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소익선배랑 뺑이랑 맛난 점심을 먹고 길을 거닐다가,
내 이름을 누군가 부른다.
휙 돌아봤더니, 대학 과동기놈이다.
정말 오랜만. 방가방가.
얼마 전, 녀석은 이메일 주소가 바뀌었다고 동기놈들에게 단체메일을 뿌렸고,
나는 오랜만이라고 아직 살아있냐(!)고 답장을 보냈고,
녀석은 한번 보자는 의례적인 말을 건넸다.
그런데, 그렇게 우연히 해후할 줄이야.
대면한 것은 거의 6~7년 만이지 싶다.
그닥 절친한 사이는 아닌데,
녀석은 대뜸, 잊고 있던, 아니 깊이 잠수하고 있던, 한 문장을 꺼낸다.
"오징어는 문어라 불리길 원치 않는다."
녀석이 이 얘길 꺼내는 순간, 녀석과 난 거리에서 펑~ 터진다.
뭔 말인가 싶겠다.
내 생애 첫 번째 시나리오 제목이다.
대학 2학년인가, 3학년 때 교양으로 영화학개론을 수강한다.
시나리오 과제가 주어지고, 나는 단편 애니메이션용 시나리오를 얼렁뚱땅 만든다.
제목하여, "오징어는 문어라 불리길 원치 않는다."
같이 수강하던 녀석들, 제목에서 자지러졌다.
뭐 내용은 이젠 기억나지 않지만, 내 딴엔 나름 공을 들였으리라.
명목이야 어쨌든, 생애 첫!이지 않은가.
녀석은 그때 함께 수강했던 멤버인데, 그걸 기억하고 있다!!!
따식, 날 흠모하고 좋아했구나. 캬캬.
참, 그 영화학개론 수강결과는, 내 성적표에서 보기 힘든 'A+'이었다.
시나리오가 손발이 오그라들게 좋았던 것 아닐까! 흠흠.
그리고, 어제 흘러나온 이 뉴스.
☞ 문어로 둔갑한 오징어 다리 뷔페40곳 유통
깜딱이다.
오징어 입장에서 보자면, 완전 내 시나리오 제목 아닌가.
"오징어는 문어라 불리길 원치 않는다."
허허. 이런 우연의 연속이 있나.
오래 기억에 웅크리고 있던 그 문장이 이틀 연짱으로 부활하다니.
어쩌면 하늘의 계시?
시나리오를 한번 보정해서 완성해 보라는?
다시 되씹는다.
"오징어는 문어라 불리길 원치 않는다."
강원 삼척시 임원항 앞바다에서 잡힌 갑오징어와 문어의 양쪽 특성을 모두 가진 희귀 연체동물이란다
근데 젠장,
그때 쓴 것이 남아있지도 않을 뿐더러,
어떤 주제와 내용으로 썼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썅.
오징어만 불쌍하게 됐다. ㅠ.ㅠ
문어아저씨는 주례만 서면 된다.(응? 뭥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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