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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사랑, 글쎄 뭐랄까‥

이별을 겪은, 그러나 다시 사랑할 사람들을 위해… <봄날은 간다>

by 낭만_커피 2007. 6. 6.
이제 계절이 바뀌었듯, 봄날이 언제나 지속되는 건 아니다.
계절은 바뀌기 마련이고, 사람들은 바뀐 계절에 맞춰 옷을 바꿔입어야 한다.

삶에는 그렇게 불가피한 것들이 있다.
생이나 죽음이 그러하듯,
사랑도, 이별도 그러하다.

봄날이 가면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대개의 생이다.
그래.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봄날은 간다>는 그것이기도 하다.

<봄날은 간다>에는 그런 것이 있다.
허진호 감독의 앞선 작품이 그러했듯,
느닷없이 생에 끼어든 사랑과 이별의 방정식.
그리고 '어찌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넉넉하면서도 쓸쓸한 시선.

다시 봄날이 지나간 즈음, <봄날은 간다>를 꺼내볼 때다.

그리고 나는 이 장면들을 가장 좋아한다.
사랑에 달뜬 사람들의 꾸밈없는 양태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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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직원들과 회식하던 상우 이놈.
그런데 사랑 앞에 장수 없다더니
회식 에티켓이고 뭐고 내팽개친다.

회식하는 가게 밖 창문에 쪼그려 앉아 은수와 통화한다.
 “보고 싶다”고 옹알대더니
버럭 택시를 부른다.
그리고선 다짜고짜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아이씨~ 강릉”하며 외친다.
황당했지만 친구의 택시더라. 상우는 친구의 택시를 불렀다.

그리고 친구의 그리움을 알아본 친구는 한달음에 강릉까지 내지르고.
어스름 짙은 도로의 가로등 불빛 아래 은수가 나와있다.
택시 문을 열고 나온 상우는 은수를 와락 와라라락 뼈가 으스러질 것처럼 안아준다.
(아, 안습 ㅠ.ㅠ)

그리고 “좋다!”고 외친다.  
그 짧은 말 속에 드러나는 사랑의 달뜸. 그리움의 홍수.
이보다 행복한 연인이 있을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빛나는 순간.
허허 그것이 사랑이여.

그래.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
굽이굽이 숨차게 달려가던 그 어느해 겨울의 영상들.
그땐 그랬지. 그 사랑을 보는 것만으로 벅차던 시절.
아, 옛날이여~~~

상우에게 보냈던 편지.
벌써 이것두 3년 전이던가.
어떻게 지내니 상우야.


상우에게

짧은 봄, 5월이 갔다. 신록의 계절도 더 이상 곡예를 넘지 못하고 여름에 바통을 넘긴다. 그냥 상우(유지태), 네 안부가 궁금해졌다. ‘봄날이 가는 구나’라는 계절의 바뀜을 아쉬워하는 소리를 곳곳에서 들은 까닭일까. 문득 상우, 널 떠올렸다. 갈대숲에서 소리를 채집하던 너의 마지막 모습. 괜찮은 거지? 어떻게 지내? 은수(이영애) 없다고 이젠 울고 그러지 않지?

이젠 너도 훌쩍 세월을 머금고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겠지? 그런 니 모습에 실망할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이젠 다른 여자 앞에서 “우리 헤어지자”는 말을 툭툭 내뱉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해도 해도 모를 것이 사랑이라지만 니가 “너 나 사랑하니?”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같은 신파조의 대사는 더 이상 읊조리지는 않을 것 같다.

대답하지 않아도 좋아. 너의 사랑의 숲속에서 그 기억을 따로 떼어내거나 팔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진 않으니까. 사랑했던 날은 잊혀지는 게 아니고 묻어두는 거니까. 그냥 난 네가 당시의 은수처럼 돼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그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으니까.

그건 첫 사랑의 열병이지. 맹목적이고 앞뒤 두서 가리지 않는, 그래서 나중에 더더욱 아픈. ‘그 땐 참 좋았는데…’하면서 말끝을 흐려버리는 게 우리네 첫 사랑 아니겠냐. 또 사랑과 아픔은 동전의 양면 아니겠냐. 좀처럼 깨질 것 같지 않은 달콤한 나날도 변해가는 사람 앞에, 세월의 흐름에, 추억이란 이름으로 탈색될 수 있는 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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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널 지켜보는 나도 같이 아팠다. 사랑을 앓고 지난 봄날을 되새김질하는 기억 때문에. 생채기처럼 남아있는 기억의 결은 대나무 숲 바람소리, 하얀 파도소리, 보리밭 어우러진 소리, 연인의 허밍소리 등과 함께 시작에서 끝까지 감정의 골을 깊게 파고들더라. 사랑에 아파했던 기억을 가진 이에겐 한 가닥 떨쳐버릴 수 없는 앙금이 남아 있거든. 머리 속에선 사랑을 정리해도 가슴 속에선 앙금이 남는, 사랑의 분열된 모습도 있지.

