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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5월25일, 당신의 가슴 속에도 누군가가 있는가...

by 낭만_커피 2008.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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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야외무대에서 펼쳐진, <미술관에서 즐기는 1일휴가콘서트>에, '카페 티모르'가 함께 했다. '카페 티모르'의 케이터링을 아주 조금 도우러 간 나는, 거의 6~7년 만에 다시 찾은 (동물원 옆) 현대미술관의 풍경 앞에 약간 설렜다. 더구나 지금은 아직도 봄날.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싱글남의 춘심은 뻥뻥 부풀어오르기 마련~. 그래, 청춘이 소멸된 자리에도 춘심은 되살아나기 마련인데, 내 봄날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게지. 춘심은 또한 여심이라지만, 남심이라고 방콕하란 법은 없잖은가 말이다. ^^

그런 봄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춘심으로 들뜬 풍경. 많은 이들이 커피나 맥주를 하나씩 끼고, 바람과 풀이 행하는 속삭임과 터치에 기대고 있었다. 물론 그것만이 아니었다. 대니 정의 온몸을 흐느적대게 하거나 들썩이게 만든 섹소폰 연주가 여흥을 돋웠고, 권해효의 재기 넘치는 야부리와 노래가 붐업을 시켜줬다면, 한영애는 그 특유의 카리스마와 빨판처럼 우리의 마음을 흡입하는 노래로 봄날의 춘심을 마구마구 흔들어댔다. 특히나, 세계를 아우르는 한영애의 짧은 멘트 하나하나는 그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실감케 한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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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렇게 봄날의 저녁이 익어갈 무렵. 비록 공연장의 저 곁다리에서 '카페 티모르'의 케이터링을 도우면서, 귀동냥하고 몸동냥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는데, 무대에 한쌍의 커플이 초청됐다. 한영애는 사연을 읽었고, 그들은 무대 위로 불러세워졌다. 이른바 '프로포즈'의 시간. 구구절절 사연은 차치하고, 사실은 기억도 잘 나진 않아. 그래도 분위기만 언급하자면, 5월의 프로포즈는 닭살스러워서 더욱 반짝반짝했다. 콘서트장에 모인 춘심(들)의 결을 따라, 그 춘심을 업시키기엔 딱 좋은 모멘텀.

그리고 한영애의 주문에 따라, 구애남이 던진 결정적 한마디. "나랑 결혼해줄래?"
그 뻔하고 식상하며 상투적이기 그지 없는 그 말도 그 순간만큼은 어떤 주술같은 힘을 발휘한다.
이미 그 연인 사이엔 어떤 교감이 있었을 테고, 타이밍의 문제였을 뿐이겠지만, 뭐랄까,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저건 마법의 주문이라고. 낯 모르는 숱한 대중들 앞에서 연인을 향한 프로포즈의 이벤트가 만드는 마법의 순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가 감염되고 마는 행복 바이러스. 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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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그리고, 어떤 장래 계획을 갖고 있냐는, 한영애의 질문에 미리 준비라도 해 둔양, 연인과 꿈꾸는 혹은 행해야 할 아니면 행하게 될 행위들을 열거했다. 일종의 자신과 연인을 위한 약속 같은 것. 그 순간만큼은 나는 그 남자의 진심을 느껴졌고, 그냥 코 끝이 시큼했다. 찡~했다. 씩씩하면서도 수줍어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행복감과 사랑이 듬뿍 발린 그의 말을 듣자니. 결국 혼자 중얼거렸다. "님 좀 짱인 듯..."ㅋㅋ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됐다. 마침 5월25일을 몇 시간 앞에 둔 시점. 내 생체 및 감성 초침이 이미 향하고 있는 어떤 이야기와 욕망을 향해. 그 사랑과 그 약속이, 내 기억의 숲속에 자리잡고 있는 어떤 사랑과 약속이 오버랩됐다. 그들은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어떤 생일파티를 하면서 이날을 맞이할까. 혹시 다시 헤어졌을 수도 있겠지. 아냐, 그래도 다시 만날지 몰라.....

