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타인의 고통'이 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려준 지성, 수잔 손택

by 낭만_커피 2012. 12. 30.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중에서

 

12. 여기저기서 고통 섞인 비명이 섞여 나옵니다. 미디어에 게재된 사진을 봅니다. 그런데, 사진을 그냥 사진으로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사진에 담긴 이미지가 통각을 불러옵니다. 아픕니다. 슬픕니다.

 

12, 그렇습니다. 체로키족이 명명한 '다른 세상의 달'이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크리크족이 말한 '침묵하는 달'이 됐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침묵하는 달. 주류 언론 대부분은 침묵합니다. 지난 21, 한진중공업 복직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서른다섯, 두 아이의 아빠는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는 가족들에게도 마지막 말을 전합니다. "사랑하는 내 가족. 먼저 나쁜 생각해서 미안합니다. 나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힘듦입니다. 이제야 내가 많이 모자란 걸 압니다. 슬픕니다." 얼마나 힘이 들면, 자신의 행복이라던 가족을 버려야 했을까요.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그랬을까요. 눈물이 났습니다. 내가 뽑은 커피 한 잔, 내 눈물 한 자락이 담깁니다. 우리는 그의 힘겨움을 덜어주지 못했습니다. ‘함께 살자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못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녔습니다. 22, 현대중공업하청지회 노동자가 19층 아파트에서 투신했습니다. 한중노동자 소식을 듣고 많이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과연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상, 우리가 살아갈 만한 곳일까요.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사회라니요. 그럼에도 이 국가는, 이 나라의 정치(권력)는 묵묵부답입니다. 젊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응답하라고 부르짖건만 말입니다. 이 사회는 왜 남의 고통에 무덤덤하기만 한 것일까요.

 

생각해봅니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크리스마스였었습니다. 크리스마스라는 이유만으로 흥겹고 즐겁고 벅찼던 시간, 모두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는 부류와 그렇지 못하는 부류로 나눠지나 봅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자본(화폐)의 자장 안에 들어간 까닭일까요? 온 누리에 선물을 베풀지 못하나 봅니다. 크리스마스가 슬픈 이유입니다.

 

 

수잔 손택(Susan Sontag, 1933.1.16~2004.12.28)을 떠올립니다. 8년 전, 세상을 떠났던 뉴욕의 지성이자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뭣보다 지금 그를 떠올린 것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성찰 때문입니다. 그는 이미지 속의 고통은 보는 이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자신은 안전한 곳에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는 사실도 간파한 대중문화평론가이기도 했습니다.

 

손택 여사는 에세이 작가이자 뛰어난 소설가이며 예술평론가였습니다. 1966, 그가 서른세 살에 내놓은 문화평론모음집, 해석에 반대한다》는 세계 지성계를 발칵 뒤집어 놨습니다.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과 세계에 대해 가하는 복수"라는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담은 이 책은, 서구 미학의 전통을 이루던 내용과 형식의 구별,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별을 재기발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허투루 나온 게 아니었죠. 미국 뉴욕의 중산층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독서에 빠져 지냈고, 영민했습니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던 어머니를 닮지 않기 위해 자신에게 철두철미했습니다. 평생 4시간의 수면을 삶의 규칙으로 삼았고, 스물다섯에 이혼하면서 남편이 준다는 양육비를 거절했습니다. 그는 내면의 힘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강의와 기고로 고집스럽게 자신과 아들의 생계를 책임졌고, 자신만의 사상적 체계를 확립해 나갔습니다.  

 

손택 여사는 그렇게 강한 여성이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쉽게 자신을 놓거나 굽히지 않았습니다. 40세 무렵 유방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2년 이상 방사선 치료를 하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은유로서의 질병을 발표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질병은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임에도 불구, 학자나 작가들이 만들어낸 병에 대한 은유적 이미지가 환자들의 질병에 대한 투쟁을 방해하고 있다." 이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진지하자, 열정적이자, 깨어 있자!'라는 삶의 좌표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발터 벤야민, 아르토, 바르트 등의 유럽의 지성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했습니다. 생에 대한 성실하고 치열한 자세로 사회현실에의 참여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뭣보다, 특정 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쳤습니다. 작가, 문화비평가, 연극연출가, 영화감독, 예술가, 사회운동가 등으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시대와 세계에 문화적 스타일과 감수성의 자극을 줬습니다. 그는 말하자면, 예술적인 심미안을 갖춘 사회적 행동가로서, 이성과 감성이 균질하게 배분된 행복한 경우입니다. 물론 그것을 위한 엄청난 노력과 실천이 따랐기 때문에 가능했겠지요.

