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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무비일락

[영화하나객담] 세자 충녕은 어떻게 성군 세종이 됐는가?

by 낭만_커피 2012. 8. 5.

(사료에 의하면) 세종은 '성군'이라는 호칭에 가장 부합한 임금이다. 진짜 그만한 성군이 없단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소설의 대가, 김별아 작가는 그랬다. 소설을 쓰기 전, 철저하게 역사를 공부하고 파악하는 그의 작가의식을 감안하면, 그 말은 100%일 것이다. 오죽하면, 우리는 조선조 처음으로 '대왕'이라는 직함을 세종에게 부여했을까. 그 뒤 정조대왕이 있지만, 글쎄, 잘은 모르지만, 정조에게 대왕은 좀 어색하다.


그런데, 그의 즉위는 좀 놀라운 데가 있다.

다른 게 아니라, 그는 장자(맏아들)가 아니다. 그것도 셋째 아들.

장자에 대한 절대적인 우선권이 부여된 시대, 그는 왕에 즉위했다.

물론 나는 자세한 이유와 배경을 잘 모른다.

양녕과 효녕의 실기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충녕에 대한 아비(태종)의 신뢰와 왕의로서의 자질이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는 왕위에 올라서 성군이 되고 대왕이 됐으니까, 그건 아비의 정확한 판단이었다.


헌데, 왕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왜냐!

태종도 다섯째 아들이라는 '핸디캡'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두 번째 왕 정조도 둘째 아들, 세 번째 왕 태종도 다섯째임을 감안하면,

태종으로선 장자에 당연히 무게를 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왕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그리 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충녕은 간택됐다.


아마 아비는 갈등했을 것이다.

정당성이냐, 왕권의 안정이냐. (물론 그것은 연결돼 있기도 하다.)

충녕이 왕권 안정에 적합한 인물이자, 성군으로서의 자질을 발견한 아비의 선택은 옳았다.


그런데, 궁금했던 건, 충녕 본인은 왕위에 오를 생각이 있었을까?

공부가 가장 쉬웠고, 형들과 달리 놀 줄도 모르고, 잘은 모르지만, 범생 분위기가 자욱하게 풍겼을 그에게 그런 야망이 있었을까?

찌질한 것은 아니어도, 그는 딱 FM 스타일이었을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육두문자를 지껄이는 세종은 완벽하게 허구다!)

충녕은 야망 없는 날라리를 꿈꾸는 내 기준에서는 슈퍼울트라 비재미.

친구할 생각은커녕, 신하였어도 그를 임금으로 모실 생각은 추호도 없다.

왜? 간단하다. 재미 없을 것 같아서!

그의 뇌구조를 뒤적이면 한 83.27%는 '백성의 고단함'으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본투비 킹.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그런 궁금함에서 출발한다.

이제야 영화 이야기에 본격 들어가는 셈인데, 장규성 감독은 충녕을 찌질한 샌님으로 설정한다. 아비에 의해 세자로 책봉된 뒤에도 후덜덜. 형들한테도 미안하고, 별로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언감생심, 왕이 다 뭐다냐! 야망도 없고, 성장에 대한 욕심도 없으며, 그렇다고 책 외에는 삶을 즐길만한 건덕지도 없어 보인다.


영화는 '왕자의 거지'의 모티브를 차용, 심약한 충녕이 어떻게 세종이라는 성군으로 거듭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결정적 계기!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만듦새, 영 아니올시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야 만다. 


심약한 샌님, 충녕이 어떻게 임금이 되고자 하며 성군이 되는지, 

그 역사적 상상력의 소재, 얼마나 구미가 당기는가!  

허나, 소재로만 끝난다. 아쉽다. 

연출력이 가장 큰 문제로 보여지는데, 

충녕과 우연히 뒤바뀐 노비 덕칠의 왕 행세는 어설프다. 

충녕이 백성들이 고단함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세자 행세를 한다고 모질게 맞고, 고난을 당하는데, 대역죄인이라는 어명까지 내려온 마당인데, 너무 쉽게 빠져나간다. 세자임을 증명할 방법도 충분히 있을 터인데, 덕칠은 궁궐에서 너무 무기력하고, 충녕의 민생탐방(?)은 작위적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살짝 아깝다. 

변희봉, 백윤식, 김수로, 임원희 등 연기력 좋은 배우들의 연기가 어딘가 끌려다니는 느낌이다. 극에 완벽하게 묻어있지 않다.   

