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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어리석음의 기록

“본질은 찾는 게 목적이 아니라 계속 찾는 것에 의미가 있다”

by 낭만_커피 2010. 12. 21.
지난 9월, 이우혁 작가 인터뷰.
인터뷰 장소였던 삼성동의 시티(CT) 베이커리.
커피 맛은 차치하고, 인터뷰는 뒤로 하고서라도,
그곳의 헝클어진 채 마음껏 놓여 있는 앤틱들이 참 마음에 들었던 기억.

그래, 얘들아, 잘 있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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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이 있었다. 그야말로, 인터넷 이전의 통신망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던 전설의 이야기. 그 열기는 책으로 연결됐고, 영화로까지 제작됐다. 지금도 『퇴마록』을 꺼내면, 경배 섞인 찬양을 보내는 열혈 신도들이 줄을 섰다. 판타지의 대중화를 이끈 장본인이자, 열혈 신도들을 탄생시킨 교주(?) 이우혁.



그가 7년 만에 새 책을 들고 돌아왔다. 『바이퍼케이션 하이드라』(이우혁 지음|해냄 펴냄). 바이퍼케이션? 수학 용어로 일반적으로 분기, 분기점을 뜻하며, 불확실한 결과, 즉 학문적이라기보다는 도저히 판단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한 지칭이다. 카오스 이론 등에 쓰이는 개념이다. 하이드라는 히드라라고도 불리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물뱀이다. 제목에서 풍기듯, 7년만의 귀환이 상징하듯, 뭔가 큰 놈(!)을 끌고 왔다.


우선 출간된 3권은, 예의 그가 그러했듯, 전주곡에 가깝다. 더 크고 거대한 세계를 향한 담대한 도전. 미국의 한 소도시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연쇄 살인사건을 통해 이야기는 흥미를 더한다. 곳곳에 포진한 신화적 배경과 범죄심리학을 토대로 이우혁은 인간의 본질과 주체에 대해서도 묻는다. “인간의 본질이 대체 뭐라고 생각하죠? 어떻게 그걸 결정짓는다고 생각해요?”(3권, p.12)


과연,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는 그것만으로 충분히 이해되고 알 수 있는 것일까. 이우혁은 피비린내 나는 범죄의 현장에서 느끼는 범죄적 쾌감만큼이나 사유하는 즐거움을 선사하고자 『바이퍼케이션 하이드라』를 선보였다.


지난 15일, 서울 삼성동에서 눈병 때문에 병원을 오가는 상황의 이우혁 작가를 만났다. 7년 만에 다시 독자들과 해후한 반가움부터, 소설 쓰기,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픈 열망 등을 담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야기와 본질에 대한 넘치는 열망이었을까. 눈병 때문에 낀 선글라스를 뚫고 강한 눈빛이 발산되고 있었다. 바이퍼케이션이었다.


『바이퍼케이션』, 7년 만의 신작이다. 이우혁을 기다린 독자들에겐 단비와도 같다.


이번 책은 예전에 쓰던 것과 달랐다. 인정사정없이 썼다. 20대 미만은 보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어린 팬들에게 욕먹고 있는데, 나중에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웃음) 책 내면서 굉장히 걱정했다. 백안시당하는 것 아니냐 해서. 그런데 생각 외로 좋게 봐 주시는 독자들이 많아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소신대로 써야지. 다시 한 번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이 작품의 행간에 숨겨둔 간단하지만 상당히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며 읽는다면 내가 이 글을 쓴 의미와 던진 질문을 찾는 지적인 재미가 부가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그런 것이 싫은 분들이라도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재미와 의미의 두 마리 토끼를 쫓은 내 나름의 노력의 산물이니, 그런 맥락에서 보아주시면 고맙겠다.”(‘작가의 말’ 중에서)



저자로서 이번 작품을 간략하게 소개한다면.


