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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그 사람 인 시네마

헤이, Coooool~ 카우보이, 스파이크 스피겔

by 낭만_커피 2010. 5. 30.

헤매는 인간들, 살아있는 사람들…

<카우보이 비밥> 마지막 화. 이런 얘기가 흘러 나온다. "다들 줄이 끊어진 연처럼 갈 곳을 잃고 헤매고 있다." 그렇다. 2071년의 인간들도 지금과 다를 바 없나 보다. 이런 것,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굴레'일까. 에이, 웃자고 한 소리다. 심각해지지 마시라.

그런데 한참 멀어보이는 그 미래를 그리 쉽게 단정지을 수 있냐고? 오호, 당신은 진짜 미래가 알고 싶은 건가? 그렇다면 오래오래 살아라. 실은 나는 시간의 흐름을 미래니 현재니 하면서 토막내고 싶은 게 아니다. 그것이 미래든 현재든 과거든 상관없다. 단지 현실에 발을 디딘 이야기임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의 언급처럼 <카우보이 비밥>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곳엔 현실에 뿌리를 박되 깨지 않을 꿈을 꾸면서 삶을 지탱하는 어떤 현실적인 인물들이 있다. 꿈, 사랑, 과거, 죽음과 삶도 있다. 누구나 공감할만한 어떤 사람살이의 풍경. 여기에 '현상금 사냥꾼'도 있다. 재미있는 직업? 맞다. 액면상으론 범죄자를 좇는 직업인데, 실은 어떤 사람살이의 풍경을 좇는 사람을 일컫는 말일지도 모른다.

보는 사람마다 나름의 것을 느낄 수 있는 묘한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은 현상금 사냥꾼을 통해 지금의 우리를 들여다보게 한다. 미래를 빙자했지만, 그건 맥거핀이다. 갈 곳 잃고 헤매긴 지금도 마찬가지니까. 알랑방귀(!) 좀 끼자면, <카우보이 비밥>은 '사람살이의 일면을 엿보고 다양한 해석을 담을 수 있는 우주 서부극'이라고 얘기하겠다. 그곳에선, 무법자들이 있고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 수밖에 없는 아웃사이더들도 있다. 이래저래 여기저기 휘둘리는 장삼이사도 있다. 인간군상은 어쩔 수 없이 가지각색이다. 미래니 현재니 들먹일 필요도 없다. 그저 사람살이!

아, 이 짙은 허망함의 성(魔性) 하곤…

과거 따윈 상관없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 이 남자, 스파이크 스피겔.


키 크고 미끈하게 잘생긴 꽃미남. 간지작렬이다. 27살의 더벅머리 총각. 과거 중국계 거대마피아 '레드 드래곤'의 간부, 현 직업 현상금 사냥꾼. 그는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어 우주를 떠돈다. 그에게 정의니 선악이니 하는 잣대를 들이대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액면상) 목적은 오로지 현상금, 그게 전부다.

그런데 이 남자, 현상금에 쌍심지를 켠, 돈만 밝히는 기생 오라비인줄 알면 완전 착오다. 허무가 덕지덕지 묻은 품새가 우선 눈에 띤다. 허무작렬! 염세주의자? 맞다. 그 눈빛 속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배여있다. '뭐 이래? 주인공이 이렇게 우울해도 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수도. 그렇지만 결코 무겁지만은 않다. 그의 재능 중에는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치환할 수 있는 재능도 있다.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쿨(Cool)함을 저버리지 않는 매력. 그는 본질적으로 한 단어로 설명이 불가능한 인간이다.

스파이크는 뭣보다 경계인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꿈을 꾸고, 현실과 꿈 사이에서 배회한다. 이 남자에겐 결코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잃어버린 과거, 이미 죽음을 경험한 그에게 삶도, 죽음도 어느 것도 불분명하다. 그는 삶과 죽음이 뗄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다. 단지 스스로 어느 선상에 서 있는 지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그의 발길에 눈을 뗄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 안에 똬리를 튼 스파이크. 삶과 죽음,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실존. 그의 짙은 허무가 온 몸을 휘감는다. 내 안에, 스파이크 있다.

기름과 섞이지 못하는 물

물과 기름은 섞이지 못한다. 제길, 나는 그걸 화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이미 그런 건 휘발된 지 오래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렇더라. 당최 그처럼 섞이지 못하거나 겉돌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더라. 역시나 화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스파이크는 말하자면, 물이다. 끈적끈적한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세상과 화(학적 결)합(!)이 불가능한. 기름 같은 세상에 묻어갈 수 없는. 그는 대개의 사람들이 영위하는 삶과 동떨어져 있다. 둘러보라. 그런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 깊이 들어가는 것은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는 것과 같다. 그럴 때? 옷을 벗어던질 수밖에 없다.



스파이크는 그렇다면 왜, 부유하냐고? 그 부유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를 지닌 연유는 마지막 화에서나 밝혀진다. "한쪽 눈으로는 과거를 보고 다른 한 쪽으로 현재를 봐 왔지. 눈에 보이는 것만이 현실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깨지 않는 꿈이라도 꿀 작정이었는데 어느 샌가 깨고 말았지…" 현실에만 정착할 수 없는 눈, 그 시큰둥한 눈빛이 기름처럼 세상에 붙어있을 수 없는 이유를 말해준다.

궁금했다. 과연 그의 눈에 비친 하늘은 어떤 빛깔로 나타날까 하고 말이다. 우리가 푸르다고 말하는 그 하늘에 대해 스파이크는 어떻게 말을 할까.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

스파이크의 매력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굳이 말 혹은 글로 표현하려는 것이 불편부당해 뵌다. 그래서 이 글은 불완전함을 품고 있다. 그는 영상을 보면서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내 안의 스파이크는 그래야 찾을 수 있다. 스파이크는 또한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캐릭터다. 생각하게 만드는 애니메이션 주인공.

스파이크는 꿈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것도 알고 있다. 생이 유한하다는 사실. 불멸에의 꿈은 그에게 가당치 않다. 죽음도 영원한 꿈으로 인식한다. 그가 천적인 비셔스와의 마지막 대결을 위해 비밥호를 떠날 때 페이(현상금 사냥꾼 동료)가 말린다. 하지만 스파이크는 말한다. "죽으러 가는 게 아냐. 내가 정말 살아있는지 확인하러 가는 거야… " 그건 현실로 돌아가는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그는 자신만의 길을 거닌다. 누가 뭐라하든, 과거나 현실의 경계에서 외줄을 타든. 그리고 우리에게도 살며시 귀띔한다. "꿈을 꾸든, 현실을 살아가든, 그건 당신의 몫이야!" 멋진 놈...

(* 권하건대, 스크린에서 선보였던 극장판보다, 26회로 구성된 작품을 꼭 보시라.)


(※ 오픈아이 기고문 일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