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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아시나요? 먼로 씽킹(Monroe Thinking)!

by 낭만_커피 2012. 6. 2.

 그냥 촌부라고 생각했었다. 미셸 윌리엄스. 그녀를 처음 인식했을 때 그랬다. <브로크백 마운틴>. 동성애자(게이)임을 숨긴 채 살아야 했던 에니스(故 히스 레저)의 슬픔, 그것이 이 영화의 정조를 지배했었다. 

 

헌데 그런 에니스를 지아비로 삼고 살아야했던 엘마(미셸 윌리엄스). 동성애를 배척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와 공간. 그속에서 그저 보수성을 머금고 살아야 했던 엘마. 가슴에 돋는 슬픔을 품은 그녀의 이야기, 나는 궁금했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뒤로 밀려야 했던 두 여자, 루린(앤 헤서웨이)과 엘마의 이야기를 외전으로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히스 레저의 죽음이 있었고, 그녀의 얼굴을 봤다. 그와 결혼하질 않아서 이혼한 것은 아니지만, 헤어진 히스 레저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의 어머니. 그런 삶의 비극 역시 품은 여성으로서 미셸 윌리엄스. 실은 예쁘거나 아름다운 배우는 아니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엘마의 배역 정도로 스크린에 존재할 줄 알았다.  

 

 

그러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 깜딱이야. 알마가 마릴린 먼로라고? 뭐야, 미친 거 아냐? 말도 안돼. 그러나, 내가 틀.렸.다. 그것도, 완.벽.하.게. 마릴린 먼로와 다르지만, 그녀는 마릴린 먼로였다. 마릴린 먼로를 우리가 몰랐던 만큼, 미셸 윌리엄스도 몰랐다. '아무도 몰랐던 그녀(마릴린)의 로맨스'를 살짝 드러낸 그녀(미셸)는 결과적으로 '소수만 알았던 그녀의 진면목'을 드러낸 셈이다. CNN은 그녀의 연기에 대해 이리 표현했다. “미셸 윌리엄스는 사라지고 마릴린 먼로만 남았다.”

 

미셸 윌리엄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탔어야 했다. 

마릴린 먼로는 물론, 미셸 윌리엄스를 알게 해 준 이 영화. 괜찮다아~

 

그리고,  우리가 오해했던 마릴린 먼로. 올해 50주기. 

살아 있었다면, 6월1일은 86세 생일이다. 마릴린, 생일 축하해요.

생일 축하 선물로, 그녀에 대한 오해 한꺼풀, 벗긴다.

내가 아름다운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뷰즈> 기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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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나요? 먼로 씽킹(Monroe Thinking)!

[People View] 마릴린 먼로 50주기,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의 그녀가 진짜 예쁜 이유

  

“정치적 자유를 갈망하고, 사회적 약자를 옹호하는 진보적 이데올로기를 추종했던 배우, 반공을 애국적 광기로 몰아가던 매카시즘에 저항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던 용기 있는 배우, 인민주의를 이상으로 삼아 인민(people)이라는 말을 좋아했던 배우, 자신의 신체적 매력을 전략적으로 남성 판타지 속에 투사하며 가부장적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생존을 시도했던 파워 페미니스트로서의 잠재적 가능성을 지닌 여성, 연기를 통한 자아실현의 의지를 갖춘 철학적 시인 같은 지성적 배우, 고독을 친구 삼아 철저하게 자기 준비를 했던 프로, 대중이 만들어준 스타의 공익적인 기능을 간파한 동시에 장식품이 되기를 거부했던 지성, 그러면서도 자아도취와 자기혐오라는 극단적인 인지 부조화 속에서 죽음으로 자신을 내몰 정도로 순수하게 자신을 직면했던 마릴린 먼로!”

 

 

영화평론가 유지나의 이 발언, 도발적(?)이다. ‘영원한 섹스 심벌’이자 ‘백치미의 대명사’인 마릴린 먼로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뒤집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마릴린 먼로’라는 설명이 없다면, 저 발언에서 먼로를 끄집어내기란 쉽지 않다. 유지나에 의하면, 먼로는 사회문제를 직시하고 용기와 지성을 갖춘 배우였다. 의문이 생긴다. 과연 우리는, 먼로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섹시와 관능으로만 덧씌워진 그녀의 이미지, 정당한 것일까? 마릴린 먼로가 궁금하다!


