당한 수순이다.

<후아유>는 그런 청춘의 한 단면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팔딱대는 청춘의 감성을 길어내 스크린 상에 펼쳐놓는 감각은 예사롭지 않다. 아바타, 채팅, 게임 등 네트워크 세대의 아이콘을 소재로 활용해 사이버와 현실의 간극 속에서 ‘정체성’을 되묻는 작업까지. 아날로그적 정서와 디지털 감각의 융합이 돋보인다. 복합적인 청춘의 정서를 ‘딱히 이것이다’라고 정의 내릴 순 없지만 말이다.

그런 한편으로 청춘의 한켠에 자리한 흔들림도 함께 포착된다. “불안하다. 내 미래가, 내 인격이, 내 사랑이... 다 불안하다”는 대사는 청춘이 맞닥뜨린 현실과 불안감 등을 집약한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변덕스런 청춘의 자화상, 맑음과 흐름이 수시로 교차하는 청춘의 날씨는 머나먼 항해를 떠나는 선박이 만나는 바다의 표정과도 같은 것이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이버상에서 아바타를 만들어 ‘또 다른 나’를 만드는 ‘젊은 세대’의 감성은 디지털과 어떤 동고동락을 이룰까? 인주(이나영)와 사이버 분신(ID 별이), 형태(조승우)와 사이버분신(ID 멜로) 사이를 오가는 사각관계의 영상은 신선한 감각의 멜로영화를 표방하는 상징이다.

‘1인칭과 2인칭의 3각관계 4랑법’이란 독특한 카피를 통해 <후아유>가 되묻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답변. 네 가지 미션.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션1. 준비하시고 쏘세요. - 파트너 선택, 자기소개하기

◎ 디지털로 대변되는 21세기, 네트워크의 확산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만남을 어떻게 형성하고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게 되는 거지?

★ 별이 : 글쎄,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코드는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늘려놓은 것 같아.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나를 대신하고 아바타로 ‘또 하나의 나’를 상징하게끔 하는 거지. 나를 표현하는 다양한 기호들 속에 숨거나 갇혀버릴 수도 있고 자아가 확장되거나 혹은 변질되는 경험도 가능하게 된 거지. 일상에서의 나와 사이버에서의 나를 분리하느냐 동일시하느냐의 문제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어쨌든 사람과 사람사이의 만남이 대면접촉을 통하지 않고서라도 가능한 기회는 늘어난 셈인데... 만남의 진실성은 보장받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는 것 같아. 사람과 사람사이에 다리가 더 놓여졌지만 어느 다리가 튼튼하고 건너기가 좋은 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는 것 아니겠어? 멜로는 어쨌든 사이버상이지만 내 힘든 과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고 날 이해해줬다는 생각이 들어.

♥ 멜로 : 별이와의 만남은 우연이야. 별이가 베타테스터로서 ‘후아유’게임을 비방하는 글을 적었는데, 이런! 같은 빌딩에서 근무하네. 한 건물에서도 모르고 사는 게 대개의 사람살이일 뿐인데 괜히 호기심이 가더라구. 결국 사이버상에서 발견된 그런 작은 요인들이 서로에게 다가설 수 있는 작은 요인이 된 셈이지.


그런데 그 캐릭터가 승부욕에 불타고 있더구만. 매일 30층을 뛰어오른다는 조직의 일원이라는 별이가 궁금해졌어. 다른 건 없어. 우연한 네트워크상의 만남으로 서로를 알게 되는 과정을 겪었고 감정의 변화를 겪었을 뿐이야. 오프라인상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션2. 꽂히셨나요? 데이트를 시작하세요 - 커플게임 선택하기


◎ 그럼 현실과의 차이는 어때? 서로간 정보가 불평등하게 형성됐는데 사이버에선 둘도 없고 현실에선 싸우고 엇갈리고... 그건 서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거 아냐?

★ 인주 : 현실과의 차이는 별로 고려하지 않았어. 세상 모든 것과 헤어진 3년 전 그 날부터 자폐소녀였던 내가 멜로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과거를 열었어. 목표가 생기면 씩씩해지지만 난 청각장애라는 것 때문에 누군가의 동정을 받고 싶진 않아. 사이버에서 난 청각장애가 아냐. 그래서 현실과는 약간 달라.

누군가에게 일부러 과거를 알려줄 필요는 없지만 투명인간 친구를 가지고 싶었어. 만나는 것도, 전화도 안돼, 그러나 사이버에선 곁에 있을 수 있는. 굳이 현실과 사이버에서 똑같아지려고 애 쓰진 않아. 전적으로 한 쪽에 기울어진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 면에서 멜로는 훌륭한 투명인간 친구였어. 샅샅이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날 잘 알고 내 힘든 고백을 처음으로 들어줬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거지.

♥ 형태 :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사이버와 현실 양쪽에서 그녀를 동시에 알아가는 게 불평등한 건 분명하지. 어쩌면 현실에서 그녀를 알지 못했고 그렇게 이쁜 여자가 아니었다면 접근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 과거 역시 한 몫 했을 테고. 솔직히 얘기하면 우리가 커플이 된 건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빚어진 나의 작업의 결과였을 지도 몰라.

인주에게 사이버에선 선택됐지만 현실에선 돈만 아는 속물로 받아들여지는 웃긴 관계야. 사이버상의 멜로를 현실의 내가 질투한 거야. 현실과 사이버를 오가며 겪은 삼각사랑! 웃긴 일이야. 나는 하나인 데 상대방에겐 난 두 존재야.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만도 하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션 3. 둘만의 공간을 원하시죠? - 아지트 만들기

◎ 사랑하는 사람들, 아니 사람들은 주변에 되묻지. “날 잘 알아?” 그리고 그렇게도 요구하지. “널 알고 싶어”라고.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다른 사람을 알아간다는 건 어떤 거지?

