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춘3

청춘과 도시에 들이댄 에드워드 양의 현미경, <마작>(Mahjong) 지난 12일 폐막한 12회 부산국제영화제(PIFF). 9편의 시네마 혹은 세계와 조우했고, 행복한 시네마 유람이었다. 그리고 PIFF리뷰에 올린, 어설프게 갈겨쓴 세편의 감상문. 좀더 많은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유작들을 보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Mahjong)이라도 봐서 다행. 10여년 전의 장첸도 나오더군. 도시와 청춘에 건네는 편지 그래, 그땐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어디에도 끼일 틈이 없어 부유했고, 도시는 그런 부유하는 나를 음흉한 미소로 부추겼다. 그래서 도시와 청춘은 때론 함께 부유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지 않은가도 싶다. 너희들을 보면서도 그랬다. 도시는 정글과 같았고, 그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청춘은 도시를 이용하지 않는가 말이다. 너희들을 마주하면서 그랬다. ‘그래, 타이베.. 2007. 10. 18.
영원한 청춘의 이름, 제임스 딘 9월30일. 9월의 끝머리엔 결국 '제임스 딘(James Dean)'이 다가온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지만, 내 방에도 지미(제임스 딘의 애칭)형의 브로마이드가 장식하고 있었지. 그의 어떤 영화도 제대로 본 적이 없고, 어떤 상징적 의미를 갖는지 알지도 못하던 소년의 방으로까지 파고들었던 그 청춘. 나는 그저 반항끼 줄줄 흐르던 그의 간지와 눈빛에 매료됐었던 것 같다. 더구나 포르쉐(!)를 몰다가 스물 넷에 장렬하게 산화했다는 이야기에 혹하지 않을 재간이 없던 나이 아니었겠는가. 스물 넷은 그런 나이일까. "아직도 내 자신의 몇 분의 일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산다는 것에 설렘을 느낀다"던 지미 형이었지만, 죽음 또한 그보다 적지 않은 설렘을 안겨주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 산화를 택했는지는 여전히.. 2007. 9. 30.
청춘의 또 다른 이름, <후아유> 2002년 여름, 전국이 월드컵으로 들끓던 시기에 외따로 만난 영화. 그래서 내겐 6월의 영화. ! 국정브리핑에도 올렸었군. “청춘은 아름답다”는 식의 청춘예찬은 결코 식상해질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어떤 낯두껍을 하고 있어도 청춘은 한없이 투명에 가깝다. 누가 청춘을 비하해도 그건 진심이 아니다. 청춘은 그 이름만으로 가슴을 설레게 한다, 머리끝까지 피를 역류시키게 만든다, 식은 심장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건 청춘이기 때문이다,라는 이유밖에 없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통해 숱한 경구로 장식된 ‘청춘’의 이름은 시대와 사회상을 반영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어느 순간부터 일정 시기의 청춘을 특정한 말로 규정하고픈 욕망이 꿈틀거렸다. X세대, N세대, W세대, P세대 등등 청춘은 시시각각 다른 닉네임을 얻.. 2007. 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