 

무엇보다 손택 여사, 911에 대처하는 미국 정부를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당시 미국사회에 불어 닥친 반이성적 태도를 비판하며 "다 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고 언급했고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서도 "사이비 전쟁을 위한 사이비 전전 포고를 그만두라"고 부시행정부를 공격하는 등,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는 무력으로 힘을 과시하고자 했던 미국의 패권욕에 제동을 걸고, 세계가 더 나빠지는 것을 막고자 현실 참여와 감수성의 자극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런 노력 덕분이었을까요. 200310월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독일출판협회는 그에게 "거짓이미지와 뒤틀린 진실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사상의 자유를 굳건히 수호해 왔다"는 찬사를 하면서 '평화상'을 수여했습니다.

 

손택 여사, 문학가이면서 세상과 현실을 바꾸기 위해 실천한 운동가였습니다. 무릇 작가란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고 기득권의 지배논리에 포섭되지 않는 마음의 목록을 지닌 사람임을 감안한다면, 그는 백퍼센트 작가였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이 자신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관음증적인 향락을 보건대, 흔히 사람들은 타인의 시련, 그것도 쉽사리 자신과의 일체감을 느낄 법한 타인의 시련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듯하다." 이 말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엿볼 수 있지 않나요?

 

손택 여사가 사라예보에서 만난 여인과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자신이 안전한 곳에 있다고 느끼는 한, 사람들은 무관심해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하고 나의 고통처럼 받아들여야합니다. 어떤 매체가 타인의 고통을 어떤 태도로 다루는지, 우리는 그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자의식을 가지는 일, 중요합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것은 능력입니다. 그냥 가만히 있는다고 얻을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는 얘깁니다.

 

손택 여사가 떠났던 이맘 때,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힘들어서, 돈이 없고 무서워서, 세상을 등집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어떤 아픔과 고통에도 응답하지 않는 이 사회에 절규하는 것입니다. 세상엔 수많은 아픔과 고통이 있지요. 나와는 전혀 상관없고, 내 책임도 아닐 법한. 그러나 그 모든 것, 동떨어진 무엇이 아닙니다.

 

그러니, 기억해야 합니다. 나 역시 아무런 악의 없는 누군가나 시스템에 의해 상처 입고 아픔을 겪게 될 수 있음을. 내가 외면하면 언젠가 혹은 곧 나도 외면 받게 될 거라는 사실을. 수잔 손택이 우리에게 알려준 불편하지만, 잊어선 안 될 진실입니다.

 

그렇다고 막연히 희망을 이야기할 순 없습니다. ‘차라리, 희망을 버려!’ 이것이 더욱 현실적인 대답이 아닌가 싶습니다. 희망은 현실에서 꽃필 수 있는 것이지, 막연한 기대에선 희망고문에 지나지 않습니다. 19세기 영국의 비평가 윌리엄 해즐릿은 그랬습니다. “불행에 대한 사랑, 잔악함에 대한 사랑은 연민만큼이나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전쟁 없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잘 사는 이상적인 세상은 오지 않을 겁니다. 더 이상 나빠지거나 최악으로 가는 것만 막아도 다행이 아닐까요. 수잔 손택은 그런 면에서 당연히 읽어야 할 작가이며, 타인의 고통도 반드시 읽어야할 책입니다. 그리하여, “희망을 버려!”, 그것은 비관이 아닌 현실 긍정이며, 고독한 자기푸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사입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소식과 인류를 짓밟는 해악들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드러난다손,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커지는 것은 아닙니다. 타인의 고통을 몸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당사자가 고통을 표현하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고문과 폭력을 연구한 영문학자인 일레인 스캐리는 고통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지금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이면서도 너무도 아픈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노동자들의 잇단 분신과 투쟁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는 눈길, 자본과 폭력에 항거하는 사람들을 폭도로 모는 시선. 이 모든 것은 이미지 과잉의 시대와도 연결돼 있지 않을까요. “너의 불행과 아픔이 곧 나의 행복과 기쁨이 지금 시대의 명징한 징후가 아니라면, 우리는 타인의 세계를 존중하면서,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챙겨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타인의 고통은 타자를 분석하거나 교정하지 말고 돌봄의 윤리를 갖는 시선이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지 않을 것은 물론, 전쟁의 본성, 연민의 한계, 양심의 명령까지 생각해볼 것을 권유하는, 수잔 손택의 나지막한 속삭임을 지금 떠올리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함께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세 차례에 걸쳐 암과 싸워야했던 수잔 손택도 힘을 잃고 마는 때가 왔습니다. 20041228, 향년 71,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우리는 시대의 지성을 잃었습니다. 8년 전, 세상을 떠난 그를 추모하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무덤덤해지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