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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그 사람 인 시네마

이은주,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by 낭만_커피 2008. 2. 21.
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라~한다.
개거품 물면서, 바라보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지금까지의 작품 모두-에 나는, 만족하는 편이다. 대부분 작품(아니, 모든 작품이라 해도 무방하겠다)은 남자들의 찌질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찌질한 남자의 모습을 담아놓은 박물관이라고나 할까.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수컷인지라, 나는 그들을 통해 내 안의 찌질함을 되새김질 한다. 쿨럭.^^;; 일정 부분 불편하면서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그런 한편으로 우리 상수 감독께서는 내 안의 지적허영심을 충족시켜주기도 한다. 나는, 역시나,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속물이다. 흐흐. ^^;

그런 상수 감독의 신작이 곧 개봉한댄다. <밤과 낮>. 오, 이 무슨 심오한 제목이란 말인가.
나는, 역시나 그 신작을 기대한다. 밤에 볼까, 낮에 볼까, 그 심오한(!) 고민을 해대면서.
조만간 개봉할 그 영화를 기다리면서,
나는 한 영화를 떠올렸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젊은 배우를 기억의 숲속에서 끄집어냈다.

내게, 상수 감독의 작품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현재로선 <오! 수정>이다.
우연과 의도 사이에서,
찌질한 남자들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수정을 기억한다.
그 수정 역할을 한 이가 고 이은주.

나는, 이은주를 <오! 수정>에서 발견했고,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눈에 넣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는 영영, 떠났다. 그렇게 떠나는 것, 완전 노땡큐인데.
벌써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2005년 2월22일.
영원히 스물다섯에 머문 그는, 이제 박제된 초상이다.
생전 외로웠다던 그를 생각해서일까.
그의 소속사였던 나무액터스에서는,
더 이상 그를 슬픔 속에 기억하지 않기 위한 '추억의 밤'을 연댄다. 역시나 그는 혼자가 아닌게지.
☞ 故 이은주 '추억의 밤', 그녀 떠난 날 열린다

나는,
그를 발견한 <오! 수정>을 보면서,
그를 기억하련다.

어때, 당신은, 이은주를 기억하는가?
당신에게, 이은주는 어떻게 기억돼 있어?

아래는,
3년 전, 그가 떠난 뒤,
그를 추모하며 바람에 날려 보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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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인기절정에서도 혼자였던 故이은주씨를 추모하며

하루가 길기만 하고 홀로 밤을 맞은 당신.
혼자인 밤, 인생의 어려움은 모두 맛본 듯이 느껴질 때, 아직 포기하지 마세요. 누구나 울기도 하고 누구나 상처를 입으니까요.
모든 것이 잘못됐다고 느껴질 때, 그때가 바로 함께 노래를 불러야 할 때입니다. 하루가 밤처럼 어둡고 혼자일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 인생의 쓴맛을 충분히 맛봤다고 느껴질 때, 그때 포기하지 마세요. 누구나 상처를 받는 법이죠, 친구들에게 위안을 찾으세요.
자신을 포기하지 마세요, 혼자라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R.E.M 의 (번역)가사
박운정/음악칼럼니스트 씨네21 491호 <그런지 시대를 연 남자들-R.E.M>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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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수정>에서는 우연인지 의도인지 모를 엇갈린 사랑의 기억을 만드는 역할을 맡았다.

배우 故이은주씨. 영원한 스물다섯으로 대중들의 뇌리와 가슴에 박힌 사람. 지난달 예기치 않게 세상과 절연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시간은 흐르고 있다. 그가 거부해버린 시계 초침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거역할 수 없는 일상의 무게다. 그는 남아있는 대중들의 일상에서 차츰 지워질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지독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 에 대한 추앙의 흔적이 온갖 미디어를 통해 태풍처럼 지나간 시간. 안타까웠고 아까웠다. 더 이상 그의 새로운 모습을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을 통해 엿볼 수가 없다. 그도 여느 요절 유명 연예인의 초상마냥 그리움의 대상으로만 박제된 셈이다. 10여 편의 필모그래피. 그 사람이 문득 떠오를 때면, 이제 그 남은 흔적들만이 우리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

