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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무비일락

청춘과 도시에 들이댄 에드워드 양의 현미경, <마작>(Mahjong)

by 낭만_커피 2007. 10. 18.
지난 12일 폐막한 12회 부산국제영화제(PIFF).
9편의 시네마 혹은 세계와 조우했고,
행복한 시네마 유람이었다.

그리고 PIFF리뷰에 올린, 어설프게 갈겨쓴 세편의 감상문.

좀더 많은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유작들을 보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마작>(Mahjong)이라도 봐서 다행. 10여년 전의 장첸도 나오더군.

도시와 청춘에 건네는 편지


그래, 그땐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어디에도 끼일 틈이 없어 부유했고, 도시는 그런 부유하는 나를 음흉한 미소로 부추겼다. 그래서 도시와 청춘은 때론 함께 부유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지 않은가도 싶다. 너희들을 보면서도 그랬다. 도시는 정글과 같았고, 그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청춘은 도시를 이용하지 않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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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의 한 장면. 출처 : www.piff.org


너희들을 마주하면서 그랬다. ‘그래, 타이베이라고 다르지 않겠지.’ 96년 작품이라지만, 나는 어떤 지금과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실토해야겠다. 도시는 여전히 욕망을 머금고 있고, 그의 산물인 너희 청춘들도 그 욕망에 사로잡힌 포로.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인정투쟁’은 자연스러운 욕구다. 그래서 너희들의 투정에 나는 마음이 갔다. 너희들을 한때 키워주던 가족이나 기성세대는 더 이상 너희들을 보호하지도 못하고, 존경받을만한 사람들도 아니었잖아. 마음 붙일 곳을 상실한 청춘이 도시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니. 그저 그것을 비웃고 외면하는 수밖에.

그렇다고 너희들이 그것을 제대로 조롱하고 뛰어넘을 수 있는 단단한 무언가를 갖추지도 못했잖아. 너희들의 사기, 구라, 사업(?)은 결국 낙오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누구도 너희들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있게끔 알려주지도 않고, 기성세대는 그런 책임에 무심했잖아. 역할모델이 다 뭐야.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전고투할 수밖에 없는 비정한 도시의 얼굴. 비극이지, 비극. 신흥도시였던, 타이베이 역시 그렇게 제대로 된 근대화를 겪지 못한 채 숨가쁘게 달려가기만 했으니까.

그래, 너희들에게서 그런 공통분모와 연민을 느낀 건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였을거야. 이 곳 역시 이른바 ‘아시아의 4룡’으로서 한때 맹위를 떨쳤지. 너희 나라와 같은 테두리에서 비슷한 궤적을 그렸더랬지.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경제성장’이라는 화두에 탐닉해서 속도만 낼 줄 알았지, 브레이크가 고장된 것은 알지 못했던. 국제화된, 메트로폴리탄이 되고픈 도시는 결국 외국인들의 도마에 오른 먹잇감이었던 거겠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뒤틀린 욕망게임.

도시고, 청춘이고, 영혼은 따라가지 못하는데, 몸만 멀찌감치 앞서 나가고 비대해지다 보니, 결국 파열음이 나기 마련이지. 물론 그 속도에 잘 편승한 사람이야 다르겠지. 하지만 그 사이에 끼인 엉거주춤한 청춘은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찾지 못한 채, 살아남기 위해 악다귀 같은 전투를 벌여야 하잖아. 상실의 시대를 관통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뭐? 그래, 부유하는 것이지. 진짜 내가 원하는 욕망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유일한 선택.

홍어(콩센탕)가 늘 ‘No problem’을 입에 달고 사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었어. 그런 어디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을 위로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자기 위안의 말. ‘No problem’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결국 스스로를 기만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는 비극을 맞닥뜨리게 된 거겠지? 어디에도 구원이 없었으니까. 아버지의 자살 또한 기댈 언덕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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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의 한 장면. 출처 : www.piff.org


그 와중에, 제국주의적 성향을 지닌 서양인들이 너희 도시를 장악함으로써, 너희들을 더욱 발붙일 곳 없게끔 만들지 않았을까도 싶다. 홍어가 마르타(비르지니 르도엥)에게 보였던 가식적인 친절은 그래서 나온 것이지. 10년 뒤면 타이베이가 세계의 중심이 될 거라며, 19세기에 이어 21세기에도 제국주의가 영화를 누릴 것이라며, 그래서 여기에 있는 것이라던 데이빗의 말은 너희들이 발붙이고 있는 땅이 어떻게 되고 있단 걸 보여주잖아. 도시는 비열했고, 어떻게든 이익을 건사하려는 서양에서 온 자본 혹은 이익집단의 욕망이 들끓더라. ‘문명’과 ‘근대화’에 대한 우월의식 때문인지, 뒤틀린 생존욕망을 그대로 전이시키고 있는 그들의 흉포함도.

물론 데이빗을 찾아 대만까지 온 마르타가 이말 직후에, 자신을 진심으로 보호해 준 뤤뤤(고웨린)을 다시 찾아가 나누는 키스는 일말의 희망을 안겨다 준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어. 마냥 흑색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메시지였을까.

홍콩(장첸), 너의 울음도 어떤 새로운 징조인 것 같았다. 갑작스럽고 뜬금없어서 어이없이 웃긴 했지만, 울음으로 대신하면서 끝끝내 그 이유를 말하지 않은 것에 어쩐지 마음이 가더라. 연상녀들의 육체와 음식 파상공세에 울음을 떠뜨리면서 자신의 욕망을 대한 자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

나는 그렇게 너희들을 통해 우리네가 살았던, 살고 있는 한 풍경들을 엿봤다. 사실적인 근거에 바탕을 두고 도시와 청춘, 그리고 사람살이를 관찰하는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현미경을 통해. 여전히 나는 그래서, 에드워드 양 감독님이 그립네. 그래, 이만 안녕.

2007/07/02 - [메종드 쭌/시네피아] - "저도 늙어간다고 말하고 싶어요..."... 에드워드 양 감독의 유작 <하나 그리고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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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의 촬영장면. 에드워드 양 감독님과 장첸을 볼 수 있다. 출처 : www.pif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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