언젠가, 어느해, 5월25일. 나는 피렌체 두오모에 올라가고, 블로깅을 할 것이다. 어느 여인의 생일을 축하하며, 어느 10년의 약속이 사랑과 합치되던 순간을 기억하며, 그토록 품던 피렌체 두오모에 올랐음을 자축하며, 어쩌면 누군가를 향한 프로포즈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순간을 꿈꾸며... 그건 또 내 자신과의 약속. 몇 년 후가 될 지 알 수 없지만. *^^*

하나씩 풀어보자면,
그 여인은 아오이. 소설과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의 주인공.
5월25일은 아오이의 생일이자, 두 사람이 10년 전 그들의 사랑을 위해 약속을 했던 날.
피렌체 두오모는 아오이와 쥰세이의 10년 약속이 이뤄지는 장소.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그 한마디.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 속밖에 없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그 나이 때부터, 나는 피렌체 두오모를 꿈꾸고 있다. 5월25일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감지되는. 혹시 그 시간, 그 곳에 가면 내 잔치가 다시 시작될 것 같은 예감? 아니면 어그러진 그때 그 약속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혹은 어떤 위로를 받기 위해서? 나도 모르는 그 이유 따윈 제쳐놓고, 오르고 말 일이다. 그 어느해 5월25일 피렌체 두오모에. 케익 하나 들고, 아오이의 생일을 축하해줘야겠지? *^^*

그래, 그렇게 5월25일이다. 10년의 약속이 있었던 그날. 5년 전 풀어냈던, 내 냉정과 열정 사이.

당신이 복원하고픈 옛사랑, <냉정과 열정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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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약속이 있었다. 추억보다 진하고 강력한 주술과도 같은 그런 약속. 사랑했던, 아니 사랑하는 그들은 이야기한다. “추억이 아닌 약속”이라고… 또 “약속은 미래이며 추억은 과거”이며 “추억과 약속은 의미가 다르다”고 속삭인다. 그 간극은 크다. 미래는 보이지 않지만, 과거와 달리 반드시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혹은 누군가에겐 약속은 현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보이지 않지만 미래의 그 언젠가 찾아올(것이라고 믿는) 그 무엇. 그 약속은 일상을 지탱하게 만들고 희망을 길어낸다. 대개의 약속이 사계절의 스쳐감, 세월의 풍파에 깎이거나 퇴적되지 않을 수 있을까마는 사랑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약속이라면 때론 세월을 이겨내는 힘이 될 것이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약속은 그 순간, 당시의 감정을 가장 투명하고 충실하게 반영한 결과물일 수도 있다. 평생 잊지 못할 어느 한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은 때론 그런 약속을 한다. “우리 영원히 함께 하자”고, “우리의 인생은 다른 곳에서 시작됐지만, 반드시 같은 장소에서 끝날 것”이라고… 이것은 어쩌면 열정이다.

물론, 혹자는 얘기한다. “약속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라고. 그럴 수 있다. 아침의 주림을 저녁의 다담상으로 잊고, 쓰지 않는 칼은 녹슬기 십상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대변한다. 아무리 굳게 지어먹은 마음이라도 세상살이가 변하면 따라 변하게 마련인 것이 한편으로 우리네 사람살이다. 그것은 또한 냉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약속이 이뤄진 그 순간의 진정성은 무시할 수 없다. 그것이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손 열정을 내칠 수 없다. 찰나의 순간에 냉정을 부러 끄집어낼 수는 없다. 그리고 사랑의 약속은 세월의 모진 바람을 맞으며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외줄을 탄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불가피하게 지키지 못한 약속을 지닌 사람은 어떨까. 마음 깊은 곳에 ‘열정’을 지니고 있지만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이유로 ‘냉정’을 강요받는다면……. 그 사람에겐 평생 짊어질 회한이 남는 법이다. 가슴 속 어느 한 편에서 지워지지 않을 어떤 상흔 같은 것.

기적은 누구에게나 쉽게 일어날 수는 없다. 최소한 내가 아는 기적은, 그 기적은 그렇단 얘기다. 냉정도 열정도 그 어느 것도 될 수 없는 경계에서 그 약속은 정처 없이 부유한다. 누군가에게 그래서 ‘추억’은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추억보다 약속”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과 영화 사이, 원작의 질감과 밀도에 미치는 못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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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책을 통해 이 사랑을 접한 사람들에게 영화는 그냥 ‘확인사살’일 뿐이다. 원작 <냉정과 열정사이>는 “하나의 사랑, 두 가지 느낌”이란 컨셉으로 어느 외로운 두 남녀가 그리는 사랑의 궤적을 담담하나 뭉클하게 담아낸다.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듯, 아오이(Rosso)와 쥰세이(Blu) 각각의 입장에서 한 사랑의 궤적이 그려내는, 다른 색깔의 러브 로망이다.