♥ 형태 : 글쎄, 다른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만큼 나를 아는 일도 만만치 않아. 누군가에겐 곤혹스럽기도 하고 당연히 스스로에게 해야 할 질문이기도 하지. ‘나와 너’는 도대체 누구이지? 그리고 우린 자신을, 서로를 얼마나 아는 걸까? 혼란스럽긴 매 한가지야.

하지만 이건 확실해. 내 정체성을 형성하는 부분 중에 ‘사랑하는 너’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너의 정체성에도 ‘사랑하는 나’가 있었으면 한다는 것. 내가 보지 못하는 뒤통수를 넌 볼 수 있듯이, 너의 뒷모습에서 나만이 알 수 있는 그런 느낌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

★ 인주 : 멜로는 그랬어. ‘투명하게 다가서고 싶은 날, 하고 싶은 말이 터져 나오는 날, 나를 불러’라고.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 기뻤어. 어떤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인지, 알지 못할 수도 있어. 현실 속에 있는 내가 진짜라고 믿고 싶지만, 넷상의 나를 ‘저건 내가 아니야’하고 단적으로 거부할 수도 없어. 어차피 난 단 하나의 단어나 문구로 명확하게 설명되는 존재가 아니야. ‘난 이중인격자가 아닐까’하는 자괴심이 들 수도 있지만 전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사람은 없다는 걸 알아.

♥ 멜로 : 인정해. 내가 비록 형태의 사이버 ‘분신’이자 ‘아바타’라고 하지만 형태와 별개로 생각할 순 없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천만에! 다만 형태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야. 어느 쪽이든, 그것은 다 한 사람이 가진 분신이자 아바타인 것을 인정하면 되는 거지.

한 사람을 단 한마디로 단정 짓는다는 건 웃기고 건조해. 상대적인 데다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각자의 해석일 뿐이고 겪어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평가한다거나 선입견을 가지는 건 우스운거야. ‘걘 이래’라고 말해서 그렇게 규정된 상태에서 ‘이렇지 않은 것’을 했을 때 용납하기 어렵게 돼 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잖아.

★ 별이 : 정말 착한 것이 어떤 것이고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구분을 해야 해. 단순히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잘해준다고 해서 ‘착해’라고 규정하는 것보다는 평소 다른 사람에게 하는 행동이나 말도 살피면서 다른 사람의 평가도 들어보는 것. 그것이 다른 사람을 알게 되는 방법이고 나의 정체성을 살피는 한 방법이 아닐까도 싶어.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션 4. 진짜 사랑을 시작하세요 - 밤새 채팅하기

◎ 불안한 청춘들의 행로가 위태로워도 자리를 찾아가는 건 이상이나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 꿈을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할 수는 없고 사랑이 늘 감미롭고 달콤한 것만은 아니란 것도 젊은 날의 통과의례지. 어정쩡한 3각관계 4랑법을 관통하는 기분은 어때?

★ 인주 : 세상에서 가장 높은 호수인 ‘티티카카’에서 수영하고 싶다던 내 얘기... 거기서 수영하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수영하는 셈이잖아. 그건 이상을 가지고픈 젊음이 품은 이야기야. 이루기 힘들기 때문에 매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젊은 날의 한 자화상 같은 거.

내가 청각장애인인 건 사회적으로 ‘장애’를 얘기하자는 의도는 아냐. 어쩌면 혼란스런 청춘의 시기에 앞선 세대가 만들어놓은 세상과 단절될 수 있는 현실 속에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을 상징한 거지. 하지만 마냥 그러진 않아. 형태와 내가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에선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젊음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 형태 : 돈 냄새를 맡아보고 싶었어. 하지만 이른바 대기업이란 안정된 생활을 떠나 벤처에 뛰어든 건,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 도전하고 싶었어. 미래가 불안하지만 내겐 꿈이 있고 도전하고 싶은 가치가 있으며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 싶은... 완전한 건 없잖아. 그냥 자아는 죽을 때까지 형성되고 만들어가는 거지.

사랑도 마찬가지. 노래방에서 “사랑하고 싶어 이젠, 사랑하고 싶어라”며 불러 제낀 것도 사랑이 주는 달콤함을 그리는 한편 현실은 마냥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야. ‘여자들은 절대 떠나는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는 내 경험도 이미 생채기가 된 채 마음 깊은 곳에 둥지를 튼 아픔이지. 잊은 듯 지내지만 불쑥 불거져서 마음을 태풍처럼 긁고 지나가는 그런 사랑의 기억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청춘의 시기에도 꿈, 이상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팍팍한 일상의 굴레가 수시로 젊음을 몰아세우는 한이 있어도 스스로 선택한 꿈의 색깔 앞에 꼬꾸라질 이유는 없어야 할 터이니.


‘내’가 ‘나’라는 사실조차 낯설었던 소년(소녀)시절을 지나 청춘의 그림을 그리는 시기는 누구에게나 닥친다.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내가 내 꿈을 꾸는 것이 비난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 청춘은 여러 빛깔의 홍역을 치르면서도 질긴 생명력을 보유한 채 여러 굴레를 넘나든다. 그럴 때 이런 한마디씩은 어떨까.


“Good Luck to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