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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9월23일, 시인들의 하루

by 낭만_커피 2010. 9. 23.
너는 태어나고, 나는 죽고.
너는 죽고, 나는 태어나고.

시인들은 아마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9월23일에는.

두 시인, 무슨 상관이 있을까마는, 고개를 갸웃할지 몰라도,
두 시인,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고, 지구 정반대편에서 활동했다.
한 시인은 요절했고, 다른 시인은 사회주의 혁명의 좌절에 생의 끈을 놓아버렸다.

두 시인, 본명 아닌 필명을 썼고,
다른 누군가가 대신할 수 없는 천재였으며,
뭣보다 시대적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시대의 혈서를 썼다.
식민지 제국주의자들에게 가장 위험한 무기, 詩를 가졌던 사람들.


이만하면 알겠지?
 

태어났던 시인은 김해경이라는 본명을 가진,
'이상'(
李箱, 1910.9.23∼1937.4.17).
죽었던 시인은,
리카르도 네트탈리 레예스 바소알토라는 본명을 가진,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7.12~1973.9.23).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의 탄생 100주년이다.
그가 시대와 불화하고 거동이 수상할 수밖에 없었던 건,
어쩌면 그가 태어났던 해와 깊은 연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일강제병합, 1910년 8월22일, 그가 태어나기 한 달 전 맺어진 조약.
그는 어머니 뱃속부터 분노를 전달받아 현실에서 어떻게 표출할지 연구했다,
고 나는 상상해 본다. 이상이 천재시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식민지 현실에서 환멸과 저항을 에둘러 실험적으로 다뤘던,
가장 보통의 사람들로선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던,
이상의 전위적이고도 실험적인 파격.

고 김현 문학평론가는, 시인 이상에 대해,
"폐쇄주의적 비관주의의 시각에서 식민지 현실에 비순응한 대표적인 작가"라며,
"인간에 대해 기본적으로 신뢰감을 갖고 있지 아니하면서도 그가 인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율배반적인 세계인식 위에서 세계와 현실, 자아를 바라본 작가"라고 평했다.

그리하여,
스물 일곱, 그 요절은 아이러니하다.
그 자신의 미래를 혹독하게 거세당한 대신,
무수한 가능성으로 점철된 가상의 미래를 후세에 안겨주니까.


스물 일곱에 죽어도, 한 사회가 탄생 100주년을 기릴 수 있다는 건,
그가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 아닐까.
('스물 일곱'은 요절한 천재들의 '상징' 같다! 희한!!)
지금 서울 혜화동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는,
이상 탄생100주년 기념전시가 열리고 있다.
'木3氏의出發 '(이씨의 출발)
(이상의 詩, '차8씨의 출발(且8氏의 出發)'에서 따왔단다.)

이상의 활동기간이 7년 남짓에 지나지 않았다면,
파블로 네루다는 달랐다. 그는 70여년을 살았고, 활동기간만 50년 이상이다.

어쩌다 보니,
이달 들어 11일부터 '칠레 3부작'(?)을 포스팅한 셈이 됐는데,
그 마지막 완결편, 혁명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 편.
파블로 네루다, 그리고 <일 포스티노>

파블로 네루다, 당신도 잘 알고 있을 테니,
굳이 구구절절 썰을 풀어놓을 필욘 없을 테고,
1973년 9월23일, 그의 마지막 순간 무렵에 집중해보자.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의 생이 힘을 잃은 결정적 계기는,
죽기 열이틀 전에 겪은,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대통령의 죽음이었다.

평생을 공산주의자로 살았던 네루다에게,
아옌데는 정치적 동지이자 칠레의 희망이었다.
"사람에게 어떤 딱지도 붙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던,
 네루다의 희망, 곧 칠레의 희망을 실현해 줄 수 있었던 사람.

그런 사람이 죽었다.
희망을 잃은 땅에서 늙은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아아, 어쩌란 말이냐.

두 사람이 상호간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일화 한 토막. 다큐 <피노체트 재판>에 나온 내용이란다.
피노체트 기소를 생각해낸 카스트레사나 검사에게 사람들, 물었다.
"왜 그런 귀찮은 일을 떠맡으려 하는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독재를 피해 50만명의 스페인 사람들이 국외로 탈출했습니다. 그때 칠레의 주스페인 영사가 배를 한 척 내주면서 "이 배에 태울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영사가 바로 파블로 네루다였습니다. 그는 연대의 표시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지만 영사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칠레 당국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었죠. 그때 칠레의 보건장관이 그들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가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살바도르 아옌데였습니다."

또한 파블로 네루다는 아옌데와 그의 죽음에 대해 이리 묘사했다.