아오이와 쥰세이사이. 그 책은 사랑의 약속을 다룬다. 둘 가운데 누가 냉정이고 누가 열정인지, 한 사람 내부에서 냉정과 열정사이는 어떻게 외줄을 타는 지를 책은 넌지시 속삭인다. 또 열정에 불이 붙고 냉정에 물이 뿌려지는 순간에 대해 책은 귀띔한다.

단언컨대, 영화는 분명 원작의 질감과 감성을 능가하지 못한다. 앞서 확인사살이라고 얘기했지만 문자언어가 영상언어로 치환되면서 감정의 밀도는 책에 미치지 못하고 양 방향의 색감이 주는 농도 역시 묽다.

두 사람 사이의 그 미묘한, 꼬집어낼 수 없는 감정의 편린들을 씨줄과 날줄로 기워내는 솜씨 또한 성기다. 원작을 일부 각색한데다 원작과 달리 두 사람의 감정 흐름에 대한 묘사력도 떨어진다. 관객들이 원작을 이미 읽었으리란 판단 하에 영화의 내러티브가 일부 진행된다는 느낌도 역력하다.

그럼에도 미덕을 얘기하고자 함은 그 영상을 통해 ‘10년의 약속’을 확인했고 스크린에서 그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숱한 영화들이 원작을 따르지 못한데 따른 비난의 화살을 맞았고 앞으로도 그러겠지만 왠지 이 영화의 풍경은 남달랐다.

소설 속 활자가 눈앞에서 영상으로 펼쳐질 때, 사소하지만 사랑을 잇는 그 약속이 꿈결 같은 목소리로 관통할 때, 사랑하는 사람들의 두오모, 피렌체의 두오모가 눈앞에 펼쳐질 때… 사랑과 약속의 방정식이 머리(이성)와 가슴(감성)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

약속, 그 사랑을 테스트하는 리트머스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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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렌스의 대성당(주. 책은 피렌체의 두오모라고 쓴다. 책을 먼저 읽어서인지 나는 ‘피렌체의 두오모’가 더 좋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성지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곳. 나와 함께 가 줄 거지?”... “언제?”...“십 년 후 생일날”... “약속해 줄 거지?”... “그래 약속해”

아오이(진혜림)와 쥰세이(타케노우치 유타카)는 속삭이듯 약속을 한다. 마치 꿈속에서 주고받은 듯한 그런 약속. 2001년 5월 25일은 순식간에 그렇게 고정된 미래가 됐다. 약속은 어쩌면 사랑을 테스트하는 리트머스 종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약속은 세월 속에 일단 잠수한다. 여느 연인들의 통관의례와도 같은 헤어짐. 오해에서 비롯된 골을 감당하기 힘들어서였을까, 그들은 어느덧 끈을 놓은 채 머나먼 이태리에서 각자의 길을 가꾸고 있다.

사실 쥰세이의 가슴속엔 잊을 수 없는 별이 있다. 아오이라는 별(★). 인간이란 잊으려하면 할수록 잊지 못하는 존재임을 증명하듯 그의 가슴 깊은 곳에 약속이 살아 숨쉬고 있다.

특히 그는 ‘회화 복원사’다. 이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가 소리 채집가였듯, 쥰세이가 세월에 희석된 명화들을 원상태에 가깝도록 복원하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은 분명 끈을 놓쳐버린 사랑과 연관이 있다. 잃어버린 생명을 되살리는 작업, 잃어버린 시간을 돌이키는 세계에서 유일한 직업. 쥰세이가 복원할 것은 치골리나 프란체스코 코사의 작품만이 아니다. 자신안의 르네상스는 물론, 아오이와의 사랑도 복원해야 한다.

아오이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흔이 있다.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던 나날, 그 문을 우산으로 살며시 열어젖혔던 쥰세이, 태어나서 처음 사랑의 고백을 했던 그 사람과 헤어졌다. 혼자 있는 것에 냉정해질 수 있는 듯 강해 보였으나 사람을 그리워했던 아오이. 그녀에게 쥰세이는 영원히 함께 할 줄로만 알았다.

그녀는 ‘보석 세공사’다. 갈고 닦고 아름답게 광채를 내보이는 보석. 아오이는 모진 바람과 풍파를 이기고 보석처럼 영롱하게끔 사랑을 세공해야 한다.

그들에겐 스무 살, 영원히 함께할 것이란 풋풋하고 알싸한 사랑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한 세기를 건너뛰어 서른 살, 약속의 시간은 닥쳐오고 새로운 시작이 요구된다. 그들의 삶은 10년의 약속을 위해, 그 순간만을 위해 8년의 기다림을 담보로 했기 때문이다.

