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추워진 날씨 앞에 잔뜩 웅크린 봄.
봄비가 내린 하루. 손을 호호 불자 겨울이가 살짝 웃어준 봄의 스핀오프, 봄겨울.
지리산에서 서울로 순간이동 한 박남준 시인이 읊어준 두 편의 봄(?) 덕분에,
나의 봄(겨울)밤이 충만하였다.
역시, 詩가 흐르고, 노래가 휘감는, 더불어 커피 향까지 가미된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이 있을라고. 지랄 같은 행복.
그래, 봄비는 오고 지랄이야
뭐야 꽃비는 오고 지랄이야
늙은 소녀(?)팬들을 지랄 같이 몰고 다니는 박남준 시인,
살짝 부러웠도다.
그리고 꾹꾹 눌러담았다.
한마디로 인연이란 만나는 일이며,
기쁨과 고통,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고,
당신을 향한 사랑으로 물들어간다는 거룩한 뜻임을.
봄날은 갔네
봄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은 또 피고 지랄이야
이 환한 봄날이 못 견디겠다고
환장하겠다고
아내에게 아이들에게도 버림받고 홀로 사는
한 사내가 햇살 속에 주저앉아 중얼거린다
십리벚길이라던가 지리산 화개골짜기 쌍계사 가는 길
벚꽃이 피어 꽃 사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난 꽃들 먼저 왔으니 먼저 가는 가
이승을 건넌 꽃들이 바람에 나풀 날린다
꽃길을 걸으며 웅얼거려본다
뭐야 꽃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대궐이라더니
사람들과 뽕짝거리며 출렁이는 관광버스와
쩔그럭 짤그락 엿장수와 추억의 뻥튀기와 뻔데기와
동동주와 실연처럼 쓰디쓴
단숨에 병나발의 빈 소주병과
우리나라 사람들 참 부지런하기도 하다
그래그래 저렇게 꽃구경을 하겠다고
간밤을 설렜을 것이다
새벽차는 달렸을 것이다
연둣빛 왕버드나무 머리 감는 섬진강가 잔물결마저 눈부시구나
언젠가 이 강에 나와 하염없던 날이 있었다
흰빛과 분홍과 붉고 노란 봄날
잔인하구나
누가 나를 부르기는 하는 것이냐
p.s. <짝>을 보면서 새삼 느끼건데,
세상의 유일한 기적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는 것.
그만한 기적이 있을라고.
서유정과 맺어진 그 인상 좋은, 봄날의 곰 같은 남자 역시 살짝 부러웠다.
오늘 그 모든 것이,
순전히 지랄 같은 꽃비에 젖은 詩心 때문이다. ^^;;
초봄이 늦가을처럼 표정을 바꾼 것은,
오늘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지 10년 되는 날임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을 거다.
매서운 지랄 같은 봄추위를 통해 그것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을 거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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