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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무비일락

그들은 소풍처럼 피난을 떠났을 뿐이었다

by 낭만_커피 2010. 4. 20.
“어르신, 진지 드셨습니까.”
동네 어귀, 바둑 삼매경에 빠진 동네 어르신들을 지나칠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꼬박 안부 인사를 건넨다. 진짜 진지를 드셨는지 여부를 여쭙는 것이 아니라, 그건 인사말, 즉 일상의 리추얼(의식)이다. 전쟁이 났다지만, 그들의 일상은 여느 때와 크게 다름이 없다. 걱정을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 박사님’(이승만)도 있고, 미군도 있다. 산골짜기에서 농사짓는데, 어찌 될거나 있나, 하는 소박한 마음. 전쟁은 그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풍문이었다. 일상에 균열을 일으킬 만큼의 큰 사건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전쟁은 엉뚱한 곳에서 발발한다. 미군이 일본말 안내방송을 통해 피난가라고 할 때만 해도 산골짜기에 한 며칠 박혀있으면 될 줄 알았다. 소풍 가듯 피난을 떠났다. 임진년 난리를 피했다는 가마봉에 간 것도 그런 이유다. 미군이 다시 ‘도락구’에 태워 남쪽으로 보내준다는 말이 들렸다. 다시 그 말을 따라 산을 내려왔다. 그러려니 했다. 어떤 통신수단이 있었던 것도 아니요, 전쟁 상황이나 흐름을 알 길 없는 장삼이사에겐, 나라님 말씀이겠거니, 설마 우릴 죽음으로 몰아넣겠거니, 하는 의심이 있을 턱이 없다.

그런 피난소풍길. 블라블라,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코쟁이들이 총을 들이댄다. 뭔 일인가, 싶어도 말도 안 통하는데, 느닷없이 미군기가 폭격을 하고, 코쟁이들이 총을 쏘아댄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피가 사방으로 튄다. 전쟁이 따로 있나. 눈앞의 광경이 바로 전쟁이다. 우릴 지켜주는 줄 알았던 코쟁이들은 대체 어디로 갔으며, 왜 우리는 총을 맞아야하는가, 하는 고민할 겨를도 없다. 총을 피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쌍굴다리로 피했지만, 그곳이라고 총구의 시야에서 자유롭지 않다. 총알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들을 향하고, 총격에 쓰러진 혈육을 두고 도망가야 하는 이들의 비통한 얼굴은 전쟁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다.

<작은연못>의 노근리 사건은 그렇게 재구성됐다. 1999년 AP통신 최상훈 기자 등의 보도가 2001년 퓰리처상을 받으면서, 세상에 알려진 그 사건. 한국전쟁이 아닌, ‘노근리 전쟁’이라고 불러도 좋을, 민간인 학살의 현장. 무려 300여 명이 영문도 모른 채, 죽었다. “어르신, 진지 드셨습니까”하는 일상의 리추얼은 더 이상 지속되지 못했다. 한국전쟁이 남한과 북한을 둘러싼 외세의 이데올로기로 위장한 이권 다툼이었다면, 이 노근리 전쟁은 전쟁의 실체를 정직하게 까발린 진실이다.


전쟁을 아직 영토 분쟁이니, 이데올로기 갈등이니 하는 시각으로 본다면, 당신은 너무 나이브하다. 전쟁은 지배계급의 탐욕이 빚은 극강의 야만이다. 전쟁이 나면, 국가를 위해 싸워야한다고? 순진한 소리 마라. 국가를 들먹이는 건, 대개의 경우, 지배계급이 당신을 총알받이로 쓰기 위한 레토릭이다.
 
“전쟁은 지배계급에 의해서 준비, 결정, 조직되고, 전쟁에 나가서 싸우고, 전쟁을 치르며, 고통 받는 것은 바로 일반 민중이다.”
(베르너 빈터스타이너)

<작은연못>은 그 말을 입증하는 역사적 사실의 하나이다. 아무도 모른다. 학살을 당한 민간인들도, 총을 쏘는 미군도, 그 비극의 현장을 비통하게 바라보는 우리도. 다만, 얼굴을 알 수 없는 사령부만 안다. 그저 쏘라는 명령만 내리는 그 주체. 어디에 있는지 알 수도 없는, 무전기를 통해 목소리만 전해지는 지배계급 말이다. 그들은 그저 뒷전에만 있을 뿐, 전장에서 총을 들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고통? 무전기에는 어떤 고통도 없다. 모르긴 몰라도, 그들이 죽이라고 명령해서 죽은 사람이 무고한 민간인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도, 그들은 이리 말할 것이다. 전쟁 중 벌어진 일이라고. 전쟁은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한국전쟁 60년. 일부러 이 시기에 맞춘 것은 아니다. <작은연못>은 AP통신의 보도 이후 이를 엮은 《노근리 다리》가 2003년 출간되면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오랜 세월 풍문으로만 돌던 역사적 사실을 세상에 까발린 기사에 자극받은 영화인들이 이를 스크린에 담아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음이리라. 한 마디로, ‘사회적 영화’였다. 영화 내용이 품은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인들의 사회적 책임이 발로가 된 영화를 말함이다.

