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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예술의 또 다른 이름, 피나 바우쉬

by 낭만_커피 2009. 10. 8.

예술의 또 다른 이름, 피나 바우쉬

영면한 무규칙 다종예술가에 대한 추모


“두려움은 이 시대의 주요문제 중의 하나로, 피나 바우쉬의 창작 작업에서도 역시 가장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그녀 자신의 두려움이며 그녀의 등장인물들 두려움이다. 그것은 사람을 마비시키고 공격적으로 만드는 두려움이며, 자신을 드러내고 그래서 상대편에게, 파트너에게 무방비 상태로 내맡겨지는 데 대한 두려움이다. 상대방의 반응들이란 신뢰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도 역시 어쩌면 - 다시금 두려움에서 - 맞받아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미 일찌감치 피나 바우쉬는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을 자신의 창작 작업 및 무용수들과의 작업을 위한 제동장치인 동시에 추진력이라고 칭한 바 있다. 그녀는 "그것은 과정이에요. 사랑받고 싶음. 그것이 분명히 추동력이에요. 만약에 내가 혼자였다면 아마도 상황이 달랐을 거예요.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무엇인가 연관이 되잖아요"라고 말했었다. 그것은 앙상블과도 연관되어 있다. 그녀는 앙상블에 해를 입히지 않고 싶을뿐더러, 일종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다.”


-『피나 바우쉬: 두려움에 맞선 춤사위』(요헨 슈미트 지음/이준서, 임미오 옮김|을유문화사 펴냄) 중에서 -


죽음은 그렇다. 태어남으로서 가지는 권리이자 의무, 한편으로 두려움. 그렇기에 그 두려움과 맞서기 위해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사랑. 두려움과 사랑을 주제로 춤을 췄던, 창작열을 불태웠던 피나 바우쉬(Pina Bausch)였다. 영원히 그 두려움을 떨치기 위함이었을까. 자신이 받은 사랑에 만족했기 때문일까. 지난 6월, 마이클 잭슨의 느닷없는 죽음으로 추모와 애도가 들끓던 와중, 30일 ‘현대 무용계의 전설’ 피나 바우쉬가 춤사위를 멈췄다. 그것은 누군가의 죽음이자, 한 세계의 멸실이며, 인류의 손실이었다.


향년 68세. 암 선고를 받은 지 5일 만의 황망한 죽음이었다. 어떻게 손 써볼 도리도 없을 만큼 급작스런 일이었다고 한다. 피나 바우쉬는 여전히 춤과 함께 생을 견디고 있었고, 앞선 10여일 전에도 무용단과 함께 무대에 섰다. 아마 본인도 짐작하지 못하게 다가온 죽음이 아니었을까. 춤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던 예술가도 죽음 앞에선 어쩔 수 없었나보다.


“나는 춤춘다, 고로 존재한다”


그를 단순하게 춤꾼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오독이다. 독일 출신으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무용가’와 같은 타이틀이 붙지만, 그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장르를 창조했다. 춤, 연극, 노래, 미술의 경계를 허문 탈장르 양식인 ‘탄츠테아터(tanztheater)’가 바로 그것. 20세기 현대무용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면서, 경계 없는 예술의 전형을 보여준 그는, 말하자면 ‘무규칙 다종예술가’였다. 


그랬다. 그에겐 경계가 없었다. 두려움도 없었다. 관습이 없었다. 그는 그렇게 ‘무(無)’를 버무려 또 하나의 예술을 빚어냈다. 그것은 기존 질서와 권위에 저항하면서 나온 파격이었고, 혁신이었다. 탐험과 탐구의 정신 그리고 실천이 만들어낸 성취. 고이고 머물면, 썩은 물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하여튼 그 덕분에 대중들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 것도 명백하다. 이런 찬사는, 그리하여 호들갑이 아닌 진실이다. “피나 바우쉬는 무용을 근본적으로 재창조해냈다. 그는 지난 50년 동안 통틀어 가장 뛰어난 혁신가중 한명이다.”


사실 그는 낯가림이 심했다.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가 무대에서 검은 복장을 즐겨 입은 것은, 자신을 내보이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도를 좋아했고, 명성에 우쭐하지 않고 겸손했다. 그런 그였지만, 무대에서는 달랐다. 관객을 휘어잡았고, 예술적 목표의 관철을 위해 무모하리만치의 용기와 추진력을 발휘했다. 본디 성정과 다른 그런 분열(?)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감히 유추하자면, 앞서 언급했던 두려움과 사랑이 아니었을까. 무엇보다 그는 인간에 심연에 주목했다. 어떻게 인간이 움직이는가보다,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가에 흥미를 지녔다. 그의 작품은 그래서, 인간 실존의 핵심적인 질문을 다뤘다. 어쩌면 관객들에게 당혹감 혹은 위안을 받게 만들었다. 춤사위와 어우러진 스토리텔링. 두려움과 사랑은 물론, 그리움과 외로움, 좌절과 공포, 인간에 의한 착취, 어린 시절과 죽음, 기억과 망각 등. 우리 내면 속의 거부할 수 없는 그 무엇들. 무대에서 펼쳐지는 그 마음 속 심연에 때론 당혹하면서, 다른 사람도 나와 같구나, 하는 위안.