 

그리고 연기 잘'했'던 젊은 배우, 주지훈의 복귀작. 그는 덕칠일 때보다 충녕일 때 더 빛난다. 확실히 그 간지, 제 아무리 분장을 하고 열연한다손, 노비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연기가 완벽하다거나 충분하다는 뜻, 아니다. 

배우 주지훈, 충분히 몸이 풀리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이건 재밌다. 주지훈의 캐스팅. 

마약사건으로 불가피하게 군대에 가야했던 주지훈의 처지.

그리고 '벌써?'라는 논란이 따르고 있지만, 그는 어쨌든 복귀했다.  

그것, 극중 충녕의 탈피와 묘하게 맞물린다.

샌님 나부랭이였던 충녕의 깨달음 그리고 성군의 탄생.  


이 캐스팅, 충분히 의도가 있다(고 보여진다). 

주지훈 역시 마찬가지일 듯하다. 


영화의 만듦새에 대해 가혹한 평가를 내렸지만, 

이 영화에 왜 별 세 개를 줬냐고? 

물론 이유, 있다! 

만듦새만 놓고 보면, 꽝이요, 두 개로도 충분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만듦새에 대해 툴툴거리면서도, 

나는 진정성 같은 걸 느꼈다. 

어떻게든 잘 만들고 싶은 필사의 노력 같은 게 내 마음에 닿았다. 


나는 감독과 배우들 모두 아무런 관련도 호감도 없다. 

그저 연기 잘하는 배우 주지훈이 다시 배우로서 뿌리를 내리는 정도?

(그가 군대 가기 직전, 내가 매니저로 있던 카페에 화보를 찍으러 왔던 어설픈 '인연' 정도는 있다.ㅋ 눈앞에서 주지훈을 보면서, 감탄했다. 저 길쭉길쭉한 간지, 깎아지른 외모. 남자가 봐도, 주지훈, 아름다웠다!)  


관객들과 호흡하고 싶다는 열망을 감지했고, (어느 영환들 그게 없으랴마는!)

뭔가 지금의 정치적 세태와 맞물려 좋은 지도자를 갈망하는 어설픈 정치의식까지 느꼈다. 

그러니까, 별 하나는 그 잘 만들고 싶은 그 마음. 그 마음에 대한 화답이다. 


일부러 영화를 권하지는 않겠지만, 

이 장면만큼은 찡하였다.  


백윤식이 분한 황희 정승, 야인으로 살면서 일갈한다! 임금의 도리에 대해. 

충녕임을 알아차리진 못한 채. (근데, 황희가 충녕을 못 알아보는 것, 아무리 영화적 장치라지만, 이해가 안 돼!ㅠ.ㅠ)


"백성의 고단함을 돌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무엇이더냐?"


충녕이 세종으로 탈피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 한 마디!

충녕이 180도 변신하는 것이 감성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어설픔에도, 

영화를 관통하는 이 호통(?)은 찡하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세상에서 멸종한, 더 이상 우리에게 없을 지도자(최고통치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나는 결론을 짓는다. 국민성군은 더 이상 없다. 

안철수? 개뿔! 그는 그저 온건한 보수이자, 포악한 자본주의에 살짝 균열을 가게 하고 싶은 체제 지킴이다. 그만한 대안이 없다는 게 참 아쉬울 뿐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많은 사람들, 안철수를 삶의 태도와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앞선 것에 대한 신물, 단순한 트렌드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다. 

 

우습게도 단언하건대, 혁명이 없는 한, 세상은 바뀔 수 없다! 

성군을 향한 열망도, 결국 내 삶의 미세한 부분에서도 바꾸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말만 번지르르하다. 안타깝게도 그것, 생명력이 없다. 

삶의 최소주의와 일상의 정치의 최소주의를 일치시켜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뭐,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다만, 내가 씨부렁한 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라.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결코 심각한 영화가 아니로소이다~ㅎㅎ  

<선생 김봉두> <이장과 군수> 등의 장규성 감독은 너무 오랜만에 영화를 만든 것 같다. 



참,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 있다. 마지막 풍경. 

노비 덕칠과 양반집 규수 수연(이하늬)가 가정을 이뤄 애들 순풍순풍 낳고 산다. 

노비와 양반의 결합. 당대로선 이뤄질 수 없는 커플일텐데, 감독의 어떤 의도가 담긴 장면이리라. 

물론 수연은 몰락한 양반가문의 영애인데, 계급을 넘어선 사랑과 결혼, 그것은 늘 감동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