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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사랑, 글쎄 뭐랄까‥

[책하나객담] 안 생겨요? 이 책을 권함! 연애 불능 시대의 끝장왕~

by 낭만_커피 2013. 10. 23.




‘에로스’라는 말을 들으면 서야 하는 인간이 있다. 에로스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신화 속 에로스(神)가 이 세간의 오해를 맞닥뜨린다면 얼마나 슬플까. 가난한 어미(페니아) 아래 늘 결핍 속에 살지만, 풍요를 대변하는 아버지(포로스)의 피를 받았기에 그는 선과 미, 그리고 진리를 사랑했다. 지의 사랑, 곧 철학의 정신인 에로스는 뭣보다 중간자였다. 지와 무지의 중간자. 끊임없이 지를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이유다. 인간이 진리를 추구하게끔 만드는 정신적 욕구의 의인화가 에로스였다. 고대인에겐 따라서 에로스는 육체적 생식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인간의 생명을 무한으로 끌어올리는 정신적 생식의 힘이었다.

 

그러니 세간에는 ‘사랑’에 대해 무지막지한 오해도 있다. 사랑은 공부하는 것이 아니란다. 사랑은 살면서, 저절로 주어지는 감정이라는 편견이 횡행하고 있다. 사랑은 무조건적인 행복을 안겨준다는 편견도 빠질 수 없다. 과연 그럴까. 사랑은 행복과 함께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안락과 편의와는 함께 할 수 없다. 안락과 편의에 대한 기대조차 가질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진짜 사랑을 해본 당신, 알 것이다. 사랑은 쉬이 주어지는 감정과 다르다. 좋아하는 감정은 그저 감정의 일부일 뿐 사랑의 실체가 아니다. 사랑은 당사자에게 그(녀)의 능력과 의지를 최대한 발휘할 것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실패할 수 있다. 사랑은 늘 밑바닥을 바라보게 한다. 부족함을 드러내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고도 경고한다. 사랑은 꽃놀이패가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사랑에게 늘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내게 행복이기도 했지만, 아픔이었고, 쪽팔림이었으며, 나를 성찰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무엇이었다. 달이 차오를 때까지, 사랑했지만, 헤어짐도 피할 순 없었다. 아팠지만, 쓰라렸지만, 사랑의 반대말은 헤어짐(이별)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 이렇게 말하더라. “인연이 아니었나보다.” 대놓고 반박하진 않지만 어이가 없었다. 그걸 위로라고 하다니! 인연이 아니라면, 우리가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사랑할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그 위로의 전제에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있다. 나름대로 그 어쭙잖은 위로를 해석하면 이렇다. 인연이 아니라는 말 앞에는 ‘결혼을 하지 못했으니’ ‘결혼에 이르지 못했으니’가 생략된 것이다. 아니, 사랑이면 사랑이지, 왜 결혼과 늘 연결을 지을까?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라는 엉성하고 빈약한 이데올로기에서 사람들은 왜 벗어나질 못하는 거지? 나는 그것이 늘 궁금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답을 얻었다. 사랑에 대해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을 떠나 보낸 내게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었다. “인연이 아닌 게 아냐. 인연이 딱 그만큼이었던 게지.” 인연이 아니라는 말, 내 사랑에 대한 모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책은 거듭 그것을 확인해준다. 사랑은 한 세계(우주)가 다른 세계(우주)를 만나는, 일대 사건 혹은 사고임을. 평행우주의 궤적이 어쩌다 공명하게 된 순간이다. 사랑사건 혹은 사랑사고. 오죽하면, 트루먼 카포티는 이런 말을 했을까.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


그리하여, 헤어졌지만 새로운 세계를 알려 준 그 사랑(연애)에 나는, 늘 고마워했다. 물론 경우마다 사유의 깊이나 폭은 달랐을지언정, 나는 그 사랑(들)이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요소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내 안에 그들(사랑) 있다! 그렇다고 내가 사랑을 완벽하게 마스터한 것은 아니다. 사랑은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할 호기심 천국이다. 세상엔 ‘사랑 불능 환자’가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사랑 타령이 넘실대지만, 사랑에 대한 아포리즘도 넘치지만, 우리는 언제나 사랑이 고프다. 사랑이 아프다. 왜? 


