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종드 쭌/무비일락

특별할 것 없지만, 특별한 마을을 찾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A Gentle Breeze in the Village)

by 낭만_커피 2007. 10. 21.
지난 12일 폐막한 12회 부산국제영화제(PIFF).
9편의 시네마 혹은 세계와 조우했고,
행복한 시네마 유람이었다.

그리고 PIFF리뷰에 올린, 어설프게 갈겨 쓴 세 편의 감상문.

찰나지만, 어떤 사소한 순간을 포착해서 그것을 특별하고 감질나게 세공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팍팍을 넘어, 퍽퍽한 일상의 찌질한 흙탕물에서 허덕이는 이들을 구원해주곤 한다. 적진에서 만난 구원병이랄까.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도 그런 사람이 아닌가 싶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A Gentle Breeze in the Village). 나는 그 바람을 맞으며, 사소한 일이 빛나는 순간을 감지할 수 있었다. 행복한 영화보기. 그리고 새뜻한 영화 만나기.  

 
여기 한 시골마을이 있다. 산과 논이 어우러진 한적하고 순박한 마을. 주민들 또한 그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순박한 마을주민들은 각자의 일에 충실하고, 자연은 그런 주민들과 함께 호흡한다. 따사롭고 온화한 기운이 충만하다. 로컬 푸드로 자급자족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의식주는 마을 내에서 충분히 해결된다. 가끔 그 안에서 해결할 것이 없으면, 시내로 나가면 된다.
 
중학교 2학년인 미기타 소요(카호)가 사는 곳은 그런 시골마을이다. ‘특별하고’ ‘드라마틱한’ 일은 과연 있을까 싶은. 학교도 초미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등하교도 같이 한다. 마을주민들도 하나같이 연결돼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에 충분히 만족하고, 만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의 스틸컷. 출처 : www.piff.org


그런데, 그 조그만 시골학교에 사건이 일어난다. 도시에서 한 남학생, 오사와(오카다 마사키)가 전학을 온단다. 소요의 마음은 콩닥콩닥. 같은 나이, 같은 학년이란다. 동생들밖에 없는 학교에, 마을에, 도시물을 먹은 남학생의 등장은 잔잔한 우물가에 돌을 던지는 셈이다. 더구나 꽃미남이기까지. 특별한 일 없던 시골은 한순간 들뜨기 시작한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그런 마을과 소요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대개 도시인의 시골 유입은 관습적으로 다뤄지곤 한다. 도시와 시골이 충돌하면서 빚어지는 문화적 충돌이나 갈등이 다반사. 화해할 수 없는, 양립할 수 없는 가치의 대립은 사건을 불러오고, 그건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판단을 내리곤 한다. 기껏해야 도시와 시골의 화해나 갈등의 봉합 정도?
 
그런데,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다른 지점을 선택한다. 그 특별한 사건은 별다른 갈등구조를 형성하지 않는다. 조그만 일상의 균열이 불러온 그네들의 달뜬 감정을 보여주면서도, 일상의 흐름을 유지한다.

시골을 찾은 도시인들도 그들의 일상을 크게 방해하지 않는다. 감정은 시간과 궤적을 같이하면서 성장하고, 사람들의 심성 또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울 뿐이다. 이런 재미없는 영화가 있나 싶겠지만, 평범한 일상과 감정을 전면에 내세운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연출은 별 볼일 없는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

 
이 영화에서는 특정한 사건이 주인공이 아니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순간이 주인공이다. 야마시타 감독은 그 일상에서도 심장박동이 뛸 수 있는 그런 순간이 있음을 알려준다.

급식 시간의 메뉴는 ‘사이 좋은 친구밥’이라는 귀여운 방송멘트로 지칭되고, 연애질 때문에 ‘오줌 참아라’고 툭 내뱉었다가 방광염에 걸려 결석한 막내를 미안한 마음에 찾았는데, 그 막내가 반갑다고 안겨올 때, 발렌타이데이에 돌고 도는 초콜릿의 행방을 보자면, 순간 가슴이 뛴다. 아, 그래, 우리에게도 저런 순간들이 있었지,하는 감탄.

 
그건 하나의 기적이다. 생의 모든 순간을 기적이라 칭할 순 없지만, 가슴이 뛰는 찰나의 순간을 기적이라 칭하지 말란 법도 없지 않는가. 짧게 끊어치는 고만고만한 에피소드들은 제한된 공간의 사계절을 관통하면서 더욱 풍성해진다. 성장은 훌쩍 커버리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이 모인 결정체라는 것을 보여주듯.
 
야마시타 감독은 다른 세계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힌트를 준다. 아이들은 다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때문에 다리라는 지름길을 쉽게 건너지 못했다. 그러나 꽃한송이로 지금은 없는 그를 위로하고 성큼 다리를 건너던 오사와를 따라 소요가 선입견을 깨고 역시 위로에 나선다.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야마시타 감독은 또한 이 영화를 도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나 시골에 대한 향수로 그리지 않는다. 도시와 시골에 대한 사려 깊은 연출로 도시와 시골의 간극을 자연스레 좁힌다. 오사와의 공간을 느끼고픈 소요는 수학여행을 간 도쿄에서 귀를 기울여 사물과 소리에 집중한다. 시골에서와 같은 바람소리를 들은 소요는 중얼거린다. “너희들과 언젠가 어울릴 날이 있을지도 몰라.”

 
특히 <린다 린다 린다> 등을 연출한 야마시타 감독은 소녀들의 감성과 일상을 길어 올리는데 일가견이 있음에 분명하다. 어리버리하고 순진하면서도, 사려 깊음과 여우같은 면모를 지닌 소요의 첫사랑은 공명을 일으킨다. 우리에게도 그런 설렘이 있었음을 떠올리게 하는. 마음에 드는 점퍼를 얻기 위해 첫키스와 이를 바꾸는 소요의 마음 역시.
 
영화는 그렇게 쿠라모치 후사코의 만화, <천연꼬꼬댁>의 아우라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속삭인다. 우리가 끊임없이 길어내고 잇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언젠가 마주할지 모르는 다른 세계에 마음을 여는 방법이 있다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등의 각본을 쓴 와타나베 아야는 충분히 원작의 기운을 살렸고, 야마시타 감독은 섬세한 감성으로 이를 연출했다. 어른부터 아이까지 배우들의 연기 또한 이를 감질나게 뒷받침한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어쩌면 관객의 마음에 작은 산들바람을 훅~불어넣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에도 두근거릴 수 있고,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 특별하게 느껴질 어느 순간을 감식하게 되는 그런 ‘기적’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의 바람. 소요도 그렇게 우리에게 속삭이지 않았던가. “이제 곧 없어질지도 모르는 생각과 사소한 일이 갑자기 빛나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의 스틸컷. 출처 : www.piff.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