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알리, 맞다!
알리 아저씨가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반가웠다. 나는 아저씨를 좋아한다. 권투선수로서 멋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몇년 전, <알리>란 영화를 보고 완전 좋아졌다. 현재 파킨슨병을 앓지만, 아저씨는 여전히 멋진 투사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성화의 최종주자로서 점화를 하던 아저씨의 모습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아저씨가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건, 그의 활동에 따른 결과다.
미국 아동평화재단의 공동설립자로서, 흑인해방·평화·어린이권익보호에 적극 나서고 있는 알리 아저씨. ☞ 무하마드 알리, 노벨평화상 후보에
아저씨는 2005년 유엔평화상을 받은 적이 있다. 은퇴 후 아저씨는 벌어들인 돈과 자신을 활용해, 세계의 빈곤과 장애인을 위해 앞장섰다. 파킨슨병을 본격 앓으면서도 빈곤층과 장애인들에게 열정과 신념의 바이러스를 유포했다. 그의 신념은 꺾이지 않았다. 인종차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저씨의 투쟁에 파킨슨병도, 나이듦도, 장애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감히 아저씨에게 '투사'라는 칭호를 붙인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서도, 헤비급 세계챔피언이어서는 아니다. 파킨슨병에도 꿋꿋한 아저씨의 노력을 경하해서만도 아니다. 아저씨가 걸어온 궤적엔 좀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하게,
노벨평화상 심사위원회가 아저씨에게 노벨평화상을 쥐어줄 것인지는 그닥 궁금하진 않다. 아저씨가 상을 타지 않아도 별로 할 말이 없다. 다른 더 적합한 사람이 그 상을 쥐었겠거니 한다. 그러나 심사위원회가 실수나 의도적 배제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작은 바람이다.
언젠가 아저씨도 구름의 저편으로 가겠지만, 나는 아저씨의 바람대로, 아저씨를 기억할 것이다. 모든 이의 권리를 존중하는 유머 있는 흑인으로.
나는 너에게 알리를 권한다. 영화, <알리>라도 보면 좋겠다.
아래는 2005년 7월, <알리>를 보고 알리와 내 존경하는 선배들을 향해 긁적인 연서였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투사'가 아니었고, '투사' 아저씨와 선배들에게 무언가 표하고 싶었나보다. 그땐 종합주가지수가
1070을 넘어섰다고 호들갑을 떨던 시기였다. 지금 2000을 바라보는 시절과 비교하면 상전벽해지? 그러나 투사는 여전히
생과, 세계와 투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신념'위해 세상과 맞짱 뜬 진정한 챔피언, 투사 '알리' (2005. 7)
연일 뜨겁다. 액면 상 날씨 탓이다. 숨이 턱턱 막힐 만큼 후덥지근한 날씨, 낮은 낮대로 축축 늘어지고 밤은 밤대로 잠 못 이룬다. 그 뜨거움과 다른 성격이지만 종합주가지수는 10년7개월 만에 1070선을 뛰어넘어 상승 기류를 유지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부동산 시장을 잡겠다는 정부의 의지도 뜨거운 반면 자본에 영악한 자들도 발에 땀나게 내달린다.
그런가 하면 대입 통합교과형 논술시험을 놓고 정부와 서울대의 갈등도 후끈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국립대 총장께서는 “현행 고교 평준화 제도도 재검토해야 한다”며 학벌 특권층 양산을 화끈하게 밀어붙인다. 평준화는 세계를 불타게 만든 무한경쟁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단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학교의 총장께서 화를 돋운다. 뜨겁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 파업의 불길도 계속 타오르고 있다. 이래저래 논란이 한창이다. 억대 연봉 운운하며 ‘배부른 파업’을 한다며 잘못을 전적으로 노조에 돌리는 일부 언론들의 작태도 후덥지근하다. 일부 언론은 파업의 쟁점을 냉정하게 짚지 않은 채 귀족 노조 운운하며 노동자들을 몰아붙인다. 이 뜨겁게 작열하는 여름의 한가운데, 투사들이 여기저기 넘쳐난다. 에너지 만빵이다. 그들의 뜨거운 열기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투사는 아무에게나 붙이는 수사가 아니다
‘투사’란 칭호는 아무에게나 붙이는 수사가 아니다. 연일 뜨겁게 싸워댄다고 그들 모두가 투사냐. 아니다. 욕망 앞에 충실할 뿐이다. 자본이든 권력이든 부귀영화든 그들에게 브레이크는 없다. 그들이 발산하는 뜨거움 앞에는 그저 숨 막힐 뿐이다.
