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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기억의 저편

'상실의 시대'에 접한 무라카미 하루키

by 낭만_커피 2008.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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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 흩어진 추억의 조각을 직조하자면,


꽁꽁 묶인 채, 생각의 자유 외엔, 없었던 군대 시절. 사실 그 생각조차도, 고참이나 조직의 것으로 세뇌시키던 폭압이 지배하던 시절. 정말 웃긴 것 중의 하나는, 일병 5호봉이 될 때까지 끓인 물도 마시지 못하게 하고(화장실의 수돗물만 마시는 것을 허락하던), 책을 읽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에이, 설마, 진짜 그랬냐고, 그런 게 어딨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진짜 그땐 그랬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내가 군대라는 조직에 발을 디뎠을 땐 그랬다.

그리고, 그토록 열망하던 '일병 5호봉'을 넘어섰고. 책에 목말랐던 내가, 어느 날 휴가를 나가서, 누구에게 받은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선물을 받아 부대로 들고 온 책이, 《상실의 시대》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처음 만난 순간.

《상실의 시대》, 이 얼마나 가슴때리는 제목이더란 말이냐. 내 군대시절을 딱 맞게, 표현한 듯한 그 제목. 나는 《상실의 시대》에 펼쳐든 순간부터 빠졌고, 충격이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청춘의 소용돌이. 행간 곳곳에 배여있는 허무. 그럼에도 피끓는 청춘의 상열지사가 지배하는 정서. 너무 적나라해서 때론 당황스럽기도 했던 애정묘사.

거침없이 책을 읽어나갔고, 하루키는 내 군대시절의 필독서가 됐다. 비록 군대에 메인 몸인지라, 《상실의 시대》처럼 청춘의 욕망과 허무를 답습할 수는 없었지만, 정신만은 자유롭게 그들과 동행했었다. 내게, 상실의 시대는 군대 그 자체였으니까.

하루키는 그렇듯, 당시 내게 일종의 탈출구였고, 제대하고 나서까지 하루키의 책은 내게 'Must-read'였다. 《태엽감는 새》《댄스 댄스 댄스》《양을 쫓는 모험》《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등등 하루키 사랑이 몇년은 이어졌다. 어느 순간, 끊어지긴 했지만...

그리고, 상실의 시대에 잊지 못할 이 장면, '봄날의 곰'. 미도리를 향해, 건네는 애정의 표현이 아주 멋들어졌다. 뭐든, 얘기해달라는 미도리를 향해, "좋다"고 하면서, "봄날의 곰만큼 좋다"고 속삭이던 그 장면 말이다. 그 봄날의 곰을 설명하면서, 귀여운 새끼곰과 함께 뒹굴면서 하루종일 노니는 장면을 얘기하던 그 근사한 장면. 아, 그래서 나는 봄날의 곰이 무척 좋아졌다. ^.^

그래서, 배두나와 오광록 아저씨가 나왔던,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라는 영화까지 좋아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