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y Own Coffeestory/밤9시의 커피

[밤9시의 커피] 시월, 홉스봄의 혁명 레시피로 내린 커피 함께 마실래요?

by 낭만_커피 2012. 10. 3.

역사가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혁명은 혁명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수히 많은 말을 통해 그 성격을 알 수 있는 법이다. 그것은 입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문자가 있는 사회에서는 글을 아는 남녀가 써내는 수많은 글로 나타난다. - 에릭 홈스봄 -

 

 

오늘 볶는 커피는 아주 초큼은 특별해요.
매일 매일이 특별하지만, 오늘은 아주 초큼 더!

오늘, 그리고 한동안 밤9시의 커피를 찾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커피를 준비하고 있거든요. 뭣보다 '다른 세상'을 꿈꾸고 상상하는 사람과 나누고픈.

 

한 명민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혁명주의자의 타계 소식에서 비롯됐어요.
역시 그 덕에, 이 서늘한 바람이 어디서 불어온 것인지도 알아차렸죠.

 

그리고 자그맣게 혼잣말을 했어요.
아 그래, 시월이구나, 시월. 10월.

 

 

에릭 홉스봄이 타계했습니다. ㅠ.ㅠ
현지시각으로 10월1일. 어젯밤 들었습니다. 향년 95세.

그리곤 떠올렸죠. 타협하지 않는 마르크스주의자이자 탁월한 역사학자의 죽음이 시월에 놓였다는 사실. 그 사실이, 새삼 다가오네요.

 

홉스봄 영감, 1917년 태어났어요. 뭔가 살짝 꿈틀하죠?
맞아요. 러시아 10월혁명(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났던 해.

그리곤 10월 혁명을 죽는 그날까지 늘 가슴에 품고 산 남자.
"10월 혁명의 꿈은 여전히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다. 내버리고 거부했건만, 사라지지 않았다."

 

아… 이 미친 고해성사라니요!

 

그렇게 가슴에 콕 박힌 '혁명의 시대'를 죽을 때까지 내치지 않고,
성찰을 바탕으로 한 신념으로 평생을 지탱한 역사학자의 죽음이 시월이라는 사실. 그것에 자꾸 미련한 의미를 두게 됩니다.

 

어쩌면 혹시, 이 노친네!
죽을 날(日)까진 무리였어도 죽을 달(月)은 얄짤 없이 시월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무고한 혐의(?)까지 둡니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시월에 죽음을 맞은 또 하나의 혁명, 체 게바라(9일). 곧 다가올 그의 45주기.

 

또한 스물일곱의 요절로 이름을 박은,
전설의 뮤지션 3J 중의 한 명이자 혁명적 뮤지션, 재니스 조플린(4일). 그녀의 42주기.

 

시월은 그렇게 혁명의 달.
그러니, 저는 훅 끌리듯 '혁명'을 레시피로 한 커피를 볶습니다.
마성의 혁명커피. 에릭 홈스봄을 추모하면서 체 게바라와 재니스 조플린까지 블랜딩한.

 

로스팅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홉스봄 영감, 자서전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죠.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미완의 시대》)

 

85세의 나이 때,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며 여전히 세상의 불의에 맞설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노친네의 외침을 외면할 자신, 없습니다. 그는 같은 책에서 여전히 짱짱한 혁명가로서의 면모를 보였죠.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직도 이렇게 속삭이는 작은 유령이 있다. "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에서 마음 편히 지내서는 안 되지." 젊었을 때내가 그 글을 유심히 읽었던 사람도 비슷한 말을 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p.508)

 

세상을 바꾸고 싶은 혁명가들의 마음을 담은 커피.
그들의 마음이 마냥 강퍅하리라 오해하지 마세요.
세상을 바꾸기 위한 혁명적 마음이 얼마나 달달하고 알싸한지, 제 커피는 그것을 알려줄 거예요.

 

 

아, 마침 찾아온 우리 커피집 단골.
간혹 저와 또 다른 세상을 꿈꾸고 상상하는 그녀가 이심전심이었는지, 《혁명의 시대》를 들고 옵니다. 와우~ 이런 멋진 우연이!

 

그녀도 이미 알아챘을 거예요.
제가 오늘 어떤 커피를 만들어 제공할 것인지.
비록 9시가 되진 않았지만, 이심전심 그녀를 위해 '혁명의 시대 커피'를 1000원에 제공합니다.

 

우리 커피점 서재에 꽂힌 《혁명의 시대》에 눈길이 갑니다.
3분의 1도 채 읽지 않고 방치해놓고 있었던 《혁명의 시대》.
이 시월엔 다시 꺼내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그녀가 말합니다.

 

"우리 좀 통한다 그쵸?"

 

"하하. 절 너무 잘 아는 거 아니에요? 너무 많이 알면 조직의 후환이 있을 텐데~"

 

"피, 그 조직 하나도 안 무섭네. 사실 그동안 회사 일 핑계로 쌓아놓기만 한 책이 너무 많아요. 홉스봄 할아버지가 죽어서야 다시 꺼내는 게 미안하긴 한데, 이달의 테마는 정했어요. 먼지 털어내기! 《자본의 시대》《제국의 시대》《극단의 시대》 그리고 자서전인 《미완의 시대》까지 읽어보려고요. 그러면 '시대'를 관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와~ 다 읽고 얘기 좀 해줘요. 그말 듣고 커피 좀 만들어볼 테니까. 지연씨 말을 원재료로 블랜딩 해드릴 테니, 꼭이요."