2012년, 마릴린 먼로 50주기


마릴린 먼로

(Marilyn Monroe, 1926.6.1~1962.8.5).

 

2012년, 사망 50주기를 맞았다. 죽은 먼로를 향한 다양한 이벤트, 당연한 일이다.

 

칸영화제는 먼로를 ‘2012년의 아이콘’으로 선정, 그녀의 모습을 담은 포스터를 공개했다. 세계적인 사진작가 협회 매그넘 소속 작가들이 찍은 미공개 사진들이 수록된 ‘마릴린 바이 매그넘’도 출간된다.

 

앞서, 먼로의 전성기 중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다룬 영화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도 만들어졌다. 먼로의 새로운 모습이 대중들에게 속속 공개되고 있다.

 

헌데 이런 움직임, 과연 먼로에 대한 전형적이고 박제된 이미지를 깰 수 있을까. 섹시하다, 관능적이다, 와 같은 수식어로부터 먼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글쎄, 아닐 것이다.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먼로의 지성미는 어색하다. 먼로에 대한 소비패턴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먼로의 농염한 사진으로부터 지성과 사회적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끄집어내긴 싫다. 먼로의 지성, 한마디로 배신이다. 먼로가 섹시할 때에라야 대중은 반응하고, 소비할 뿐이다.   


먼로가 탄생시킨 고유명사에서도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먼로 효과(Monroe Effect). 그녀가 주연한 <7년만의 외출>의 한 장면에서 비롯됐다. 고층빌딩 아래 발생하는 난기류나 지하철 환기통에서 발행하는 바람 때문에 스커트가 갑자기 뒤집히는 경우를 일컫는다.

 

엉덩이를 흔들며 걷는 걸음걸이에는 먼로 워크(Monroe Walk)라고 이름을 붙였다.

 

먼로 룩(Monroe-Look)은 허리를 졸라매고 풍만한 가슴을 강조하는 글래머룩을 뜻한다.

 

먼로 메이크업(Monroe Make-up)도 있다. 하얀 피부, 입가의 점, 새빨간 립스틱으로 메이크업할 경우, 이렇게 붙이는데 당시 여성들은 일부러 입가에 점을 찍기도 했다.

 

먼로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더욱 각인시킨 명사들이지만, 한 결 같이 진짜 먼로(의 삶)는 없다. 먼로의 (영화 속) 이미지에만 기댔을 뿐이다. 어쩔 수 없다. 그것이 먼로의 불행이었다. 지독하게 불행했던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지독하게 애를 썼던 한 여성에게 세상은 가혹했다. 그녀의 육체에만 관심을 가졌다. 조울증에 시달리면서 36세에 요절한 그녀. 의혹은 여전하지만, 그녀는 세상에 의해 타살당한 것 아닐까. ‘섹스 심벌’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다. <라이프>紙와 했던 마지막 인터뷰에 실렸다. 


“나는 ‘섹스 심벌’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의 심벌이 되었든 이 심벌은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섹스 심벌이 사물화 될 때 그렇다. 나는 물건 취급당하는 것이 무엇보다 싫다. 하지만 내가 어떤 것의 심벌이 되어야 한다면 기꺼이 섹스 심벌이 되겠다. 어떤 여자들은 스스로든 스튜디어의 유혹에 의해서든 나처럼 되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 여자들은 전방이나 후방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그러니까 그들은 그 중간에서 살고 있다.”


다시 지켜보자, 먼로의 삶

 


먼로가 가장 좋아한 미국인은 에이브러햄 링컨이었다. 그녀처럼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인물이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녀의 본명은 노마 진 모턴슨(Norma Jeane Mortenson). 아버지는 그녀와 함께 살지 않았고, 어머니는 우울증 환자였다. 그녀가 일곱 살 때,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수용됐다. 먼로는 양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고아원을 전전했다. 그녀는 철저히 가난했고, 애정 결핍에 시달렸다.

 

16세, 첫 결혼을 했고, 먹고 살기 위해 방위산업체에서 위장도색 페인트칠을 했다. 우연하게 사진 모델 일을 하게 됐고, 단역배우로 영화에 출연했다. 그러나 남편은 그녀의 일과 꿈을 하찮게 여겼다. 결혼한 지 4년, 두 사람은 헤어졌다.