뭣보다 142명의 배우와 229명의 스탭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낸 쾌거가 아닐 수 없다. 고 박광정을 비롯해 강신일, 김뢰하, 문성근, 문소리, 박원상, 송강호, 유해진, 이대연 등 주류 영화연극계 배우들이 무보수 자발적으로 참여한 영화. 영화를 연출한 이상우 감독의 집념이 만들어낸 영화. 마침내 8년여의 오랜 제작과정을 거쳐 최근 힘들게 개봉했다.

오해는 마시라. 사회적 책임과 뜻이 모였다고 결코 허투루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날의 참사를 더욱 아리게 만드는 1950년대 농촌 풍경은 영상미를 담보하며, 컴퓨터그래픽과 접목된 폭격 장면은 완성도만큼이나 비극을 더욱 아로 새긴다. 그럼에도 품위를 잃지 않는 연출과 그 많은 배우들의 앙상블이 스크린을 빛낸다. 역사적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강요로서 다가오지도 않는다. 민간인이자 일반인으로서 살아가는 대다수의 우리들이라면, 노근리에서 총알을 온몸으로 맞고 피해야하는 그들의 공포와 슬픔을 남의 눈으로 볼 수 없다. ‘전장’과 작동 메커니즘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시장 (만능주의)’의 영향권에서.


1950년 7월의 충청북도 영동군 노근리. 300여 명 주민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단 25명. “시체로 참호를 쌓고, 핏물로 갈증을 달랜” 비극은 아직 제대로 달래지지 못했다. 그때 채 열 살이 되지 않은 생존자의 삶은, 그 참상을 겪고 난 뒤 온전했을까. 영화의 끝, 그날의 비극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증언을 하던 얼굴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의 전쟁을 본다. 현대사의 또 다른 비극 혹은 현실과 겹칠 수밖에 없는.

나는 전쟁에서, 그리고 전쟁의 또 다른 형태인 시장에서, 늘 불평등하고 불공정하게 죽어가는 혹은 낙오(곧, 죽음)를 강요당하는 우리네 모습이 밟혔다. 그들은 곧, 나와 다르지 않았기에 눈물이 났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다가오지만 질병은 그렇지 않듯이, 전쟁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닥치지만 직접 전쟁에서 죽을 확률은 사람마다 다르다. 미국은 20세기 거의 모든 전쟁에 관여했지만, 한 세기 동안의 모든 크고 작은 전쟁에서 죽은 미군 병사의 총수는 3년 동안의 한국전쟁 당시 죽은 한국인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쟁은 장교나 병사 모두에게 죽음의 가능성을 극도로 높이지만, 철통같은 경비를 받는 CP 깊숙이 근무하는 대대장급 이상의 지휘관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은 매일 몇 시간씩 순찰해야 하는 말단 병사들이 죽을 확률의 1%에도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시장’이 돈 많은 사람과 돈 없는 사람 간의 계급적 차별의 원칙이 적나라하게 작동하는 현장이듯이, ‘전장’도 이러한 계급 원칙이 매우 적나라하게 관철되는 현장이다. 죽을 확률이 0.1%에도 미치지 않는 군인과 죽을 확률이 10%가 넘는 사람을 같은 군인으로 취급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으며, 이들 모두를 전쟁의 피해자라 말하는 것도 모순이다.… (중략)

인간 세상에 전시만큼 불평등한 세상, 권력과 민중의 격차가 극대화되는 시기도 찾아보기 어렵다.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말은 전쟁으로 사람이 죽고 다치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만이 아니라, 전쟁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타락시키고 부패를 극대화하고 사회의 안정된 질서와 규범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기 때문이다.”(『리영희 프리즘』, pp.65~66)

어쩌면 내가 그 ‘노근리 전쟁’을 잊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울음을 갑자기 멈춰버린 아기. 옆에서 죽어간 가족과 이웃 때문이었을까. 예민해진 누군가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총알 세례를 부른다며 울먹이며 질책했다. 그 순간, 누가 그 생존의 울부짖음을 타박할 수 있을까. 울고 있는 아이를 품고 있는 아비의 결단. 이성의 발로였을까, 감정적 충동이었을까. 모르겠다. 숨이 턱 막혔다. 가슴이 먹먹했고, 나는 울고 있었다.

그들은 소풍처럼 피난길을 떠났을 뿐이었다.


* 229명의 스탭과 142명의 배우가 노근리 사건을 기억한다고 그랬다.
당신과 나, 관객인 우리도 함께 그 기억에 동참하자. 비극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