간단하게 얘기하는 건 불가능하다.(웃음) 연쇄살인마나 수사관 이야기, 그게 다가 아니거든. 물론 그것을 기점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지만, 철학적이라고까지 얘기하긴 어렵지만, 주체와 본질에 대한 담론이다. 사실 이건 그런 것만 놓고 말하면, 지루한 얘기다. 재밌는 것으로 포장해서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런 쪽으로 유도하게 하고. 나름 답을 찾고 독자들과 함께 찾는 것이 목적이었다. 감흥을 이끌어내는 이런 것과 달랐다.


“물론 독자들이 재미를 느끼게 만드는 것이 글쓴이의 책임이지만, 그 재미란 것이 떠들썩한 사건이나 외면적인 흥미 요소에만 있지는 않다는 것이 근간의 내 생각이다. 모든 소설이나 창작의 근본적인 문제는 결국은 인간 자신에게 회귀한다.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수많은 상황과 수많은 관점, 수많은 판단이 있지만, 결국은 이 작은 질문에 대한 수없이 많을지 모르는 답을 찾기 위해 창작이 행해지고, 사람들은 그 작품에 흥미를 느끼고 본다.”(‘작가의 말’ 중에서, p.349)


앞선 『퇴마록』 『왜란종결자』 『파이로 매니악』 『치우천왕기』 등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상상력으로 꾸며진 이야기꾼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우혁 장르’라는 레떼르를 붙여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장르를 생각해서 쓰진 않았다. 그것들도 많이 갈라질 건데, 세계관에서만 일맥상통한다. 일단 내가 가진 세계관은 크다. 현실 세계를 포함한 사상의 세계를 다루는데, 동떨어져 다른 세계는 다루고 싶지 않다. 진정한 상상력은 일상 과학, 논리 등 우리 자체를 포함해야지. 옛날부터 그것을 추구했고, 이 책도 아주 크게 보면 그 맥락 안에 있다. 인간 외의 세계도 있는데, 그건 우리가 못 볼 뿐이다. 굳이 얽힌다면, 그 정도가 겹치고 실제는 다른 방향이다.


이번 작품을 위해 15년의 구상과 준비기간을 거쳤다고 했다. 무엇이 가장 시간을 오래 걸리게 했나.


예를 들면, 『퇴마록』은 신기한 자료를 모아서 재창조했다. 재창조는 금방이다. 문제는 제대로 되기 위해서 제반지식을 쌓고 앞뒤를 맞추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예전에 한 출판사에서 ‘환단고기’(주. 한국 상고사를 다룬 책)를 진서처럼, 스토리처럼 만들어달라고 해서 1~2년 조사하고 추적했는데, 안 되겠더라. 논증할 수가 없더라. 이런 경우가 많다.


이번 책은 첫 번째가 심리학이었다.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써봤는데, 안 되겠더라. 맨 처음, 최면을 생각했었다. 최면을 연구하다보니, 그게 아주 작은 부분이더라. 심리학이 크고 포괄적이고. 그러다보니 철학담론까지 이어지더라. 심리를 판정하려면 주체에 대한 것이 중요하다보니, 주체담론을 얘기 안 할 수도 없게 됐다. 처음 생각했던 것에서 자꾸 확산된 거지.(웃음) 후기주의까지 다 훑었다. 심리학이 세분화하면 서른 몇 분야까지 있다. 가령 범죄 심리학도 푸코 쪽에 의견이 많이 기울곤 했는데, 그게 오래 걸렸다.


두 번째로 미국을 연구하는데 오래 걸렸다. 처음엔 배경을 그리스로 할까 생각했지만 결국 미국으로 정했다. 가장 어려운 것이 법률관계였다. 15년 사이에 (관련 법률이) 여러 번 바뀌었다. 바뀔 때마다 엎어야 했다. 완벽한 미국 세계라고 말할 순 없지만, 바뀌고 이러다보니 짜증도 나고 하더라.(웃음)


“이 글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범죄심리학에 있었다. 처음에는 반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조사를 해나갈수록 범죄심리학도 결국은 심리학적인 맥락 하에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작가의 말’ 중에서, p.347)


원래 준비기간이 오래 걸리고, 글은 준비만 끝나면 빨리 쓰는 편으로 알고 있다. 철저한 준비가 좋은 작품을 낳는다고 생각하는 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