그렇다면 감히 누구에게 ‘투사’란 작위를 부여할 수 있을까. 이런 경우는 어떨까. 부조리한 시스템 내에서 저항하거나 체제 전복을 감행하는, 자신의 안위와 영달보다 공적 정의에 부합하는 신념에 따른 행동을 통해 세상과 맞장 뜨는 사람. 그런 이들에겐 투사라는 작위를 부여해도 되지 않을까. 주어진 체제와 환경 내에서 순응하는 소시민에게 ‘투사’의 포효와 행동은 무의식에 잠재한 뜨거운 숨결을 깨우는 충격을 가하기도 한다.
이 영화를 보고 한 사람에게 ‘투사’ 작위를 부여하고 싶어졌다. 그 이름과 일련의 타이틀은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그는 내게 유명인사였을 뿐이었다. 최근에 들은 소식이야 2012년 뉴욕 하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IOC총회에도 나타났다는 것. 20세기 가장 위대한 스포츠 스타이지만 현재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왕년의 복서. 그렇다. 알리, 무하마드 알리. 지난 96년 아틀랜타 올림픽 성화 봉송 최종주자로서 온몸을 떨면서 힘겹게 성화에 불을 붙이던 모습도 기억난다. 그의 딸이 아버지 뒤를 이어 권투선수로서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그 사람, ‘무하마드 알리’
<알리> 포스터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Float like a butterfly, sting like a bee)." 이 수사에 갇혀있던 그의 이미지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일부러 찾아 끄집어내지 않았던 그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 단초는 ‘세상과 싸우는’ 사람들을 스크린에 담곤 했던 ‘마이클 만’ 감독과 스크린에서 장난꾸러기 이미지가 강했던 ‘윌 스미스’가 뭉쳤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화학작용에 대한 궁금증이 우선이었고 그들의 화학작용 결과가 ‘알리’에 귀착되자 ‘알리는 어떻게 세상과 싸웠을까’라는 주제로 그 궁금증은 전이됐다.
스크린은 알리에게 가장 파란만장했던 10년의 세월을 보여준다. 헤비급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지만, 국가에 의해 이를 부당하게 잃고 다시 찾는 과정이 흘러간다. 이 과정은 20세기 스포츠가 낳은 최고의 전사라는 칭호가 쉽게 획득한 노획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알리는 정체성, 국가, 종교, 개인 등 다양한 가치를 놓고 철저히 자신의 신념에 따라 국가와 싸우고 세상에 딴죽을 건다. 국가나 가정, 핏줄 등 이른바 ‘대의명분’이 개인에 앞서야할 것이 아니란 점을 그는 주장한다.
주먹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주먹이 아닌 다른 무기에 의한 논쟁과 항쟁을 묘사하고 이어 가슴으로 시점을 이동시킨다. 링 안에서 상대방을 향해 끊임없이 주먹을 날리던 알리는 링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상대는 개인이 아닌 세상이다. 상대방을 향해 내뻗는 주먹이나 풋워크는 알리가 발 디딘 현실 속에서도 궤를 같이한다. 세상을 무대로 그는 끊임없이 손을 뻗고 발을 옮긴다. 그저 링 안에서 싸우는 기계가 아님을 증명한 그의 행보는 차츰 심장 박동을 끌어올린다. 그의 투쟁에 빨려든다. 가슴은 그의 주먹과 발걸음에 동조하게 된다.
챔피언으로 첫 등극한 알리는 우선 이름을 바꾼다. 그 바뀐 이름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극의 중심축 가운데 하나다.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과거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이슬람교 개종과 함께 ‘무하마드 알리’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 나선다. 아버지의 경멸과 꾸지람에도 아랑곳없이 노예시절 백인이 붙여준 성을 따르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다.