아옌데는 탁월한 연설가는 아니었다. 지도자로서 그는 가능한 모든 통로를 통해 자문을 얻는 통치자였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독단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처리했다. 아옌데 시대의 민중은 발마세다 시대처럼 어수룩하지 않았다.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는 강력한 노동자 계급이 존재했다. 아옌데는 집단적인 지도자였다. 아옌데는 민중 계급 출신은 아니지만 부패하고 정체된 착취 계급에 대한 투쟁의 산물이었다.(…) 저들은 살해 행위를 은폐하고 비밀리에 매장했다. 미망인만이 불멸의 육신을 동행할 수 있었다. 공격자들의 말로는, 대통령 궁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으며, 자살의 흔적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외국 언론의 견해는 다르다. 공중 폭격 직후, 수많은 탱크들이 작전에 돌입했다. 단 한 사람, 칠레공화국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를 노린 대담한 작전이었다. 아옌데는 불꽃과 연기로 뒤덮인 집무실에서 혼자 당당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저들은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절대 사임하지 않을 것이기에 기관총을 난사해야 했다. 시신은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비밀리에 매장했다. 무덤까지 가는 길에 동행한 사람은 오직 한 여인, 전세계인의 애도를 한몸에 안은 여인이었다. 시신은 칠레 군인들이 난사한 기관총에 맞아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저들은 또다시 칠레를 배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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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파블로 네루다 지음/박병규 옮김|민음사 펴냄) -


더구나, 네루다는 칠레 그 자체였던 사람이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를 읊던 사랑의 시인이기도 했지만,
당대 칠레의 운명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칠레를 인민의 세상으로 바꾸고자 했다.

혁명의 시인은 이리 말했다.
"성숙한 작가는 인간적 동료의식, 사회의식 없이는 아무런 글도 쓸 수 없다."

아울러, 그 시인이
"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다."라고 말한 것은,
숙명이다. 혁명적 시인은 그렇게 영원히 살 것을 다짐했다.
(
20세기의 가장 완벽한 인간, 체 게바라가 필서까지하면서 죽기 순간까지도 품고 있던 것이,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이라는 사실은 당연해 뵌다. 그리고 다시 해석되고 이해되는 이 말.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사랑의 언어로 토해내던 네루다의 시가,
서정과 낭만에서 출발했던 네루다의 시가,
사회와 현실을 담고 시대와 민중을 품었다.
그의 시는 그렇게 변화했고 비로소 완성됐다.

그러나,
미국의 하수인 피노체트가 벌인 쿠데타는 '한 편의 절망의 노래'!.
고독에서 인민으로 방향을 전환했던 혁명 시인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내 보잘 것 없는 시는 인민에게 칼이 되고 손수건이 되어,
무거운 고통으로 흘린 땀을 닦아주고 빵을 위한 투쟁의 무기가 되기를 열망한다"고 읊던, '리얼리즘 그 너머를 꿈꾸던 리얼리스트'는 詩를 남긴 채 눈을 감았다.
 


사랑하고 노래하던 시인의 종점은 투쟁이었다.
얼마 전, 껌정드레스님을 통해 알게 된 다큐멘터리,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Il pleut sur Santiago)에 네루다의 장례식이 나온다.
쿠데타에 대한 인민들의 분노는 칠레 최초의 집회이자 시위로 분출됐다.
칠레가 울었고, 칠레는 멈췄다.


9월의 칠레, 파블로 네루다를 떠올라 치면,
그의 시를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아 놓자면,
남미의 붉은 태양처럼 살고 싶어진다는 누군가의 말이 딱 떠오른다.

9월23일,
이상은 태어났고,
네루다는 죽었다.

이상은, "멜론이 먹고 싶다"고 말한 뒤 숨을 거뒀고,
네루다는, "나, 간다"고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났다.

시대를 품고 태어나,
시대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어 문학으로, 문학보다 더 절박한 현실에서 투쟁하던,
두 시인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것. "작가(시인)를 찾습니다."
절묘하게 교차한 두 시인의 생사에 상상력을 덧입혀,
우리의 리얼리즘과 그 너머의 리얼리스트가 지닌 꿈을 자극할,
그런 이야기를 술술 풀어줄 작가, 어디 없수?~

나도,
사람에게 어떤 딱지도 붙지 않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어서.
풍요함 따윈 약속하지 않고, 존엄성과 진정한 자유에의 희망을 약속하는, 세상.

애초 뉘들에게 어떤 철학조차 없는 '부강한 나라' 따윈 필요없어!
언제 어느때, 칠레를 배신한 그들마냥, 한국을 배신할지도 모를 뉘들이니까.




어쨌거나 한가위.
서울 돌아오니, 피 비해부터 물어보고,
어떨결에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눈길을 돌려야 할 시절이지만,

보름달 보자니, 내 마음속 가장 서정과 낭만으로 분칠된 그해 한가위가 두둥실!
여러 사람 앞에서 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만, 내겐 그녀밖에 보이지 않았다.
음식을 나눠먹고 있었지만, 내겐 오로지 그녀의 입만 보였던 그 어느해 한가위.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면, 결국 그 사람 앞에 서게 됩니다."
아무렴. 누군가는 휘영청 보름달을 품고서, 이 말이 이뤄지길 소원을 빌었겠지.
그의, 그녀의, 그 소원이 이뤄지는 경이로운 순간이, 그 시간이 찾아오길.
비록 그를, 그녀를 모르고 알 수 없는 사이지만, 나는 바란다.
때론 누군가에게 저 말은, 거짓임을 알지만,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는 것.
그건 계속돼야 하니까.
 안녕, 내 사랑.


“나는 안다. 이 경이로운 순간은 현실의 수레바퀴에 닳아 금세 사라져버리고 앞으로 고독한 밤들이 찾아올 거라는 걸. 하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고독한 밤들을 채워주는 경이로운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