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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Own Coffeestory/밤9시의 커피

[밤9시의 커피] 천상의 목소리가 공명하는 지중해 커피, BC커피

by 낭만_커피 2012. 9. 16.

 

"나는 첫 잔을 마신 후 도취 상태에 빠져 있는 이때를 줄여서 "BC(Blissfully Caffeinated, 더 없이 행복할 정도로 카페인에 취한)"라고 부른다. 이때가 되면 거미줄이 걷히고 정상 상태인 행복하고 긍정적인 나의 페르소나로 회망이 돌아온다."

-샤나 맥린 무어

 

이 마을에 축제가 있을 때마다 등장하는 우리마을 음악가가 있다.

직업이 뮤지션, 아니다. 말하자면 '그냥 회사원'인 그녀, 음악이 그녀의 일상을 살게 하는 것 같다.

노래(보컬)도 곧잘 하고, 오카리나도 곧잘 부른다.

그녀가 속한 우리 마을 밴드의 이름은 '어루만지다 음악대'.

그들의 음악으로 우리네 마음을 달래도 주고, 어루만지면서 힐링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란다.

'어루만지다 음악대'는 어쩌다 꽂히면, 우리 커피하우스에서도 간혹 공연을 한다.

 

그녀는 수시로 좋은 음악이 있으면 들어보라고 CD를 들고 온다.

오늘은 아침부터 찾아왔다.

 

"아저씨~ 이거 틀어주세요."

 

"뭐에요?"

 

"마리아 칼라스! 아시죠?"

 

"응, 디바. B.C. 알아요. 비포 마리아칼라스. 칼라스 이전의 오페라와 이후의 오페라. 근데, 오늘 무슨 날이에요?"

 

"히히, 마리아 칼라스가 죽은 날이에요. 그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요."

 

35주기란다.

그래서 우리 커피하우스의 오늘의 음악은, 마리아 칼라스.

 

그렇다. 진짜 디바. 세상에 더 없을 목소리.

태풍 올라온다고 비도 올락말락. 흐린 날의 가을. 칼라스의 음성은 제격이다.

 

"이 목소리, 도대체 대체할 수가 없어요. 그쵸? 아저씨? 칼라스를 알고 들으면 다른 오페라 가수들의 목소리가 시시해져요."

 

"그래도, 파바로티도 있잖아요."

 

"아, 인정. 파바로티까지는 인정. 그런데 그 이후가 없어요. 칼라스-파바로티-그런데 다음이 없는 게 우리의 비극 같애요. 슬퍼."

 

"우리 예쁜 안젤라 게오르규는 어때요?"

 

"에이, 아저씨. 수컷 티 낸다. 호호. 게오르규가 '제2의 칼라스'라는 소리도 듣고, 칼라스 오마주 앨범도 냈지만, 칼라스한테는 안 돼요. 도저히 넘어설 수가 없어요. 그 목소리, 나쁘진 않지만, 칼라스를 잇기엔 너무 약해."

 

그런 것도 같다. 칼라스를 누가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궁금한 것도 있다.

 

게오르규는 칼라스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일까, 여전히 넘고 싶을까?

무언가를 넘어설 수 없다는 '숙명'이 주는 감상은, 좌절일까? 안도일까?

 

나는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는데,

진짜 디바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몸에 전율이 살짝 흐른다.

신이 내린 목소리, 맞다. 인류의 축복이다. 이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제가 오늘의 음악 가져왔으니 어떤 커피 주실래요?"

 

때론 당돌한 그녀의 요구. 거절할 수가 없다.

또한 당연히 그래야 한다. 오늘의 커피는 BC. 마리아 칼라스를 그리는 커피.

 

그리스 이주민의 딸이었던 그녀였던 만큼,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의 이상한 사랑도 감안한다면,

지중해가 낳은 커피를 내린다.

 

아마, 그녀도 지중해를 그리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오늘 이곳을 찾는 사람들, 마리아 칼라스의 음색을 들으며 지중해를 떠올릴 테니까.

