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커트 코베인.
15년 전 불꽃처럼 산화한 너바나의 리드싱어.
4월8일, 그의 죽음이 발견됐다지만, 5일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는 것이 거의 받아들여지고 있지.
어쨌든, 최근 나는 우리가 듣고 있는 어떤 음악들이,
커트 코베인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의 감성과 마음과 교감하는 어떤 음악들.
그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어떤 계기.
언니네이발관 리더 이석원이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씨네21 인터뷰 중에서.
그러니까,
커트 코베인은 그렇게 우리에게 여전히 속삭이고 향을 풍기고 있는 셈이다.
Smells Like Teen Spirit.
☞ 2008/04/08 - [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 볼륨을 높여, 'Smells Like Teen Spirit'
시간을 뒤로 돌려보자. 생각해보면 1996년은 정말 놀라운 해다. 그해 홍대쪽에선 언니네이발관, 델리스파이스, 크라잉 넛, 코코어 같은 밴드들이 한꺼번에 등장했고, 그 성취는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군데 모였을 때 자연스럽게 너도나도 음악을 만들겠다고 시작하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대체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
90년대 중반에 그런 인디 문화이자 창작 문화가 동시에 붐업한 건 간단한 이유다. 커트 코베인 때문이 아닐까. 그 사람이 모든 걸 바꿔놨다고 본다. 이 발언은 되게 조심스럽다. 그러니까 커트 코베인이 “너도 음악 만들어봐, 음악 만드는 거 되게 쉬워”라고 유혹한 게 아니다. 어떤 계기를, 물꼬를 터줬다고 해야 하나. 재능이나 감각은 있었지만 쉽게 시작해볼 생각을 미처 못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 아닌가 싶다. 왜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냐면(웃음), 이 대목에서 사람들은 참 쉽게 이야기한다. 그전에는 특별한 재능과 자격이 있어야 음악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90년대 중반 이후로 아무나 음악하는 세상이 되었다라는 식의 일반화. 거기엔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난 90년대 중반 이전에 음악하던 사람 중에는 프로가 한명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음악을 시작했다. 한국 그룹들은 왜 이렇게 창작곡을 못 쓰고 다 카피곡만 하지, 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거다. 그들에겐 어떤 음악적 재능이나 자격이 없었고, 하눅에만 존재하는 어떤 보호막 덕분에 특권을 누리다가 그게 너바나라는 밴드에 의해 다 깨졌고, 정말 재능있는 친구들이 그제야 음악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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