알리는 '떠벌이'라고도 불렸지만 그 포효는 공수표가 아니었다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그의 신념은 핏줄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과도 거리를 둔다. 당시 언론과 대중은 알리의 이런 행동에 비아냥을 보냈다지만, 알리는 굽히지 않았다. 알리는 자신을 클레이란 (노예의) 이름으로 지칭하던 상대 선수를 링에서 넉다운시키면서 외친다. “내 이름을 다시 말해봐!” 그는 그렇게 링 위에서 세상을 향해 자신의 존재감과 신념을 포효한다. 누가 감히 그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세상아! 덤벼라”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알리가 베트남전에 참전 않기 위해 군대 징집을 거부하는 신념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나를 깜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베트남 사람들이 나에게 손톱만큼도 해를 끼친 적이 없으므로 그들에게 총을 들이댈 이유가 없다.” 일개 개인이 국가에 싸움을 건 것이다. 불이익을 예감하면서도 국가의 ‘부름’을 거부, 국가와 주류(백인)사회를 정면으로 치받아 버린다. 링 위나 밖에서 그는 언제나 싸움닭이다.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개인(알리)의 항쟁은 국가의 분노를 사게 마련이다. 타이틀 박탈, 선수면허 정지, 재판 회부, 파산 등 국가가 가만 있을 턱이 없다. 그때문에 오랜 기간 법적 투쟁으로 전성기를 흘려보내는 그를 보자니 청춘의 한 페이지를 국가에 헌납(?)하며 군대로 끌려가는 한국의 청년 남자들이 떠올랐다. 한편으로 ‘나는 왜 저항 한 번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군대를 갔을까’하는 자괴심도 든다.
알리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시절,
‘병영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대한민국에서 ‘청년(남자)’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군대와 연관을 맺지 않을 수 없다. 제도권 교육의 틀에 길들여진 청년은 ‘신성한 국민의 의무’라는 감언이설에 현혹당하고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되고 남자로서 역할을 한다’는 새빨간 거짓말에 놀아난다.
이는 국가의 틀에 청년들을 훈육시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이 만든 수사다. 군대라는 통과의례를 거친 대개의 남자들이란 ‘권위적이고 권력화된’ 관계를 익혀 이를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면서 살아간다. ‘군대에서 조직사회가 돌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들먹이는 건 이 사회가 병영화 돼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또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억압적 군대 체제는 유령처럼 이 사회를 배회한다. 알리의 것과는 반대다.
알리는 자신과 무관한 베트남 사람들을 적으로 상정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총부리를 들이대지 않으려고 한다. 알리는 병역징집을 거부한 뒤 당당히 외친다. “나는 자유와 정의, 평등을 신념으로 가지고 있다. 이 같은 나의 신념을 방해하는 자가 바로 나의 적이며 싸워야할 상대는 바로 그들이다.” 개인의 의식과 행동에 재갈을 물리려는 국가의 의도에 맞선 끝에 알리는 재판에서 승리한다. 권투선수로 살지 못한 공백기간에 반전 등 여러 사회 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투사’로 거듭 태어나고 1974년 32살의 나이로 챔피언 타이틀을 재탈환하는 ‘기적’을 연출한다.
불이익을 감수한 이들의 ‘용기’
투사는 혼자 태어나지 않는다. 알리에게는 동반자가 있다. 명스포츠 해설자, 하워드 코셀(존 보이트)과의 우정이 바로 그것이다. 미디어를 통해 공식적으로 처음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을 불러준 그는 그것 때문에 평생 항의와 습격을 받는다. 하지만 끝까지 알리의 신념을 지켜주고 지지한다. 혼자일 수 없는 길에 뜻이 맞는 동반자를 만났다. 알리에겐 더할 나위 없는 행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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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익을 감수한 이들의 ‘용기’는 아름답다. 알리의 용기는 어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행동과 비교된다. 몇 년 전 팬덤이라는 알량한 핑계를 대며 병역을 ‘기피’했던 가요계의 한 인물이 그랬다. ‘창창한’ 정권 창출의 야욕을 보였던 과거 권력자의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몸이 허약해서’ 군대를 가지 못할 정도의 그에겐 “북한 동포에게 총을 겨누지 않아야 될” 이유를 댈 수 있는 신념은 없었다. 그는 아버지의 정권 창출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만 있었겠지.
“남들이 원하는 내(챔피언)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내 자신(챔피언)이 되겠다”고 포효하던 알리의 목소리가 그립다. 징집여부가 왜 챔피언 타이틀과 상관이 있어야 하는지, 자신이 원하는 챔피언으로서의 길을 거닐었던 알리를 우리 안에서 끄집어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세상의 ‘무지’와 싸우기로 했던, 명징한 삶의 목표로 세상의 수레바퀴가 되고자하는 선배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세상을 향해 돌을 던지고 싶’었던 한 시절에서 한줌 멀어진 채 궁상을 떨고 있는 내게 용기를 심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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