사랑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다. 배우지 못했으니 체화할 수도 없다. 사랑(연애) 불능자가 넘쳐나는 이유다. 연애가 불가능한 시대인 이유다. 기이하고 기괴할 정도로 ‘싱글 지옥, 커플 지옥’에서 차고 넘칠 것 같은 연애지만, 그런 분위기는 상업주의 자본이 만든 지옥도다. 우리는 그 지옥도에서 사랑과 연애에 오해의 딱지를 붙여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다.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우리가 분류하는 모든 것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사랑 안에 있다. 사랑만 제대로 알아도 (사람으로서) 기본은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통해 만난 ‘사랑학’에 공감했다. 사랑은 그저 한 사람의 마음에 똬리를 튼 감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모름지기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고 사회적 소통이다. 세간의 사랑에 대해 불만이 있다손, 마냥 그들만 탓할 것도 아니다. 그들이 배우고 훈육 받은 것이 그랬다. 학교고, 사회고, 가르쳐주지 않았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다. 사랑이 중요하다고 시부렁거리면서, 정작 사랑을 공부하고 배움을 줄 수 있는 환경을 조성 못한 죄. 고작 미디어 등을 통해 왜곡된 사랑(연애)의 형태나 편견을 강화하도록 전달했다.

 

고대부터 사랑은 공부하는 것이었다는 증거도 있다. 《인문학스터디》는 이렇게 전달한다. “철학적 삶에 대해 플라톤이 주목한 또 하나의 사랑이나 욕구, 즉 에로스(eros)가 지닌 중요한 역할이다. 플라톤이 《파이드로스》에서 묘사한 소크라테스는 활력에 넘쳐 에로스의 요소를 철학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사랑은 무엇을 ‘위해’ 있는가? 사랑은 우리에게 좋은 것인가? 우리는 자율성을 얻기 위해 우리의 사랑을 아주 작게 줄여야 하는가? 이것들은 오늘날 젊은 남녀들도 당연히 호기심을 품는 문제다.”

 

이 책의 미덕은 단순하다. 사랑을 공부하라. 사랑을 하려면,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사랑은 살아가는 시공간과의 소통이다.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다. 두 사람만의 것이 아닌 사회적인 사건사고! 더 넓은 세계로 입문하는 통로. “사랑은 궁극적으로 ‘삶을 아름답게 창조하는’ 행위”이며, 사랑은 그래서, 어떤 시대적 기준을 들이대도, 불온하다. 모든 것을 바꾸기 때문이다. 사랑이, 혁명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유다. 부디 당신의 사랑과 연애가 우리 각자의 삶과 유리되지 않길 바란다. 연애한다고 친구를 끊고, 사회적 관계망을 좁히는 것은 연애가 아니다. “사랑의 능력에서 핵심은 사랑과 삶이 맺는 관계에 있다.” 그리하여, 반복한다. 사랑은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고로, 사랑을 공부하지 않는 후천성사랑결핍증 환자들에게, 이 책을 권함! 


(특히 <안 생겨요>(개그콘서트)의 두 안 생긴 개그맨들에게 권함! 아차차, 그러면 안 되겠구나. 그들이 이 책 읽고 생기면, 코너가 폐지될지 모르니까~ㅎ)


  

p.s.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연애컨설턴트랍시고, 연애 코칭, 연애 멘토링을 자처하며 펴낸 연애기술서들을 보겠다면, 쌍수 들어 말린다. 그것들 거의 모두 쓰레기다. 그깟 쓰레기따위 다 소각하거나 개무시하시라.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와 다음의 책들을 권한다.




(* 2008년, 그린비 판본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리뷰의 개정판이다. 반디앤루니스의 다정한 에디터(콘텐츠팀) 요청으로 일부 수정해서 '오늘의 책'에 게재했다. 또 보낸 원고에서 아주 살짝 수정하거나 빠진 부분을 회복(눈 밝은 이는 눈치 챘으리라~ㅋ)했다. 북드라망 개정판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은 읽질 않아서 어떻게 수정됐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믿고 보는 '고미숙' 선생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