반면 은수는 그게 아니었잖아. 독하더라. 그리고 충분히 자기를 방어하면서 욕망에도 충실하고. 아니, 그게 어쩌면 현명한 건지도 모르지. 한편으로 웃기긴 해도 말이야. 지 멋대로 선전포고하고서도 되돌림표를 그려 넣으려던 은수. 그 여잔, 이미 사랑을 아는 여자잖아. 너랑은 체급이 달랐어. 하하….

내가 이 얘길 꺼내서 멋쩍냐? 뭐 그래도 이젠 너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웃어넘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누구는 너의 순정과 순수가 때를 탔다고 타박할지는 몰라도 어차피 그건 성장통 아니겠어? 설마 한 큐에 사랑의 완성을 꾀한다거나 절대 울지 않고 탄탄대로 순항만 할 거라고 기대했던 건 아니겠지? 아니 혹시 그랬을지도 모르겠군. 넌 정말 아무 것도 모른 채 은수의 손길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목각인형과도 같았으니까.

그러고 보니, 짜식. 넌 참 바보 같았지. “라면 먹고 갈래요?” “자고 갈래요?”라고 은수가 노골적으로 유혹을 하는데 진짜 그러려니 생각했던 것 같았으니까. 하긴 누구에게나 그럴 때가 있을 수 있지. 버겁도록 순수할 수 있는 그런 시절. 그러다 이 세상 살아가다보면 그 시절에도 이물질이 끼고 또 다른 껍질을 깨야 할 때가 오는 법이지.

한편으로 지독한 순수는 오히려 불순함보다 못할 때가 있어. 불순함이란 건 내성을 길러주거든. 그건 과정이야. 성장을 위한.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야. 네 순수가 갉아먹은 흔적들을 봐. 직장도 때려 치고 직장 형한테도 ‘띠바’라고 욕지거리나 내뱉어 그 좋던 사이를 어색하게 만들어 놓고, 남의 차를 긁어놓질 않나. 네 일상이 엉망진창이었던 걸 생각해봐. 물론 전적으로 그게 나쁜 건 아니지. 사랑의 열병을 그렇게 앓는 것도 네 인생의 중대한 사건이자, 너의 삶을 구성하는 피와 살이 될 테니까. 갈대숲에서 소리를 채취하던 모습에서는 훌쩍 커버린 널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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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당시 은수를 너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니? 운명적인 사랑을 믿고픈 사람들도 물론 많지. 운명 같은 사랑을 그렇게 그리는 사람들도 내 주변엔 많거든. 그래서인지 은수의 운전 연습을 시키다가 멈춰선 언덕의 봉분 앞에서 은수가 “우리도 죽으면 저렇게 같이 묻힐까”라던 속삭임은 짠하더라. 은수, 그 여자 당시에는 진짜 그랬을 거야. 사랑한 후의 결과가 어찌됐건, 사랑했던 당시에는 진정성이 분명 묻어나는 법이거든.

솔직히 네가 부럽고 짠하기도 하더라. 동료들과 술을 마시다가 갈비 집 창문 아래서 전화기에 대고 ‘보고 싶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뇌다가 친구의 택시를 타고 서울에서 강릉까지 한달음에 달려가던 너. 그 달뜬 사랑의 표정하곤….

또 바다를 옆에 낀 도로에서 가로등 불빛이 서울과 강릉의 거리만큼 강렬한 너희 둘의 포옹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광경도 말이야. 봄날의 감흥이 이렇게도 표현되는구나 싶더라구. 사랑은 두 마디로 충분하다는 사실도 그 때 알았지. ‘보고 싶다’와 ‘좋다’ 그런 상황에서 그 ‘사랑’에 혹하지 않는다면 과연 ‘사랑’할 자격이 있을까 싶더군.

그러나 사랑도 운명보다는 일상 속에서 길어 올리는 감정임을 아는 경험자들에겐 너처럼 ‘변하지 않는 사랑’을 믿었던 순수론자는 피곤해. 인생에 있어 사랑은 분명 윤활유고 한때 전부라고 여겨질 때도 있으며 그걸 하지 않는 자는 유죄이지만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순 없어. “사랑이 밥 먹여주냐”는 말은 너무 고리타분하고 적나라하지만 맞아.

어쨌든, 난 네가 잘 지내고 있으리라 생각해. 넌 이미 ‘예전’의 상우가 아니니까. 이제 징징대면서 헤어지자는 여자 앞에서 땡깡 부리고 그러지 않지? 그래도 솔직히 가끔 너와 은수를 보면 눈물이 나. 머뭇거림에서부터 시작하는 사랑이 봄날에 나누는 서로의 미소로 바뀌고, 빗소리의 처량함이 눈물로, 태연히 손을 내밀어 악수로 마무리하는 너희 둘, 그 엇갈림의 궤적을 눈에 넣을 때마다 말이야. 참내, 나도 한심하지. 후후 별 수 없긴 없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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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봄이 지나는 길목에서 너희 둘의 지난날을 다시 봤어. 그리고 갑자기 편지가 쓰고 싶어진 것뿐이야. 봄은 가고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그러겠지. 답장은 쓰지 않아도 좋아. 언젠가 다시 편지를 쓸 지도 모르겠다. 영영 쓰지 않을 수도 있겠지. 후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