 

"근데 아저씨, 요즘 마을공동체는 잘 돼 가요? 잘 돼야 할 텐데."

 

"뭐, 그저 그래요. 쉽지만은 않네요. 관료주의라는 괴물이 삼키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고."

 

"그럴 거예요. 공동체, 지금 꼭 소멸된 단어 같아서 요즘 사람들 쉽게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한편, 너무 무분별하게 남발돼서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홉스봄이 이런 신랄한 말도 했어요. "사회학적 의미에서 공동체들이 실재의 삶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된 최근 수십 년 동안처럼 '공동체'라는 단어가 무분별하고도 공허하게 남발된 것도 없을 것이다." 마을공동체도 무분별하고 공허하게 남발되는 공동체의 하나가 아니도록 끊임없이 성찰하는 신념이 필요할 거예요. 그런 면에서 홉스봄은 마을공동체에도 영감을 줄 것 같네요."

 

"이런 이런, 나보다 더 많이 마을공동체를 안다니까. 너무한 거 아니에요? 하하. 별별 일에 관심도 많고. 오늘은, 재즈 어때요?"

 

"짜잔, 그렇지 않아도 빌리 홀리데이 앨범 갖고 왔어요."

 

"야~~ 진짜, 졌다, 졌어.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라니까. 오늘 안 왔으면 섭섭할 뻔 했어요. 진짜."

 

"나 이래봬도 센스 짱이라니까요. 그래서 홉스봄이 마르크스와 혁명만큼 좋아했던 재즈도 당연히 준비했죠. 하늘에서도 들으라고 이렇게 짜잔~"

"맞아. 그러고 보니, 시월은 역시 재즈의 계절이네요. 홉스봄이 시월에 생을 마감한 이유가 마땅히 있다니까. 하하."

"혹시 읽어봤어요?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Jazz Scene)》?"

"아뇨. 아직은."

 

"홈스봄 영감, 재즈광이라서 프랜시스 뉴턴이라는 필명으로 이 책을 냈어요. 역사에 대해서라면 불편부당한 자세를 꼿꼿이 유지했던 영감도 재즈 앞에선 어쩔 수 없었나 봐요. 흐물흐물해진다니까요. 되게 주관적이고 격정적으로 재즈에 대해서 아낌없는 헌사를 바치거든요. 물론 그것도 그의 말을 들어보면 이유가 있어요. "재즈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근간을 두면서도 주류 예술로 성정한 아주 드문 사례다." 아마, 더 오래 살았다면, '재즈의 시대'라는 책도 냈을지 모르죠. 호호."

 

그리하여 그녀가 들고 온,
홈스봄이 추도사까지 쓰면서 격하게 아꼈던 빌리 홀리데이의 선율을 BGM으로 깝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시월의 가을밤, 빌리데이의 선율이 온 몸을 감쌉니다.
비록 먼저 저 세상으로 가서 홉스봄으로부터 추도사를 받기도 했던, 빌리 홀리데이지만, 지금은 홉스봄을 위해 이런 노래를 불러줄 것 같아요.

<The Man I Love> <I Cried for You>.


"아저씨, 다음주,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에 가요?"

 

"가야죠. 시월이잖아요. 그리고, 혁명의 계절이니까. 홉스봄도 없고, 체 게바라도 없고, '대가의 시대'가 소멸되고 있는 있는 마당에 재즈라도 있어야죠. 하하. 깊은 슬픔이 담긴 재즈 같은 거. 혁명처럼 지독하며 진하고 슬픈 커피와 함께라면, 이 서늘한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도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오늘 밤, 밤9시의 커피를 찾는 사람들에겐 '혁명의 시대 커피'와 함께 이 말이 적힌 쪽지를 살짝 건네야겠습니다. 홈스봄이 손자들에게 전한 유언 같은 한 마디.
"호기심을 가지거라. 호기심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이거든."

 

작년에 나왔으나 한국엔 아직 번역되지 않은 홈스봄의 저서 《어떻게 세상을 바꿀 것인가(How to Change the World)》가 얼른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영감의 이런저런 말씀이 오늘, 밤9시의 커피에선 반짝반짝 빛납니다.

 

물론 내가 받아들인 대의가 실패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어쩌면 공산주의를 선택하지 말아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이상을 품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인류를 위한 유일한 이상이 물질적 풍요를 통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인류는 언젠가 멸종하고 말 것이다.

 

미래는 더욱 낫고, 더욱 정의로우며, 더욱 활력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다.

 

자유와 정의라는 이상 없이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굿바이, 홈스봄 할아버지!
당신의 죽음으로 '대가의 시대'도 거의 종결되어가는 것 같네요.
이 서늘한 바람이 어디서 불어온 것인지, 당신 덕분에 알았습니다.
그런데 궁금해요. 그 바람결에 묻은 슬픔, 혹시 혁명이 흘린 것일까요?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