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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무비일락

<일라이>… 뷁, 성경 한 권 때문에 대체 뭬하자는 거야!

by 낭만_커피 2010. 4. 25.

(※ 우선 이것부터 말해야겠다. 나는 어떤 종교(에 대한 믿음)도 갖지 않은, 비종교인이다. 어떤 종교활동도 않는단 뜻이다. 특정 종교에 대한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그것으로 사람을 차별하거나 편견을 갖지 않으려 노력한다. 다만 어떤 종교든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에 대해선 거의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읽힌 책이라면, 성경(Bible) 되시겠다. 관련 종교의 신자가 아닌 입장에서도 성경은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예수의 삶 또한 정말 존경할만하다고 생각한다
(김규항 선생님의 《예수전》을 읽고선 그 생각을 더욱 굳혔다). 그러니까, 성경이나 예수는 종교적 가치를 넘어 인류적 가치로서 더욱 빛나는 무엇이다.

그런 성경을 둘러싼 묵시록적인 세계를 그린 <일라이>. 주연을 보자. 덴젤 워싱턴이다. 게리 올드만이다. 그 호명만으로도 관객에게 신뢰감을 주는 이름들. 100%야, 너무 비인간적인 수치겠고, 어느 정도까지는 그 이름값을 하는 영화라고 선택해도 무방할 정도는 되겠다. '콩 심은데 팥났다'고 해도, 덴젤 워싱턴이라는 이름이 경작자로 올라가 있다면, 아마 나는 덜컥 믿을지도...^^;;

그런데, 결론적으로 <일라이>는 덴젤의 필모그래피 중에 따로 빼놨으면 하는 영화다. 여느 필모와 달리, 선교를 위해 특별 출연했다고 (믿고 싶다고) 할까. 그의 종교적 신념을 위해 봉사한 그런 영화. 같은 종교인들을 위해 덴젤이 우정 출연한. 물론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덴젤에 대한 애정의 발로에서 나온 땡고집 되시겠다.

영화의 표피는 그렇다. 지구 종말 혹은 인류 종말이후의 사건을 다룬 '종말 액션 블록버스터'. 지난 연초 <더 로드>를 좋게 봤기에, 이번 종말 이후의 세계는 어떻게 다뤄질까 하는 기대감, 분명 있었다. 더구나 <더 로드>에는 없는 '액션'과 덴젤 워싱턴, 게리 올드만이라는 든든한 '빽'까지 가세했으니. 유후~

그렇다고 내가 종말론적 세계관을 신봉하거나 끌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스크린에서 구현되는 종말의 세계관은 대개 현실에 대한 메타포를 품고 있기에,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그것을 나는 좋아한다. 더구나, 종말적 세계는, 영화적으로 봤을 때 한 마디로 장관이다. 그 엄청난 스펙타클의 향연. <나는 전설이다>의 그 텅빈 종말적 뉴욕을 떠올려보라. 뜨아아~
 
<일라이>는, 그 모든 기대와는 무관하다.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 '남보원'에 출연하는 박성호의 말을 빌자면, "괜히 봤어~~ 안 볼 걸 그랬어(들썩들썩)" 나름 독실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혹은 신앙심 작렬하는 신자들에겐 충분히 "아멘(에이멘)~"을 연호하게할 영화였겠다. 딱 교회에서나 제한 상영됐으면 좋을. 아, 물론 기독교가 모태신앙인 국가에서 제작된 영화다보니, 그쪽 나라에선 나름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더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굳이 줄거리 내달을 필요도 없겠다. '그 사건'이후 종말에 다다른 인류가 '성경'을 찾아서 새로운 불씨를 키워보자는 건데, 심하게 말해, 개수작이다. 끊임없이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작태야, 성경홍보 영화겠거니 참고 넘어가겠는데, 과도한 비장미에 곁들인 슬로모션과 음악은 고문에 가까울 지경이다. 성경의 진짜 의미를 되짚고 넘어갈 틈새도 없다. 성경 한 권 때문에 벌어지는 무자비한 악행과 폭력은 어떤 개연성도 없다. 그저 성경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단다. 성경이 담고 있는 인류학적 고찰이나 성찰은 어디에도 없다.

덴젤이 연기하는 일라이도 그렇다.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건 좋다 이거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성경은 고통 받는 자들을 향한 실천적 태도를 견지한 책이 아니던가. 일라이는 충분한 역량이 있음에도, 악행의 현장 앞에서 "지나가자. 내가 신경쓸 일이 아니"라며 되새김질하면서 외면한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자는 태도같은데, 글쎄 순교자의 운명을 지난 자 치고는 어설프다.