 

"자, 기다리시라. 오늘의 커피는 BC(비포 칼라스)입니다."

 

참, 커피를 내리는 시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나온다.

처음 칼라스를 접했던, <필라델피아>에 삽입된.

AIDS에 대한 편견과 무지를 깨게끔 만들어줬던 아주 좋은 영화였다.

베스트 씬이라 해도 무방한 장면, 칼라스의 'La Mamma Motar(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오페라 <Andrea Chénier(안드레아 셰니에)>의 3막에 나오는 곡이다.

 

아, 눈물이 찔끔한다. 커피에 이 눈물이 섞이면 무슨 맛일까, 미친 호기심.

몇 번을 다시 보고 또 봐도 눈물이 찔끔거리는 음악과 연기의 미친 앙상블이 떠오른다.

칼라스의 음성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불가능했을 놀라운 장면.

(물론 톰 행크스의 연기 또한 마찬가지!)

 

참, 연세대 주변 서대문 우체국 부근, '마리아 칼라스'라는 카페가 있다.

한때, 물론 오래 전, 나의 소개팅이 있던 그곳.

소개팅 그녀, 예뻤다는 외엔 얼굴은 전혀 기억나질 않고.

연인과 함께라면 참 예쁘고 좋은 곳, 추천!


또, 삼성역 부근 '카페M'이라는 대웅제약이 운영하는 와인 바의 지하,

'마리아 칼라스'라는 작은 공연장(홀)이 있다. 음향이 꽤 괜찮다.

역시 연인 혹은 친구와 와인으로 기분 내고 싶다면, 역시 추천!


아울러, 서울 모처엔 마리아 칼라스 모텔도 있다. 여긴 안 가봐서 함부로 추천 않겠지만.ㅋ

모텔 룸에는 칼라스의 음악이 흘러나올까, 약간 궁금하긴 하지만.ㅋㅋ

아래는, 마리아 칼라스에 대한 기고문.

밤9시의 커피에서 'BC 커피'를 주문하기 전에 예습할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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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비천한 속물에게 주어진 천상의 목소리

가을, 마리아 칼라스를 듣는 이유

 

1950년대 오페라를 주름잡았던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Giuseppe Di Stefano, 2008년 별세). 그의 오페라 단짝은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였다. 두 사람은 1951년 처음 오페라를 함께 했다. 이후 무대에 자주 함께 올랐다. 레코딩 또한 함께였다. 그들의 파트너십은 훌륭했다. 음악적으로도 그랬고, 오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공연 하나하나, 기념비적인 업적이자 전설이었다. EMI에서 남긴 전곡 레코딩은 아직 필적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전성기, 10여 년으로 길지 않았다.

 

그리고 1977년, 마리아 칼라스가 죽었다. 스테파노는 그녀를 이렇게 추억했다. “칼라스는 노래를 잘하는 여자였지, 노래에 딸린 여자는 아니었다. 사랑과 성공의 인생을 살다 그걸 잃고는 세상을 떠난 것이다.”

 

오페라 계, ‘BC(Before Callas)’라는 말(프랑코 제페렐리)을 만들게 한 사람, 칼라스 이전과 이후로 오페라를 나눈 사람, 오페라의 새로운 시대를 연 사람도 사랑이 죽자 결국 무너졌다.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 마리아 칼라스(1923.12.2 ~ 1977.9.16)였다.

 

벨 칸토 오페라를 다시 수확한 디바

 

벨 칸토(Bel canto). 이탈리아어다. 액면은 아름다운(Bel) 노래(canto). ‘아름답게 부르는 창법’을 뜻하기도 한다. 18~19세기 이탈리아 낭만주의 오페라양식이다. 벨 칸토로 노래한다는 것은 극찬에 가깝다. 고도의 훈련으로 갈고 닦은 기교로 전체 성역(聲域)에 걸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든 성악도가 연구와 훈련을 통해 달성하고픈 창법일 것이다. 롯시니의 오페라에서 특히 강조된 창법이기도 하다.