 

이후 먼로는 단역배우를 거쳐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마릴린 먼로는 이 과정에서 얻은 이름이었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1953)로 섹시스타로 자리매김한 그녀는,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1953), <7년만의 외출>(1955), <버스 정류장>(1956), <왕자와 쇼걸>(1957), <뜨거운 것이 좋아>(1959), <부적합자>(1961) 등에 출연, 영화배우로서 입지를 다졌다.

 

연기자로서의 그녀는 결코 다른 배우에 뒤지지 않았다. 섹시와 관능의 이미지에 매몰돼 연기력이 저평가 받았을 뿐이다. 섹스 심벌은 다분히, 남성판타지가 만든 산물이었다.

 


아울러 먼로를 ‘하찮게 여기게’ 만든, 사생활에 대한 편견도 따랐다. 그녀는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 극작가 아서 밀러 등과 결혼과 이혼을 했고, 아인슈타인, 프랭크 시네트라, 이브 몽탕, 존 F 케네디 등과 염문설을 뿌렸다. 이런 것이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바람둥이 이미지를 그녀에게 각인했다. 그것은 동서고금 대중들의 악취미다. 셀러브리티의 연애담을 멋대로 각색한다. 그리고 주홍글씨를 새긴다.

 

《세상을 유혹한 여자 마릴린 먼로》에 의하면, 먼로는 진정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싶은 여인이었다. 조 디마지오와 혼인했을 때, 남편 가족의 종교인 가톨릭을 믿으려 애썼고, 아서 밀러와 혼인하고선 그를 따라 유대교로 개종했다. 그녀는 온몸과 마음을 다해 자신의 남자를 사랑했다.

 

성격차이에 의해 헤어졌지만, 디마지오와 다시 재결합을 추진했다. 재결합을 목전에 두고 그녀는 세상을 떠남으로써, 사랑은 더욱 아파해야했지만. 실제로 디마지오는 20여 년 이상 매주 그녀의 무덤을 찾아 장미꽃을 바쳤다. 1999년, 그가 숨을 거두기 전 했던 말에서 우린 그들의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이젠 먼로를 다시 볼 수 있겠구나.”

 


 

마릴린 먼로, 자신의 가난만을 극복하려고 애쓰진 않았다. 할리우드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던 언론인이자 작가, 링컨 스테펀스 등의 작품을 탐독했다. 그녀 지인 중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로 분류되는 자들이 상당수 있었고, 그녀 또한 FBI에 의해 그렇게 분류돼 감시를 당하기도 했다. 그녀는 가난한 이의 편에 서서 모순된 사회구조에 맞서고자 했다. 가난이 개인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임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금발의 백치가 아니었다.


그녀가 떠난 지 50년이 흘렀지만, 많은 우리는 먼로를 섹스 심벌과 백치미에 가둔 채 오해(!)하고 있다. 금발의 반쯤 풀린 눈과 도발적인 입술로 교태를 부리는 몸짓, 풍만한 가슴과 큼지막한 엉덩이로 발산하는 관능,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던 여인. 《마릴린 먼로: : The Secret Life》의 저자, J.랜디 타라보렐리는 말한다. “마릴린 먼로는 단순한 유명 영화배우, 훨씬 그 이상이다. 그녀는 연약한 정신이자 관대한 영혼 그리고 그녀 자신의 마음과 황폐한 싸움을 한 용감한 투사였다.”

 

모순과 비겁, 정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백치미라며 우습게 여겼던 마릴린 먼로만큼의 사회 인식을 품고 있을까? 먼로의 50주기. 어떤 형태로든 우리에게 다가올 먼로의 모습을 지켜보자. 그 속에서 진짜 그녀의 모습을 찾자. 그리고 지금 우리의 모습도 함께 지켜보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 먼로의 또 다른 고유명사, 먼로 씽킹(Monroe Thinking).   

 


참고자료 : 위키백과, <네이버 [인물 세계사] : 세기의 스타 마릴린 먼로>, 《마릴린 먼로: : The Secret Life》(J. 랜디 타라보렐리 지음/성수아 옮김|체온365 펴냄), 《세상을 유혹한 여자 마릴린 먼로》(칼 롤리슨 지음/이지선 옮김|예담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