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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어리석음의 기록

[책하나객담] 아름다움이 차별한다, 아름다움이 권력이다

by 낭만_커피 2008.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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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들의 우스갯소리 혹은 진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좀더 나가자면 이렇다. “예쁘지 않으니 공부라도 잘 해야지.” “예쁘지 않으니 저렇게 능력이라도 있어야지.” 여자들이 질세라 그런다. “잘 생기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못 생겨도 능력 하나는 좋네.” 우리는 일상에서 이 말이 마냥 ‘우스갯소리’나 ‘거짓’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나는 이 말의 성정치성에 대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한번 생각해보자. 혹시 당신이 잘 생기거나 예쁘지 않다면 이 명제가 ‘참’이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잘 생기거나 예쁜 사람이 더 많은 봉급을 받고 출세도 빠르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이른바 ‘얼짱 범죄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사도 떠올려보라. 텍사스 법원이 지난 수년 동안 판결했던 사건 2235건을 조사해 보니, 죄를 지어도 예쁜 여성은 형량이 반밖에 되지 않았단다.

이런 사례도 한번 볼까. 뉴욕 로체스터대 심리학과의 데이비드 랜디와 해럴드 시걸 교수가 제자들에게 여고생들이 쓴 에세이에 점수를 매기게 했다. 에세이에는 사진이 없었을 때, 점수 분포(10점 만점)는 6.6점에서부터 4.7점까지 좁은 점수 분포였단다.

그러나 에세이에 사진이 첨부됐다. 아니나 다를까, 점수가 달라졌다. 예쁜 여학생의 경우 평균 1.5점 이상 올랐다.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오히려 0.7점 정도 떨어졌다. 무려 2.7점이나 떨어진 학생도 있었다. 사진, 즉 외모가 에세이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선생님들이 성적을 매길 때 외모에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는 불행히도 일관된 사실이다. 허허. 어쩌란 말이냐. 못 생기거나 예쁘지 않으면 죽으란 말이냐. 흑.

지난해 한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당시 자신의 관심사를 말했다. 예쁘고 잘 생겼다는 것이 뭔지, 아름다우면 진짜 모든 것이 용서될 수 있는지, 이른바 아름다움과 사람 간의 소통․관계를 연구하고 싶다고. 지금 얼마나 그 연구(?)가 진척됐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한가지 확신하고 있다. ‘아름다움이 차별한다’. 아름다움이 차별의 대상이 아닌, 차별의 주체다. 아름다움은 기묘하게도, 타자화 되지 않는다. 되레 타자화 시킨다. 그것은 누구나 아름다움에 미혹되기 때문이다. 혹, 아름다움에 미혹당하지 않는다면, 그건 비극이다.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탄하지 못하는 심각한 질병이다.

그래서 지극히 공감하는 말도 있다. “아름다움은 권력이다.” 《삼봉이발소》의 주인공, 박장미와 수진이가 달리기를 위해 같은 스타트라인에 섰을 때 그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권력(?)을 가지지 못한 장미는 푸념을 늘어놓는다. “정말 싫다... 이런 답답한 세상 따위...” 달리면서도, 달리기를 끝내놓고서도, 끊임없이 장미를 괴롭히는 상념 혹은 잡념. 다 아름다움이 부추긴 권력의 불평등한 분배.

또한 아름답지 않으면 존재감마저 상실하고 마는 현실. 같은 반의 잘 생긴 민호에게 뿅 간 장미 친구, 희진이가 민호에게 친절을 베풀어도 민호에게 희진은 그저 ‘없는’ 존재다. 악플보다 무서운 것이 무플이라고. 잘 나고 예쁘지 않은 것보다 더 극악한 것은 어쩌면, 존재감이 없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장미나 희진은 그래서 무섭다. “지금 간신히 끝을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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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이발소》의 ‘외모 바이러스’는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분명 세상에 실존하고 있는 것. 영란이를 통해 실체를 드러낸 외모 바이러스는 영화에서 접하곤 했던 ‘좀비’를 연상시켰다. 넋이 빠진 채, 평상시와 달라진 얼굴로 상대를 향해 공격적이고 흉포한 행위를 가하고 있었다. 삼봉의 치료술에 의해 드러난 영란의 고백은 좀더 쓰라렸다. “착하고, 마음씨 좋고, 잘 챙겨준다고? 웃기고 있네. 그딴 말들은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나에게 그냥 위로하려고 해주는 말이란 거 단 안다고. 가식이란 거, 다 알아, 흑...” 그건 지독하게도 현실이고 사실이다.

오래 전, “얼굴이 예쁘면 성격이 나쁠 것”이라는 전형적인 인식이 있었다. 예쁜만큼 싸가지가 없거나, 기고만장해서 다른 사람들을 깔보는 등의 성격이 형성됐다는 이야기.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예쁠수록, 잘 생길수록, 더 많은 사랑을 받는다. 그들의 마음씨 또한 그 사랑만큼이나 좋은 경우도 많다. 그래서 “예쁘면 성격도 좋다”는 말도 요즘은 받아들여진다.

그런 면에서 삼봉이는 뭐랄까. 아름다움이 ‘사회적 프리미엄’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들어간다. ‘내면의 좋은 점을 외적 형상으로 표출한 작품’을 만든다. 그것은 외면의 아름다움 또한 가꿀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했다. “사람은 외면보다 내면이 더 중요하다”는 고루한 말은 무덤으로 보내도 된다. 아름다움은 분명 (사회적) 권력이고 힘이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도 볼썽사나운 짓이 될 테다.

세상은 누구나 알다시피, 불공평하다. 그것은 명약관화하다. 그것 갖고 불평하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말로 하는 불평보다 행동으로 엎어야 한다. 면접에서 외모 때문에 떨어졌다고 생각한 응시자의 외모 바이러스 발현 현장에서 삼봉이는 냉정하게 말하지 않는가. “불공평하다고?... 지랄하고 있군. 공평 불공평을 따지기 전에, 네 자신을 위해 뭔가 조금이라도 해봤어? 그냥 ‘이건 첨부터 안 돼.’라고 너 혼자 결정짓고 계속 불평만 늘어놓고 있는 거 아니야?”

주인이가 다정이에게 빠진 가운데,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장미와 희진. 주인이는 어떤 식으로든 외모 바이러스에 걸릴 테고,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 삼봉이의 가위가 등장할 것이다. 1편은 그렇게 맺었다. 장미는 그 과정을 거쳐 자신의 내면을 좀더 깊게 들여다보고 현실과 맞장을 떠 나갈 것이다.

아직 1편 밖에 보지 않은 이 책의 미덕은, 외모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현실은 분명 그렇지 않다. 아름다움은 차별하고, 권력이다. 무용하고 무익한 아름다움일지라도 그것에 탐닉하고픈 자들도 분명 있다. 그렇다고 취향과 차별적인 구조를 혼동하고픈 생각은 없다. 부디 나는 이어지는 후속편에서도 꽃미남 삼봉이가 무덤으로 간 경구들을 꼰대처럼 설교하거나 설파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아름다움의 권력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어쨌거나 결론은, 재밌다. 삼봉이발소. ^^ 심각한 척 하지 않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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