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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존 레논, 그리고 큰별

by 낭만_커피 2009. 12. 8.
개인마다 시각 차가 있겠지만,
굳이 음악적이라는 수사를 쓰고 싶진 않고.

존 레논은, 비틀스보다 오노 요코 때가 좋다.
말인즉슨, 존 레논의 완성은, 오노 요코를 만나고 나서.

1966년 11월의 런던, 마음으로 못을 박게 한 여자, 오노에게 훅~ 간 존은,
“내 주위에는 예쁜 여자가 널려있지만, 내겐 요코 뿐이라며 닭살(?)도 날렸다.

존에겐 아내와 아들, 오노는 남편과 딸이 있었으나,
1969년 3월20일 지중해의 관문 지브롤터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이 세기의 커플은, 신혼여행도 반전·비폭력 퍼포먼스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힐튼호텔 침대 위, 하루종일 침묵시위로 베트남전 끝내라!


오노가 존을 품은 대가. '못생기고 젖가슴은 늘어진 창녀' 같은 비난도 들었지만,
존이 오노를 품은 이유. '요코는 내 스승', 7살 연상의 여인을 향한 존의 완전자폭.

세계적인 뮤지션이자 백만장자 셀러브리티였지만,
오노와의 결합 이후, 존은 전위예술을 하는 뮤지션으로 스스로를 갱신했다.

결혼 이듬해, 존은 존 윈스턴 레논에서 존 '요코' 레논으로 이름을 바꿨고,
오노와 헤어지자 존은 극심한 자아해체를 겪다가 재결합 뒤 진정될 정도였다.

헤어짐과 재결합을 오가는 진통이 있었지만,
서로는 서로의 일부이자 전부로서 예술적 동반자이자 삶의 동지였다.

이젠 누구도 그들을 '잘못된 만남'이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12월8일, 그 남자의 가슴에는 그 여자만 있었는데, 생뚱맞게 총알이 박혔다.

1980년이었다.
탕탕탕탕, 네발의 총성.

그 남자, 존 레논이 죽었다.

1980년 ‘비틀스’ 존 레넌 피격 사망


1980년은, 광주를 비롯해 그렇게 잔인했던 해.
아무 것도 모르던 초딩의 나는, 내 친구의 생일을 축하했을 뿐.

그리고 오늘, 바로
존 레논과 오노 요코, 그리고 피플 투 더 파워.


아울러 내 친구, 큰별의 생일!
축하한다. 짜슥아! 존이 떠난 날이 니 생일이라 기억하긴 좋구나. 하하.
그러고보면, 존 레논도 큰 별이었지, 지구의 큰 별. ㅋㅋㅋ
 

환생한 존 레논, ‘오노 요코(Ono Yoko, 1933.2.18~)’와 다시 사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