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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사랑, 글쎄 뭐랄까‥

[낭만 혹은 낭만파괴] 첫사랑 장례식

by 낭만_커피 2017. 7. 9.


어느 해,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첫사랑이 결혼한다고 알려왔다며, 인연은 현실과 일치하지 않더라, 고 회한 섞인 넋두리를 털어놓았다. 자기는 먼저 (다른 사람과) 결혼한 주제에 그녀가 결혼한다고 마음이 흔들리다니, 뭔 도둑놈 심보냐고 놀려댔다. 허나 그들의 사랑했던 날을 알고 있던 나는 문자에 꾹꾹 눌러 담은 녀석의 마음을 엿봤다. 흔들리는 마음, 그건 죄가 아니다. 누구는 결혼하고 누구는 결혼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불공평하니 그렇지 않니, 저울질할 것은 아니지 않은가. 녀석은 흔들리는 마음의 실체를 잘 모르겠다고 했다. 마음이 허한 것도 같고 이상하다고도 했다. 그럴 만도 했다. 녀석에겐 결정적인 순간마다 어그러지는 인연이었던 그 사랑, 첫사랑이었다. 물론 그 기억, 첫사랑이라는 이유로 미화되거나 왜곡되기 일쑤임도 분명했지만. 녀석과 술 한 잔 마셨다. 물었다. 마음이 아파? 흔들리는 거야? 진짜 첫사랑이야?


사람은 처음 하는 것에 의미를 붙이고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하)는 습성이 있다. 

‘첫’이라는 관형사를 붙여. 시간이 흐르면서 ‘첫’은 모든 것을 천천히 삼킨다. 세상의 모든 ‘첫’은 아련해지고 애틋해진다. 첫사랑은 그 중에서도 으뜸이다. 그런데 한 결혼정보회사가 결혼하지 않은 351명에게 첫사랑에 대해 물었다. ‘첫사랑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가장 많은 답변(62%)은 ‘가장 많이 좋아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첫’에서 흔히 생각하는 ‘가장 처음 좋아한 사람’을 답변한 사람은? 25%였다. ‘가장 아프게 좋아한 사람’을 첫사랑으로 생각하는 응답도 10% 있었다. 첫사랑은 따라서 (각자의) 해석이다.

 

문제는, 첫사랑은 과거로만 끝나지 않는다. 

현재와 교류하거나 영향을 미친다. 좋거나 나쁘거나, 현재진행형이다. 요절이 슬픈 것은 열어볼 수 없는 미래의 어떤 가능성 때문이다. ‘깨진’ 첫사랑도 마찬가지다. 첫사랑의 요절과도 같은 그것은 영원히 응답을 기대할 수 없는 기다림이다. 쉽게 잊히지 않는 사건이다. 첫사랑이 현재의 사랑이라면 다른 문제이겠으나, ‘첫사랑은 깨진다’는 속설처럼 실현되지 못하고 좌절된 사건이 첫사랑이다. 그래서 첫사랑은 역설적으로 그 후로도 오랫동안, 생의 시간을 지배하거나 향을 남긴다.


첫사랑처럼 광범위한 사회 공통의 경험도 드물다. 

대부분 한 번쯤 겪고 앓는다. 그리고 신성시된다. 과거 ‘순수한 한때’를 상징하는 시공간으로 특권을 부여받는다. ‘그때와 달리’ 세속의 때도 적당히 묻고 속물이 돼 버린 지금, 첫사랑은 ‘잃어버린 순수를 품고 있었던 시절’을 상징한다. 현재의 비루함이나 궁상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종교적 체험이다. 그땐 그랬지, 라고 우리는 과거는 물론 첫사랑을 미화한다.


술 한 잔하면서 다시 확인하니 친구의 그 첫사랑, ‘처음’은 아니었다. 

가장 아프게 사랑한 기억이라고 했다. 뭔가 아쉬움이 남았고 그것이 마음 한 구석에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젠 마음에서 보낼 수 있겠다고 했다. 첫사랑 장례식! 다만 그것이 왜 결혼 때문이어야 하는지, 나는 할 말이 있었으나 녀석 앞에서 꺼내진 않았다. 애도는 녀석의 몫으로 남길 뿐.


첫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흔들리게 하는 마술 같은 단어다. 

세상에 단 하나여야만 할 것 같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존재. 나는 그것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내가 하는 모든 사랑을 첫사랑이라고 명명했다. 그 사람과 내가 하는 처음 사랑이니까, 첫사랑. 그러니까 나는 첫사랑‘들’을 겪었다. 따라서 첫사랑이라고 특별할 것도, 유난스러울 것도 없다. 오래 전,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2003)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나는 첫사랑을 억지로 ‘사수’할 생각이 없다. 


첫사랑은 사수보다 (마음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 정여울(《마음의 서재》)의 말을 곱씹는 이유다. “모든 첫사랑은 저마다의 가슴 속에서 한 번씩은 죽는다. 안타깝게 끝나버린 첫사랑을 위한 가상의 장례식을 치러야만, 첫사랑은 매번 ‘그 다음 사랑’과의 고통스러운 비교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평생 첫사랑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첫사랑의 애도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세상 거의 모든 이들에게 그토록 넓은 오지랖을 자랑하는 첫사랑. 

피할 수는 없다. 다만 첫사랑이 끝난 뒤, 꼬리를 잘 잘라야 한다. 만남이 우연에 의해 조작된다면 이별은 의지가 작동한다. 진즉 끝냈어야 할 것을 질질 끄는 것은 나쁘다. 첫사랑과의 이별 역시 마찬가지. 사랑하는 동안 다 쏟아야 한다. 어설프게 꼬리를 남기고 마는 사랑은 나쁘다. “가장 슬픈 이별도 나쁜 지속보다는 낫다”는 말을 긍정하는 이유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널 사랑하지 않아. 기억할 뿐이야. 굿바이, 내 첫사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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