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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무비일락

아키라, 드디어 만나다

by 낭만_커피 2007. 11. 17.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아키라>를 마침내, 만났다. 당연히, DVD가 아닌 스크린이다. 그 감격이란, 스크린을 뚫고 들어가서 영화에 출연하는 기분이랄까.^^; 비록 아쉽게도 필름버전이 아닌 DV 캠버전이었지만, 상영 전 일본 신사분께서 충분히 설명을 했다. 나는 상관없었다. 극장에서 <아키라>를 만난다는 사실에 마냥 들떠 있을 뿐. 신화가 된 재패니메이션을 알현하는데, 어찌 심장이 떨리지 않으리오. 이번 일본영화제는 내겐, <아키라> 한편으로 충분했다. 비슷한 시각, 다른 멋진 공연을 내팽겨치고 선택한 결과였다.

<아키라>는, 그런 설렘과는 달리 디스토피아를 다루고 있다. 문이 열리면서, 묵시록이 온 몸을 덮친다. 1999년 제3차 세계대전 이후, 2019년 '네오도쿄'의 을씨년스런 풍경. 물, 바람까지 모두 인공이 지배하는 세상, 인간성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서로 죽고 죽이고, 통제하고 반항하는 군상들만 가득할 뿐.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라고? 맞다. 이 정도 디스토피아를 다룬 영화야, 대명천지에 깔리고 깔렸다. 그러나 <아키라>는 1988년 작품이다. 88올림픽을 국가부흥의 기치로 삼으려고 한국이 떠들썩하던 그 때. 그러한 시기에, 디스토피아는 언감생심 아닌가. 유토피아적 풍경만이 미디어와 전국을 장식하고 있던 때. 저 현해탄 건너의 오토모 카츠히로 감독은, 암울한 미래를 얘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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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키라>는, 무엇보다 힘이 넘쳤다. 작화나 음악, 스크린을 통해 만나는 <아키라>는 에너지가 가득했다. 지금에서야 이미 수백수천번 우려먹은 내용이지만, 2007년에 만난 <아키라>는 그 에너지만으로도 미덕이 됐다. 그 묵시록의 풍경과 어우러진, 힘 있는 작화와 박진감 넘치는 음악은 흡입력 있는 영상을 배출했다. 한마디로 짜릿했다 이거다. 묵시룩이 동반한 에너지는 묘한 리듬감을 부여했고, 그것은 영화 관람에 그대로 투영되는 경험이었다. 순수한 영화적 쾌감을 동반하게 한다고나 할까. 그것은, 허황되고 뜬구름 잡는 메시지의 전시보다는 훨씬 낫다.

물론, <아키라>가 마냥 영화적 쾌감만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니다. 사이버펑크 애니메이션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된 것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손쉽게는 장밋빛 미래를 열어줄 것 같던, 과학기술이 빚어낼 수 있는 폐해부터, 아나키즘과 세계의 창조적 전복, 끝간데 없는 허무주의 등 <아키라>는 미래를 공포로 여기게끔 유도하기도 한다. 실사영화인 <블레이드 런너>가 이룩한 성과를 애니메이션으로서 최초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엄청난 초능력을 얻게 된 소심소년, 테츠오가 네오도쿄를 파괴하는 악마(?)로 돌변하고, 그와 폭주족 동료였던 한 소년이 그의 악행을 멈추게 한다는 이야기. 계층적 불평등과 소외에 한이 맺힌 한 소년의 사회적 복수와 이에 맞서는 꼬마선지자들의 대립. 사필귀정, 선악구분 아니냐, 고 묻는다면, 맞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묵시록과 암울함은, 이야기 전개가 상투적이라고 생각할 여력을 주지 않는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대중의 이미지도, 언젠가 다가올 붕괴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문명은, 인간과 사회의 정반합으로 빚어지기도 하지만, 힘의 균형이 깨질 때, 인류는 철저히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아키라>는 문명의 욕망에 대립각을 세우지 못한 채 끌려다닌, 인류의 패배에 다름 아니다.  

그런 면에서, 감독 오토모 카츠히로는 "희망은 무엇인가"라고 묻기보다는, "희망을 버려"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아키라> 표면에서 떠돌고 있는 아나키즘은 새로운 문명으로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파괴를 이야기한다. 모든 것이 철저히 파괴된 이후에야, 이 세계는 새로이 창조될 것이라는 복음이다. 기술이 인간을 구원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지금에야 많이 희석됐다곤 하지만, 희망을 잡고 싶어하는 자들에겐 중요한 무기다. 결국 기술이라는 문명에 인간은 짓눌릴지 모른다. 절대적인 힘, '아키라'의 부활에 매달려,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간과하는 과학자의 모습이 그것을 대변한다.

혼자 생각일지 몰라도, <아키라>는 21세기에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 작화는 약간 후진 맛이 있어도, 순간순간 보이는 거리의 공간감과 모터바이크의 질주 장면 등등은 한마디로 '황홀경'이었다. 공포가 범벅된 쾌감은 거의 밀도 100%에 가까울 정도였다면, 물론 과장이겠지만.^^;; 음향은 인도네시아의 민속악기를 이용했다고 한다. 극장에서 들은 음향은, 전혀 후지지 않았고, 영상과도 끝장매칭이었다. 나는, 이렇게 압도적인 애니메이션을 처음 봤다. 오죽하면, 고작(?) 애니메이션 하나가 '백과사전'에까지 등재됐겠는가. ☞ 두산백과사전 '아키라'
 
재패니메이션의 만신전에 오른 중대한 작품 중 하나인, <아키라>는 이후 많은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82년에 역시, 오토모 카츠히로가 연재하기 시작했다는 원작만화를 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부채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 막판에 양념으로 넣자면, 지금은 없어진, 부산의 삼일 혹은 삼성극장에 어쩐 일로 애니메이션 간판이 붙었다. 당시 제목, <폭풍소년>. 왠일인가 궁금했다. 왜냐면, 그 극장은 우리에게, 평소 빨간딱지의 영화를 동시개봉으로 공급하던 곳인데, 얼토당토 않게 애니메이션이 붙었으니 이상할 밖에. 갸우뚱 거리면서도, 찐~한 애니메이션인가? 하고 보질 않았는데, 알고 보니 '홍콩영화'라고 속이고 개봉한 <아키라>였다. 금새 뽀록이 났고. 우리의 극장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내가 아키라를 처음 만났던 그때. 그리고 16년이 흘렀다. 어찌 감격스럽지 아니하겠는가. 나도 모터바이크, 뽀다구 나게 타고싶다규~~~ 이젠, DVD 차례닷!


아, 그리고 진짜 중요한 건, 내년, <아키라>의 20살 생일이다. 일본에서야 분명 움직임이 있을테고, 한국에서도그 물결을 타고, 스크린을 통해 또 보여주면 안될까. 이 한몸은, 기꺼이기꺼이, 묻어가실 용의가 있다는 말씀!

그래서, 나는 내년에도, 모터바이크의 '활홀경'에 빠져들고 싶다규!!
그러다, 그 옛날 모터바이크 로망을 되살리겠다고 발작(?)을 일으킬지도 모르지만,
아키라의 20주년, 나는 동참하고 싶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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