 

여기에 가장 잘 들어맞는 소프라노가 마리아 칼라스였다. 1858년 롯시니는 벨 칸토 가수의 조건으로 내세운 바 있다. ‘전체 성역에 걸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목소리’와 ‘노력 없이도 화려하게 부를 수 있도록 훈련된 목소리’가 그것이었다. 칼라스의 목소리는 금속성을 띠고 있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타고난 음색과 기교로 벨 칸토 오페라를 되살렸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칼라스만의 것이었다. 탁월한 표현력과 호소력 앞에 벨 칸토 오페라는 대중들과 다시 교합했다. 칼라스였기에 수확 가능한 것이었다.

 

디바(DIVA). 여신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오페라에서 천부적 자질이 뛰어난 소프라노 가수를 뜻하는 이 말에 가장 부합한 사람이라면, 닥치고 칼라스. 일부 팝 가수 등에도 붙여주지만, 자타 공인 칼라스의 아성에 도전하는 것은 언감생심. 그녀 이전, 레나타 테발디가 있었다.

 

칼라스는 사실 그녀의 대역이었다. ‘라스칼라의 여왕’ 테발디, 1950년 <아이다>공연을 앞두고 쓰러졌다. 대타로 나선 무명의 칼라스, 테발디에게 없는 목소리로 청중을 압도했다. 객석은 놀랐고, 오페라 계는 일대 지각변동이 일었다. 1인자의 뒤바뀜. 여태껏 소프라노 역사상 모든 영역을 넘어 메조소프라노 역까지 소화할 수 있는 가수는 오직 칼라스다. 진정한 디바는 아직 바뀌지 않았다. 그녀의 노래 앞에선 복종을 맹세할 수밖에 없다. 여신의 노래를 듣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

 

우리의 귀가, 마음이 원하기 때문이다.

 

열등감 덩어리의 뜨거운 속물근성

 

 

허나 칼라스, 디바의 ‘품격’까지 갖추진 않았다. 스캔들 메이커, 트러블 메이커라는 표현, 그녀를 설명하기엔 역부족. 천상의 목소리, 타고났다. 엄청난 노력도 따랐다. 그러나 디바는 모든 것을 갖추진 않았다. 아니, 갖출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생활은 울퉁불퉁했고, 일상은 난폭하고 끊임없이 흔들렸다. 천상의 목소리와 천하의 속물 사이, 칼라스가 있었다.

 

그녀, 콤플렉스 덩어리였다. 20대 중반까지 그녀는 굼뜨고 못생긴 뚱보였다. 심한 근시도 있었다. 가정환경도 불우했다. 소녀가장의 중압감을 일찌감치 짊어졌다. 학교와 가정 모두에서 사랑받지 못했다. 디바,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고한다. “뚱뚱하고 어수룩했으며 귀엽지도 않았던 나는 가족들 사이에서 미운 오리새끼였다.” 욕심 많은 어머니와는 평생에 걸쳐 공개적인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칼라스, 성공에 대한 근성이 남달랐다. 성악가로 성공가도를 달리자, 그녀는 엄청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30㎏ 이상을 뺐다. 그녀를 보는 세상의 시선이 180도 바뀌었다. 최고의 미인이라는 칭송이 쏟아졌다. 미운 오리 새끼에서 우아한 백조로의 변신. 외양만 그러했다. 안은 바뀌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녀는 세상을 비웃었다. 세상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졌다. 속물들의 세상, 그녀는 스스로를 더욱 그 속에 함몰시켰다. 스스로를 삶의 주인이 아닌 ‘바깥에서 지켜보는 증인’으로 규정한 것에서도 그것을 엿볼 수 있다.