스토리텔링, 인간의 실존과 만난 춤사위


1940년 독일 졸링겐에서 태어난 그는, 엣센 폴크방 예술대학, 줄리어드 음악원 등에서 수학한 뒤, 1962년 폴크방 무용단의 프리마돈나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7년 뒤, ‘시간의 바람 속으로’라는 작품으로 쾰른 콩쿠르 1위를 차지하면서 본격적인 안무가의 길로 들어섰다. 33세가 되던 해, 부퍼탈(Wuppertal) 시립 무용단 예술감독을 맡았다. 여기서 탄츠테아터는 탄생했고, 그의 대표작이자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인 ‘Nelken(카네이션)’이 1982년 선보였다. 무대를 채운 1만 송이의 카네이션 속에서 펼쳐지는 여러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작품.


이 밖에 ‘카페 뮐러’와 ‘마주르카 포고’ 등의 대표작이 있다. 평소 그를 무척 흠모하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그녀에게>의 처음과 끝을 이 두 작품으로 열고 닫았다. 그를 모르던 많은 사람들도 이를 통해 ‘피나 바우쉬’라는 이름을 접하면서 강한 인상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공간’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발휘했다. ‘세계 도시 시리즈’는 이를 증명한다. 한 도시에 장기 체류하면서, 그 도시를 모티브로 창작한 작품들이다. 1989년 ‘팔레르모, 팔레르모’(이탈리아 팔레르모)를 시작으로, ‘마드리드’(스페인 마드리드), ‘비극’(오스트리아 빈), ‘Only You’(미국 LA), ‘유리 청소부’(홍콩), ‘비젠란트’(헝가리 부다페스트), ‘아쿠아’(브라질 브라질리아)등에 이어, 2005년에는 한국을 소재로 한 ‘러프 컷’을 초연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일관되게 현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룬다. 그들 사이의 접촉의 어려움, 그 어려움 속에서도 끊임없이 만남을 갈구하는 모습. 그는 추상적인 예술을 추구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삶의 언어를 몸짓으로 드러냈다. 삶에 어쩔 수 없이 스며든 아픔과 고통의 순간, 그리움과 사랑의 편린 등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의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춤사위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그 명성에 힘입어 인구 40만의 작은 지방도시 독일 부퍼탈은 세계적인 도시가 됐다. 이름 알려지지 않은 시립무용단 ‘부퍼탈 탄츠테아터’는 독특한 색깔을 지닌 세계적인 무용단으로 발돋움했다(한국인 무용수 김나영도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은 고스란히 유산이 됐다. 이젠 박제된 무엇으로만 그의 춤사위와 이름을 호명할 수밖에 없게 됐다.


위대한 유산, 피나 바우쉬


하지만 쉽지 않다. 그는 자신의 공연을 비디오나 DVD로 만들어서 팔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무대에서 모든 것을 쏟아 붓던 한 예술가의 고집 같은 것. 그렇기에 지난 2005년 내한 공연을 보지 못한 것은 크나큰 아쉬움이다. 시인이자 문화평론가 김갑수는 1960~70년대의 음악적 아이콘이자 초대형 피아니스트인 스비야토슬라브 리히터(Sviatosiav Richter) 생전에 그의 연주장에 못 가본 것이 정말 한이라고 했다. 피나 바우쉬의 영면도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동시대의 예술과 감흥을 오감으로 체험하는 순간을 놓친데 대한.


더 이상 춤사위를 접할 순 없지만, ‘피나 바우쉬’를 호명하는 것은, 그래도 우리의 예술을 좀더 풍성하게 만드는 작업이 될 수 있다. 그는 기존 질서나 권위만이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스스로 경계를 넘어, 껍데기를 깨고, 길을 만들었다. 덕분에 예술은 자기복제가 아닌 창조와 새 역사를 빚었다. 예술은 완성형이 아니고, 우리는 더 많은 예술과 만나야 한다. 아마도 누군가는 6월의 마지막 날이 오면, 담배를 입에 물리라. 골초였던, 내한 공연 당시에도 공연장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면서 담배를 입에서 놓지 않았던 피나 바우쉬를 떠올리면서, 작별을 고하지 않을까. 안녕, 피나 바우쉬.


[문화예술 크리틱 저널 - 뷰즈 2009 9·10월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