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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무비일락

연대한다면, 이들처럼… < 카모메식당 >

by 낭만_커피 2007. 11. 24.

핀란드
"항상 친절하고 언제나 여유롭게만 보이던 것이 제가 알고 있던 핀란드인의 이미지였어요. 하지만 슬픈 사람은 어느 나라에서도 존재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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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특정영화가 보여주는 풍경에 혹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이동진 기자 마냥, '필름 속을 걷'고 싶은 게지. 그러면서, 나만 간직하는 '필름을 찍'고 싶은 게지. 올해 <카모메식당(かもめ食堂, 2006)>이 그랬다규. 핀란드, 꼭 가야겠다는 욕망을 훅~ 불어넣던데...

이전부터 가고 싶은 곳 중의 하나였지만, <카모메식당>은, 그 이유를 확실히 더했지. '휘바'(좋아), 그 한마디 핀란드어를 품고 가리라. 북유럽 발트해연안의 추운 나라. 그렇지만, 차별은 덜하고, 세계최고수준의 복지수준을 가진 나라. 뭐, 그런 레떼르는 필요없고, 날 당긴 풍경은, 핀란드의 숲.

백은하는 먼저 선수를 쳤지만, 백은하 글
(<<안녕 뉴욕>>) 따라, 뉴욕을 누볐듯, 핀란드도 백은하 글 따라, 나는 발걸음을 옮길지도 모를 일이야. 나는 도대체, 누구냐? 백은하 추종자? 아니면 백은하 스토커? 이참에, '따루'(미수다)한테 접근해봐? 근데, 20여일 전 핀란드 고등학생의 총기난사사건 때는 깜짝 놀랐어. 핀란드에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아둔한 편견도 한몫. 맞아, 세상 어딜 가도 슬픈 것은 슬프고,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법.



"좋아하는 일을 하신다니 참 부럽네요."
"아뇨, 그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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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에는, '카모메 식당'을 하는 자신을 그렇게 설명한다. 그래서 더욱 내겐, 착근한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싫어하는 일에서 점점 멀어지고자 노력 중이야. 아직은 미욱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 일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로망이지, 아마.

사실, 죽지 않을만큼 일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야. '일하고 싶다'는 아우성을 이 사회는, 회사는 철저히 이용해먹고. '일하는 것을 축복으로 알라'는 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건 협박에 가깝지. 피를 뽑아먹기 위한 자본의 혀놀림.

그러니, 얼마나 좋아. "그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을 뿐이에요"라는 말. 덤덤한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내공이 숨어있을 거라고. '싫은' 일과 절연하기 위한, 압도적인 사투 같은 것. 많은 이들은 '싫은' 일을 울며겨자먹기로 하고 있다규. 먹고 살기 위해. '호모 루덴스'(유희의 인간)의 본성을 꾹꾹 억눌러 가면서. ㅠ.ㅠ

커피
"커피를 더 맛있게 만드는 법을 알려 드릴까요? (...) 코피…루악...
누군가 당신만을 위해서 끓이면 맛이 더 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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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에의 독백으로 진행) 한달만에 마침내, 첫 손님이다. 멀끔한 핀란드 학생이네. 커피를 시켰다. 주먹밥이 아니라 안타깝긴 해도, 그는 우리 가게의 첫번째 손님. 커피를 마시면서, 흐뭇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다. 그래, 첫 손님이니만큼 앞으로 평생 무료로 대접해야지. '갓챠맨'(독수리5형제) 가사를 알고 싶대서, 운좋게 미도리도 만나고.

커피는, 그렇게 내 마음의 표현이다. 우연히 합류하게 된 낯선 일본 여자들과 핀란드 노부인들은 물론, 불쑥 등장한 낯선 남자에게도, 나는 커피를, 대접한다. 앞서 가게를 했던 그 낯선 남자가 가르쳐 줬잖아. 커피를 더 맛있게 만드는 법. 그리고 주문, '코피…루악'. 꾹꾹 누르면서 행하는 커피 주문. 당신만을 위해 끓이는 이 한잔의 커피. 당신과 나를 잇는 이 한잔의 커피. 그리고, 이라샤이~ ^.^

(참고로, 핀란드는 성인 1인당 하루 커피흡입량이 가장 많단다. 1인당 하루에 4~5컵, 매년 10kg 가량.)


연대
"우리 내일 시나몬 롤을 만들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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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절대 끈적끈적하지 않더라. 그러면서, 그들은 '진짜' 연대하지. 대선·총선용, 추호도 아니죠~ 그들은, 생이 외로운 것임을 안다. 자신이나 타인 모두. 그러면서도, 피해가려 발버둥 치지 않더라. 그들은 자연스러워. 혼자임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의지하는 것 또한 민폐가 아님을 알고.

나는, 다른 무엇보다 그 연대가 살갑고 좋았어. <카모메식당>은, (여성)연대의 영화라고 생각해. 부대끼면서 친한 척하고, 서로를 이해한다는 핑계로 노린곰팡내 나는 사연을 구구절절 풀어놓는 것, 완전 별로야. 사치에, 미도리, 마사코는, 서로의 깊은 곳까지 묻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아. 그들이 왜 진짜 핀란드에 왔는지, 구체적인 사연을 우리는 알 수가 없지.

뭐, 상관 없었어. 내게 중요한 건, 그들이 형성한 연대의 형태야. 피붙이는 아니지만, 정붙이로서, 그들이 이룬 연대 혹은 대안가족. 그들은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길을 언제나 열어두더군. 떠나고 싶으면 떠나고, 다시 돌아오면 팔 벌려서. 나는, 대개의 남자들이, 특히나 요즘 큰 어른들이 '연대'한답시고 설치는 꼬라지는, 별로다. 남자들은 '예하연대'나 보내라. 사적소통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끈적끈적하자고 들이대는 남자들의 연대나 의리는, 완전 별꼴 반쪽. 우웩.


나는, 그저 이런 그네들 모습이 좋더라.

사치에는 커다란 가방을 들고 마켓에 장 보러 가고,
미도리는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맞으면서 달리고,
마사코는 숲에서 버섯을 줏으며 하늘을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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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이제야 말하지만.
사랑해, <카모메식당>.
그 여름을 관통하고, 가을의 으스러짐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면서, 겨울 찬바람에도 날아가지 않은, <카모메식당>의 모습에서, 나는 사치에를 떠올릴 수밖에 없군. 참으로 사랑스러운 영화~

처음 <카모메식당>을 보고 나서, 좀처럼 그런 생각은 않는데,

감독을 약간 질투했었어. 나와 비슷한 또래인데, 벌써 자기 것을 이렇게 훌륭하게 만든 걸 보고. 나는 <카모메식당>을 이렇게, 감탄했어~

아직 안 봤다고? 오우, 저런. 괜찮아.
스폰지하우스 압구정에서 아직 하니까. 시간 맞춰 봐도 좋고. DVD도 곧 출시돼.
무엇보다 기대되는 건, <카모메식당>의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차기작,
<안경>이 곧 개봉된다는 거지.

뭐, 날 실망시킬 수도 있겠지만, 괜찮아. 핀란드 가면 돼.
그곳에선 모든 일이 잘 풀리겠지. ^^  


참고로, 카모메는, 갈매기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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