대중의 추앙을 받으며 인기와 부를 얻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 누구나 울기도 하고, 누구나 상처를 입음에도, 나는 어리석게도 그들이 조금은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나보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혼자였던 사람’이었다. 미디어를 통해 공개된 유서의 일부를 통해 ‘참 힘겨웠나보다’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만’이라는 혼잣말을 던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여느 사람살이의 힘겨움을 토로했다. 춥고 어두운 그의 방이었나보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던 그. 그가 얼마나 외로워했는지, 그에게 가해지고 있는 현실의 무게감이 무거웠을는지, 그저 어림짐작하고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한편으로는 슬프다. 진즉 좀더 따스한 손을 내밀지 못한 팬으로서 말이다.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스크린상에서 만난 그는 아름다웠고 주체적이었다.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했고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을 주시했고 움직였다. 슬픈 비극을 예고하는 가운데서도 꿋꿋함을 잃지 않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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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점프를 하다>에서 태희역을 맡았던 이은주씨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은 사랑의 판타지를 묘사했던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이씨가 맡은 태희는 유난했다. 두근거리는 첫 만남의 설렘과 진실하고 열정적으로 나눈 사랑의 시간. 그러나 예기치 않게 닥친 비극을 뒤로 하고 태희는 빙의였건, 환생이었건, 옛 사랑과 해후한다. 가슴에 박힌 그 ‘사랑’은 이성애의 신화에 발목이 묶여 보수적인 성 정치학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번지점프’를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씨의 연기는 인상 깊었다. 자신의 앞에서 주춤대던 인우를 이끌면서 실루엣 왈츠를 추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었다. 그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그랬다. 사랑을 위해 주체적으로 손을 내밀고 말을 건넸다. 혼자이지 않았다.

그리고 <연애소설> 역시. 경희(이은주)는 사랑하는 지환(차태현)이 자신의 친구 수인(손예진)을 사랑함을 알았지만 꿋꿋했다. 경희는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행동했다. 상처를 품고서 끝까지 꿋꿋하게 희망을 품던 모습도 있었다. 지환에게 어느 날 “내 장례식에 와 줄 거지”하며 죽음이 안겨다주는 두려움과 슬픔을 목 넘기던 그였다. 서로의 상처를 다독이고 위로 한줌 나눠가지던 그였다. 친구를 잃고 자신마저 흔적을 지워야한다는 사실을 얼마나 인정하기 싫었을까. 그럼에도 극 중의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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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에서


연애의 과정을 해부하던 <오! 수정>에서도 그는 과감했다. 우연과 의도. 엇갈린 사랑의 기억을 만드는 수정을 연기하던 이씨는 묘한 공명을 만들어냈다. 가슴이 시린, 그러면서도 사랑의 속살을 한 꺼풀 뒤집어주던 수정은 이씨에 의해 생명감을 얻었다. 여성을 울타리에 가둔 <태극기 휘날리며>였지만,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집안을 이끈 강인한 모습을 보였고 헌신했다.

이제 당신이 행복해졌으면 합니다

혹자는 이씨의 죽음을 필모그래피에서 맡은 배역과 연관 짓기도 하지만, 외려 그는 대개 주체적인 역할을 맡아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증명하고, 서로의 상처를 다독였다고 생각한다. 그런 모습에서 그에 대한 매력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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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에서

현실의 그가 어떠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누군가 좀더 가까이에서 손을 내밀어줬으면 좋았을 터였다. 많이 울었을 터이고 상처도 여기저기 곪아 있었을 그가 누구에게든 함께 노래를 불렀어야 할 터였다. 친구들이 그가 포기하지 않도록, 혼자가 아님을 각인시켜줬으면 하는, 유효기간이 지난 넋두리도 해 본다.

그저 언제 들어도 힘을 주고 마음을 달래주는 노래나 영화가 그에게도 있어서 그를 붙잡을 수 있었다면.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그의 영화가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고 희망을 줄 터인데 그에겐 정작 그런 것들이 없었던 것일까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마음에 힘이 되는 그런 존재들이 너무도 아쉬운 이 팍팍하고 지리멸렬한 현실. 그래도 남은 자들은 버티고 견뎌야 한다. 세상은 분명 우릴 속이고 있지만, 우리 곁에는 너와 내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에도 웃고 기뻐할 수 있는 너와 내가 있음으로 인해 우리네 사람살이는 그렇게 지탱된다.

때늦은, 부질없는 넋두리겠지만 그에게 건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이제 당신은 혼자가 아니랍니다. 이제 당신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당신에게 끝은 없습니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던 당신이었지만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한해가 지나면 나는 한 살이 또 늘겠지만 당신은 영원한 스물다섯으로 남아 당신을 부러워하는 날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아득하게 멀게만 보이고 당신을 끄집어내는 날은 그리 많지 않겠지만, 그리 쉽게 잊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당신이 그리운 날은, 당신의 흔적이 남은 영화들을 ‘잠깐 일어나봐’하며 깨워서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땐 귀찮더라도 잠시 와 주세요. 살짝 내 머리맡에 혹은 내 가슴속에 잠시 들어와서 서로 혼자가 아님을 확인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출연한 <번지점프를 하다>의 마지막 장면에서 인우가 읊조렸던 나레이션을 다시 한번 건넵니다.”

인생의 절벽 아래로 뛰어 내린대도,
그 아래는 끝이 아닐 거라고
당신이 말했었습니다.
다시 만나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2005. 3 국정넷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