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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무비일락

내가 아직 영화에 출연하지 못한 이유

by 낭만_커피 2009. 12. 13.

직장탈출? 아무 것도 아니다 : 멀쩡하게 잘 다니던, 그것도 통념상 버젓한 직장(이라고 쓰고, 감옥이라고 읽는다)을 나오는 것은, 실은 대단한 용기는 아니다. 혹자는 우와~하며 부러움 혹은 놀라움을 표하겠지만, 당사자 입장에선, 그것은 그냥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를 버리면, 다른 하나를 얻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해도 된다. "이른바 ‘안전빵’이라는 공무원 생활을 버리니까 자유를 얻은 대신 가난이 찾아왔어요"라고 말한 ≪깐깐한 독서본능≫저자이자 영세 축산업자 윤미화(파란여우) 씨. 버리고 얻어본 이라면, 윤미화 씨의 말 중에 '자유'와 '가난' 대신 자신에게 적합한 다른 말을 넣으면 되겠다.  

교사였던 지완이 학교 선생님을 그만두고 영화판에 뛰어들겠다고 나선 것도 그렇다.  물론, 그렇게 영화판에 뛰어들면 뚝딱 영화가 만들어질줄 알았다는, 현실 모르는 나이브한 생각을 했다지만. 영화판을 대체 뭘로 본 거야. 선생이 저렇게 나이브해도 되는 거야? 라는 짧은 생각도 스쳤지만, 어쨌든.

윤경화 씨의 말을 빌자면, 지완은 '영화'를 얻은 대신 '정신질환'이 찾아온 격이랄까. 정신질환이라고 표현했지만, 액면 그대로의 것은 아니다. 시나리오를 향한 그의 사투가, 아마 그의 정신을 돌아버리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썼다. 사실 꼭 얻은 것도 아니고, 꼭 찾아온 것도 아니다. 감옥을 탈출했다고 대단하게 볼 것도 없고, 감옥에 붙어있다고 불쌍한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모든 것의 방식대로.

나는 왜 아직도 영화에 출연 못하고 있는가 : <레인보우>는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에 가깝다. 즉, 메타영화. 사표를 쓰고 5년이 넘도록 입봉을 못하고 있는 지완을 보자니, 문득 떠오른 나의 한 친구. 얼마 전에 술을 한 꽐라 걸치고 밤 늦게 내게 전화했던 영화하는 친구. 녀석도 결혼한 지 이제 반년, 알콩달콩 행복하지만(아직은 그럴 때지, 암! 끄덕끄덕. 결혼도 못 해본 내가 어떻게?ㅋㅋ), 꽐라했던 그날의 전화통화에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애가 잔뜩 묻었다.

핵심은 그거다. 십 수 년째 영화에 매달리고 있지만, 아직 입봉을 못한 친구. 영화는 십 수 편이 엎어졌고, 이젠 현장에서도 약간 떨어져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영화를 가르치면서 지탱하고 있지만, 언제 입봉할지도 몰라, 가장으로의 책임감은 점점 무거워져. 물론 제수씨는 아직 녀석을 몰아붙이지 않고 있었고, 생계는 대부분 그녀가 책임지고 있다(고 추정된다). 하지만 언제 제수씨가 돌변할지, 녀석의 영화꿈은 언제나 이뤄질지, 모든 것은 불투명하다. 녀석은 그렇게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아 참, 녀석의 영화를 기다리는 이유가 나도 있다. 그 영화에 나도 출연시켜 준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연히 주연은 아니고, 행인.^^; 아직 내가, 온갖 캐스팅 제의(?)에도 불구, 영화에 출연하지 못하는 이유다. 녀석의 영화에 첫 출연을 하고 싶어서? 푸하하. 쪽 팔리는구만. ^^;; 그래도 나는 녀석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영화가 뭐기에 그렇게 붙잡고 있느냐고. 영화를 사랑하기에. 사랑하기에 떠나신다는 그말, 나는 믿지 않으니까.

루저? 위너? 행인! : 아들과 남편을 둔 30대 후반의 여성, 지완에게 영화계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시나리오만 쓰고 엎기를 수차례. 노트북에서 개미가 기어다니는 환영에 시달리기까지 한다. PD의 재촉을 받으며 상업성과 하고 싶은 이야기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지완. 집에서 남편은 언제 영화 하느냐고 재촉하고, 밴드를 하겠다는 아들은, 사춘기다. 아, 어쩌란 말이냐.

지완은 버티고 견딘다. 음악영화를 하겠다고 취재에 나섰다가 한 페스티벌에서 발견한 악보에서 그녀는 또 다른 재미를 맛본다. 물론 그렇다고 현실의 영화일이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옆 방의 별 볼일 없이 빈둥대는 감독은 국제영화제에서 수상도 하는데, 이상하리만치 자신은 죽도록 고생만 한다. 화를 내거나 분출하는 것도 없이 그저 묵묵히, 묵묵히.  

그렇다고 묵묵하게만 살 수 있나. 어느 날, 후배의 영화 현장에서 우연히 행인 엑스트라로 참여하게 되면서, 한 순간 폭발하고야 마는 지완. 뭔가 홀가분해진 것 같은 느낌. 진즉에 터졌으면 싶었는데... 아들이 묻는다. 엄마, 루저가 뭐야? 지완은 답한다. 잃을 게 더 없는 사람. 그럼 위너는? 더 이상 얻을 게 없는 사람. 그럼 엄마는? 엄마는 행인. 그냥 걸어가는 사람.

지완의 깨달음. 그냥 걸어가는 거다. 내가 가는 곳이 길이다. 시스템에 갇혀 있지 말자. 반보 후퇴하고 일보 나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족한 거다. 지완이 언제쯤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영화 만드는 것 자체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더 이상 그녀를 근심하지 않는다. 그녀는 걸어나갈 테니까. 그녀는 행인이니까.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 <레인보우>.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 영화에 뜻을 둔 사람에겐 특히나 자신의 처지와 연동돼 어떤 정서적 울림이나 감흥이 더 와닿을 순 있겠다. 글쎄, 얼마 전 전화가 와서 하소연 한 친구가 아녔다면, 이 영화가 그렇게 와 닿았았을진 모르겠다. 물론 나도 행인이니까, 지완의 처지에 공감은 충분히 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