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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무비일락

여기만 아니라면, 어딘가에...

by 낭만_커피 2009. 12. 18.

제발 어디든, 이곳이 아닌 어딘가로, 잡히지 말고 가주오.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나는 그렇게 마음 깊이 바라고 있었다. 거의 스크린을 향해 애원하고 있었다. 그들은 탈영병이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을 죽인 범죄자였다. 그럼에도, 내 마음은 그들과 함께 달리고 있었다. 그들처럼, 그네들이 서 있는 이곳만 아니면 될 것 같았다.

억지로 끼워맞추면, 그것은 스톡홀름신드롬이 아녔을까. 나는 그들의 뒤를 따르는 (자발적) 인질이었고, 그들에게 호감과 끌림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탈영이 아니었다. 이유야 어찌됐든, 그것은 사회적 알레고리였다. 그들이 탈주를 시도한 곳은 군대가 아니라, 이 빌어먹을 세상이었다. 그러니, 감정이입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각자 이유는 분명하다. 박민재 상병(진이한)은, 속사정은 군대 간부의 성추행을 견디다 못해, 명분상으론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함이라는. 강재훈 일병(이영훈)은 죽어가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말도 안되는 이유로 상관은 재훈에게 휴가를 보내지 않았다.)  거기에 한 명 더. 소영(소유진). 재훈이 군대 가기 전, 할인점에서 같이 일했던 인연. 자수를 권유하던 그녀는, 어쩐 이유에선지 그들의 탈주를 돕는 공범이 된다. 역시나 스톡홀름신드롬?


그렇게 세 명을 축으로 로드탈주무비는 본격화된다. 그들은 6일 동안 갖가지 위기와 위협, 예기치 않은 살인 등을 거친다. 승용차는 개장수트럭으로 바뀌고, 나중에는 모터바이크에 몸을 싣는다. 도망자의 불안감이 내부적으로 충돌을 불러오고 갈등도 빚지만, 그들은 어차피 더 이상 이 땅에 발을 붙일 수 없는 존재 아니던가. 이미 경계 밖으로 내몰린 존재의 선택은 두 가지다. 죽느냐, 떠나느냐.

감정은 고조되고, 인질이 된 나는 어느 순간 그들이 탈영이 아닌 탈주를 꾀하고 있다고 동화된다. 그래서 '탈영'이 아닌 '탈주'라는 제목은, 적절했다. 아마도 <탈영>이었다면, 나는 그저 군대라는 범주에서만 그들의 행위를 읽으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모양새는 군대를 탈출한 이들의 이야기지만, 그것은 소재일 뿐. <탈주>는 가난하고 없는 사람들에게 한없이 무자비한 국가와 사회에 내몰린 자들의 이야기다.

 

저항은 딱 그만큼이다. 탈주 성공을 간절하게 바랐건만, 집단적 공포감으로 무장한 국가권력의 처벌은 언제나 냉혹하다. 내일 따윈 없어, 탈주.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감정의 파고. 그 안타까움, 그 애처로움, 그 무력함. 여기만 아니면 된다고 했던, 그들의 마음이 나를 후벼판다. 털썩 주저앉아 울고 싶도록 만든 마지막 장면.

그 결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초반부 함께 탈주를 시도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임병이 그러지 않았나. "어디에 있든 지옥"이라고. 집으로 가든, 군대에 있든, 다를 바가 없다고. 여기가 아닌 그 어딘가로 가기만 하면 달라졌을까. 이 영화, 마음을 참으로 서걱거리게 만든다. 꼭 개봉하라. 개봉촉구!!!

P.S...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무장탈영' 소식이 나면, 나는 그들이 전하는 '이유'에 대해 늘 불신한다. 사람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은 단순화시킨다. 무자비하게 처단하고 재단한다. 공포감을 조장하지. 그 이유는 안에 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러면 군대가 쓰나. 존립기반이 흔들거리는 걸. 군대? 조까라 마이싱! 참, 소유진 다시 봤다. 서프라이즈~ 영화든, 소유진이든, 예기치 않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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