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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무비일락

[무비일락(舞馡劮樂)] 눈으로 마시는 신의 물방울, <와인 미라클 (Bottle Shock)>

by 낭만_커피 2008. 11. 26.

[무비일락(舞馡劮樂)] 눈으로 마시는 신의 물방울,

<와인 미라클 (Bottle Shock)>


‘와인’하면 떠오르는 국가는 어딘가. 아마 프랑스나 이태리가 먼저 떠오를 것이고, 칠레와 미국, 스페인도 빠지지 않겠다. 물론 와인은 취향이다보니 국적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알다시피 와인 종주국은 유럽이다. 그래서 미국산 와인은 어쩐지 젖비린내가 나는 사람도 있겠다. 미국에서 와인이 본격적으로 생산된 역사는 1848년 골드러시 이후다. 더구나 그것도 해충과 금주법 시행으로 못다 핀 꽃 한송이가 된 것을 감안하면 1960년대부터 기지개를 켰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반세기가 되지 않은 세월동안 미국 와인산업은 어떻게 절치부심하면서 짧은 기간 유럽 와인에 대적할 정도가 됐을까.  



그 하나의 단초를 소재로 다룬 영화가 <와인 미라클(Bottle Shock)>이다. 말하자면, 미국 와인의 ‘깜놀(깜짝 놀랄만한) 뒤집기 한판’.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 회자되는 1976년의 ‘파리의 심판(Judgement Paris)’이 그 극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그 사건이 도대체 뭐냐고? 실상은 그랬다. 어떤 품종이건 코카콜라 맛이 난다는 둥, 프랑스 와인계로부터 멸시와 조롱을 당하던 미국 와인. 그러다 1976년, 미국의 독립 200주년 되던 해, 어쩌면 단순 이벤트였다. 영국인 와인판매상 스티븐 스퍼리어가 제안을 했다. 프랑스 보르도와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의 원산지와 상표를 모른 채 마셔보고선 어느 것이 나은지 평가해보자는 것. 말하자면 ‘블라인드 테스트’. 그런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프랑스 대표선수들을 미국의 신예들이 눌러버린 것. 화이트와인과 레드와인 모두 왕좌는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와인이었던 샤토 몬텔레나 1973년산과 스택스 립 와인셀러스 1973년산의 몫이었다.


당시 이 자리에 있던 유일한 언론인, 타임지의 조지 테이버가 이를 <파리의 심판>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타진했고, 이후 동명의 제목으로 책까지 나왔다. 이 극적인 사건을 소재로 영화는 캘리포니아산 와인의 알싸한 맛을 전하고자 허구를 덧붙였다. 캘리포니아의 휘황한 햇살 아래 근사하게 펼쳐진 나파 포도밭의 풍광, 그에 곁들인 ‘포도밭 그 사나이들(부자)’의 갈등과 화해, ‘구름 속의 산책’처럼 알콩달콩한 로맨스. 눈으로 마시는 와인이랄까. 포도(와인)에 담긴 어떤 생의 결을 다룬 이야기다보니 굳이 와인을 속속들이 몰라도 되겠다. 2004년 눈으로나마 캘리포니아를 돌아다니며 와인 맛을 음미하게 해준 <사이드웨이(Sideways)>의 감흥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다시 그곳을 만나는 기쁨도 있겠다.


참고로, 원제인 ‘Bottle Shock’는 와인을 병에 담거나 옮기는 과정에서 부주의로 향이나 맛이 변했다가 시간이 흐르면 돌아오는 일시적인 현상을 가리킨다. 참, 블라인드 테스트는 한번으로 끝났냐고? 아니. 1986년과 2006년에도 있었다. 결과는? 미국 와인이 정녕 신의 물방울인겨? 말 한해도 알겠지?



‘대세윤복’의 스크린 환생, <미인도>

‘혜원 신윤복’이 대세다. 문근영이 신윤복으로 환생해서 브라운관을 채우더니, 이번엔 김민선이 신윤복이 돼 스크린을 공략한다. 역사학자 등이 신윤복은 분명 남성이었다고 못을 박고 있지만, ‘신윤복이 여성이었다면’이라는 가정은 매력적인 소재인가보다. 화원 가문의 아들이 신통치 않자, 재능이 뛰어난 막내딸 신윤복(김민선)이 가문의 영광(?)을 짊어질 운명이 된다. 남자 행세를 하면서 오빠의 삶을 살게 된 윤복. 단원 김홍도(김영호)의 제자로 정을 쌓고 있던 그에게 어느 날 나타난 강무(김남길)는 사랑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김홍도와 기녀 설화(추자현)가 얽힌 사랑의 엇박자. 자유롭고 과감한 사랑의 풍속화를 그렸던 윤복과 <미인도>의 이면에 대한 상상도.


애니와 다큐의 새로운 접합, <바시르와 왈츠를>

1982년 레바논 전쟁에서 벌어진 대학살. 개인이 감당하기엔 그 학살의 충격이 너무도 컸던 탓일까. 친구의 악몽을 들으면서 자신에겐 말소된 어떤 기억의 행보를 좇는 영화감독인 ‘나’의 이야기. 그는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자신의 흔적을 찾아나서 기억퍼즐을 끼워 맞춘다. 과거의 비밀을 알아갈수록 선명하게 나타나는 어떤 그림들에 의해 역사 또한 분명해진다.  

독특한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바시르와 왈츠를>은 새로운 영화적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실존인물을 토대한 한 영화내용 또한 역사와 개인의 관계를 새삼 자각하게 만든다. 2008년 칸에서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고, 국내 영화제 등에서도 관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영화적 신경험도 되고, 세계를 사유할 수 있는 수작 애니메이션.


보이지 않는 세계의 추악함, <눈먼자들의 도시>

갑자기 전 인류의 눈이 먼다면? 그런데 나 혼자만 눈이 보인다면? <눈먼자들의 도시>는 이 끔찍한 상황을 다룬다. 실명(失明)이 대세가 된 시대와 장소가 불분명한 어느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아마도 보이지 않는다고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틀렸다! <눈먼자들의 도시>는 이를 아수라장으로 묘사한다.

포르투갈의 문호, ‘주제 사라마구’는 인류문명의 취약함을 안다. 그의 소설 『눈먼자들의 도시』와 『눈뜬자들의 도시』는 인간의 취약한 본질을 꿰뚫는 현미경 같은 책이다. 그의 소설이 어떻게 영상화됐는지, 궁금하다고? 소설보다 약할지는 몰라도, 영상으로 구현된 상상력도 나름 볼만한 거리를 제공한다. 물론 더 좋은 것은, 소설을 통해 당신의 머리와 가슴이  구현한 상상력이겠지만. 


[코엑스몰 내방객을 위한 감성매거진, '몰링'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