고정된 미래는 어떤 삶을 규정하기도 한다. 어떤 세월의 질곡이 있든, 오해가 있든, 사랑하는 연인들의 약속과 실행은 누군가에게 삶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 열정으로 기다리든, 냉정하게 내치든, 그 선택 또한 약속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약속의 전개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다. 음모도 있고 오해가 자기증식을 했으며 산산 조각난 접시의 이빨은 다른 아교풀로 접지돼 있다. 쥰세이 곁에는 메미가, 아오이의 곁에는 마빈이 있다. 예전처럼 복원할 수 없는 시간의 간극이 존재하고 있었다. 세월은 그렇듯 절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쥰세이가 시간이 멈춰버린 피렌체를 택하고 복원사의 길을 걷는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니다.

한편 극중에서 피렌체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두오모를 중심으로 올망졸망 엇비슷한 키 재기로 과거를 품고 있는 도시. 퐁테베키오 다리, 팔라티나 미술관, 산타마리아노베라 역, 아르노 강 등은 사랑이 있는 풍경을 더욱 빛나게 한다. 밀라노와 도쿄까지 삼각 체제로 오가는 로망이 피렌체에서 사랑을 일차로 복원하고 과거와 현대가 교차하는 밀라노에서 결실을 맺는 설정 또한 다분히 시공간의 방정식을 풀이한 결과다.
 
세월도 깎아내지 못한 옛사랑과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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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약속은 ‘기적’이란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약속은 그런 기적을 이야기한다. 10년의 세월과 8년의 그리움을 건너뛴 약속, 그리고 해후. 추억이 아니라면 그 약속은 유효하다. 21세기는 결국 왔다. 세월은 결국 그들의 사랑에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도쿄의 교정에서의 첫 키스를 담은 첼로리스트의 선율은 세기를 건너 피렌체의 광장에서도 심정을 아스라하게 만든다.

사랑 자체가 어쩌면 약속이다. 약속은 그를 혹은 그녀를 사랑한다는 말로 대신한다. 하지만 대개 세월은 사랑의 복원을 어렵게 만듦을 사람들은 잘 안다. 그때 그 시절, 그 사랑했던 감정은 세월을 터널을 관통하는 동안 균질감을 보장하지 못한다.

유한한 삶의 영역에서 영원히 늙지도 않은 채로 한 사랑이 박제된다면 사랑은 영원할 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랑 자체가 변화를 꿈꾸는 건 아닐까... 그래서 약속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라고 되묻기도 하듯 말이다.

그런 면에서 <냉정과 열정 사이>는 일종의 판타지다. 두 사람의 손짓 인사는 약속의 실행을 시사한다. 스므살에서 서른까지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외줄을 타던 사랑의 행로는 일단 약속의 실행으로 인해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번만큼은 그 이후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더 이상 마흔살, 쉰살까지는 생각하기 싫었다. 그것으로 충분히 그들의 꿈결 같은 약속과 사랑의 방정식을 풀었으니까.

내 나이도 그들과 같은 서른이 됐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싸구려 향수에 취해 살고 있다. 내가 ‘싸구려’라고 표현한 것은 그 당시 내 영혼의 가난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가난함을 채워주었던 그 사람을 기억한다. 사랑했던 기억. 그리고 지키지 못했던 약속.

쥰세이가 말했다. “과거밖에 없는 인생도 있다. 잊을 수 없는 시간만을 소중히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 서글픈 일이라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다들 미래만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나는 과거를 그냥 물처럼 흘려보낼 수 없다”고. 북베트남 인민군 소년병 출신 바오닌의 소설 <전쟁의 슬픔> 중의 한 구절도 그렇게 얘기한다. “내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미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추억의 힘 때문이다”라고...

그럴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말들에 공감한다. 어떤 사람들에겐 결코 미래가 될 수 없는 추억이 생존의 욕망 근저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또 어떤 사람들에게 가을이 외롭거나 아픈 것은, 누가 옆에 ‘없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있어야 할 ‘그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듯, <냉정과 열정사이>는 불가능해진(혹은 그렇게 낙인찍힌) 사랑을 불러오고 싶은, 복원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연서다. 가을은 그런 연서를 읽기에 ‘딱’인 계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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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복원하고픈, 옛사랑이 있는가.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는가.
가슴 속에, 누군가 있는가.

혹은,
당신도, 누군가의 가슴 속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