뭣보다 성경을 빌미로 벌어지는 악행의 나열은, 성경에 대한 단순집착적 애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말하자면, '바이블필리아'들의 난장. 네크로필리아(시체 애호증)와 대체 무엇이 다른가. 성경이 있어야만 완성되는 세계란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말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단순 책 읽기의 무의미함과도 이어졌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일부는 자신이 읽었다는 책(들)을 블로그 등을 통해 나열한다. '나 이만큼 읽었소', 하는 자랑질로 삼고 싶은 이도 있겠고, 목표에 대한 담금질적인 의미를 가진 이도 있겠으며, 여하튼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부여하겠지.

하지만, 그런 애호가적 소비, 왠지 책에 대한 배신같다. 그 책 읽기, 단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될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종종 의심한다. 그렇게 자신이 읽은 책을 나열하는 것, 무엇을 위함일까(리뷰와는 또 다른). 그것을 매개로 한 한 세계(사람)의 변화, 혹은 실천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상실된 것, 아닐까. 비판적 독서도 아니요, 그저 읽고 보자는 맹목적인 향유는 아닐까. '나, 이만큼 책 읽는 사람이니 우습게 보지 마시오'라는 자기 과시?

뭐 꼭 그것이 나쁘다 함은 아니지만, 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는 지금의 책읽기 형태에 대해 이런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마르크스의 책을 읽고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의 팬'이 되는 것. 즉, "라이프스타일 가꾸기의 방편으로 책을 수집하고, 읽고, 그 경험을 나누는" 새로운 지식소비 패턴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회적 삶에 대한 고민과 모색은 없이, 사회적 실천과는 유리된 지적 허영에 가까운 책 읽기.

책을 읽는 것, 중요하고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자신만의 사유의 힘을 기르고 이를 생활에 녹여가는 것이 아닐까. 김규항 선생님은 유시민의 예를 들었다. 《청춘의 독서》는 좋은 책이지만, 더 중요한 교훈이 따로 있다고. "지식인 유시민과 정치인 유시민의 차이를 통해 사람의 지식과 실천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생생하게 배울 수 있다는 것."
 
유시민의 글은 날카롭고 때론 유려하며, 종종 핵심을 찌른다. 그래서 감탄하기도 하며 좋아한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그의 행보는 그가 잉태한 글(지식)과 다르다. 물론 누구도 완벽한 언행일치가 가능하다고 보진 않지만, 정치인 유시민은 글쟁이(지식인) 유시민을 완벽하게 갉아먹는다(고 나는 감히 생각한다).

그러니, 책이 우리를 아주 조금이라도 변화시켰다면, 그 변화가 일상에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실천되고 있는지 말해줬으면 좋겠다.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그런 균열이 우리라는 세계를 0.0001mm라도 좋은 방향으로 이동시킬 수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책을 읽었다는데, 어쨌다고. 니 책 졸라 굵다, 고 말해주리? 심하게 말해, 성경 한 권 갖자고 똥지랄을 해대는 저들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다시 돌아가 성경. 지금 이 세계를 야만으로 덧칠한 부시도 성경 말씀은 꼬박 인용하시더라. 중요한 것은 성경이 아니다. 성경 읽었다고 세계를 똑바로 볼 수 있는 선구안을 가지느냐? 것도 아니다. 문제는 성경이 아니라, 성경을 읽은 자의 태도와 실천이다. 성경 읽었다고 예수주의자가 되는 것 아님은 익히 경험한 바이고, 고작 예수의 팬으로서 예수 부르짖을 줄만 알며 종교 활동하고 있다면, 스스로 나이롱 신자라고 커밍아웃부터 하고 볼 일이다. 그렇담 깨끗이 인정이나 하지. 시시콜콜 예수 들먹이며, 예수를 욕되게 하지 말지어다. 아멘.

<일라이>의 미덕이라면, 그런 점 일깨우는 정도? 내 보기엔 종교적 신념도 개뿔.
어휴, <일라이>, 괴로운 영화관람의 경험. 관람지옥, 비관람천국. 에이멘.


근데, 궁금한 거.
미국에선 그 순교자 역할로 흑인인 덴젤 워싱턴이 한 것에 대해선 군말이 없었나?
덴젤이 연기한 일라이. 꼭 예수처럼 보이려고 애를 쓰더만. 물론 덴젤 워싱턴은 흑인이긴 하지만 백인들에게도 거부감이 없다고 알고 있으니, 없었을 수도.

아, 그리고 마지막, 일라이를 대신해 칼 들고 순교자의 길을 나서는 솔라라. 완전 사족의 방점을 찍드만. 이 영화, 왜 만들었나이까.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