 

그녀는 대체로 나빴다. 음악을 빼곤 장점을 찾아보기 힘든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진흙탕 싸움을 거듭하며 불화했다. 변덕은 죽 끓듯 심했고, 시기심과 질투도 남달랐다. 탐욕이 지배했고, 잘못은 늘 남 탓이었다. 남을 무시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물론, 그것에 이유도 있고, 사연도 있지만, 칼라스는 자신을 난폭하게 내몰았다. 공연과 세간의 눈초리에 따라 고무줄 늘리듯 행했던 초인적인 다이어트, 은둔하면서 보낸 만년, 홀로 쓸쓸히 세상을 등진 최후 등 그의 생의 가지들은 어떤 오페라보다, 극적이며, 그의 목소리가 방출한 어떤 노래보다 풍성하고 구불구불했다. 성공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속물. 그것이 틀린 표현은 아니다.

 

특히, 사랑.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았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세기의 스캔들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세간의 입방아를 몰고 다녔다. 30년 가까운 나이차에도 불구, 사랑에 빠졌던 사업가 메네기니(그는 엄청난 수전노였다!)와의 결혼과 이혼,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클린 케네디와의 삼각관계. 메네기니를 버리고 음악을 멀리하면서까지 오나시스에 빠졌던 칼라스였다. 사랑을 찾아 여자로서 행복을 찾아갔으나, 칼라스의 음악을 잃은 관객은 불행했을지 모르겠다.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오나시스와 재키가 붙었다. 그녀, 우울증에 시달렸다. 목소리에 금이 갔고, 유산을 겪었으며, 자살 기도까지 이어졌다. 예술은 힘을 잃어갔고 여인은 생의 윤기를 잃었다. 다만 어설픈 위안이라면, 오나시스는 죽기 전 “진정한 연인은 칼라스였다”고 말했다는 것? 한편, 진정한 연인이라고 일컬었던 여인을 지키지 못한 남자는 얼마나 지질한가. 디바에게도 사랑이 모든 것이었나 보다. 사랑을 따르다가 음악이 망가졌고, 음악을 다시 찾으려 했지만, 사랑이 죽자 그녀도 죽었다. 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닌 것, 맞다.

 

디바를 둘러싼 스캔들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여신에게 도덕률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 제우스의 못 말리는 바람기를 봐도 말이다. 누구도 그녀를 대신할 수 없다. 전성기,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선 티켓 전쟁은 물론 교통 전쟁까지 겪어야했다. 칼라스가 파리 관광 중, 가방을 잃어버리자 비행기가 출발을 늦추고 기다렸다는 일화도 그녀의 존재감을 증명한다. 헤밍웨이는 칼라스에게 ‘황금빛 목소리를 가진 태풍’이라는 레떼르를 선사했다.

 

올해 마리아 칼라스의 35주기. 가을에는 그녀의 노래를 수확해도 좋으리라. 칼라스도 없고, 파바로티도 없는 오페라, 허약해졌다. 안젤라 게오르규? 칼라스에게 오마주를 바친들, 칼라스의 아우라엔 역부족이다. 두 사람을 이을 누군가를 아직 발굴하지 못했다.

 

새로운 디바를 수확하고픈 계절, 그게 힘들다면 칼라스(의 노래)를 계속 수확하는 수밖에. <필라델피아>를 꺼내든다. AIDS에 걸린 변호사 앤드류(톰 행크스)와 그의 복직투쟁을 변호하는 조(덴젤 워싱턴)가 교감하는 장면에서 나오던 아리아. 칼라스의 음색이다. ‘La Mamma Motar(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오페라 <Andrea Chénier(안드레아 셰니에)>의 3막에 나오는 곡이다.

 

그래, 지금은 라디오나 TV 등을 통해 5년여를 들었던 훈계조의 쇳소리에 오염된 귀를 깨끗이 씻어야 할 때다. 마리아 칼라스를 권한다.

 

(※ 참고 : 『마리아 칼라스 : 내밀한 열정의 고백』(앤 에드워드 지음|김선형 역 / 해냄 펴냄), 위키백과, 브리태니커백과, 필름2.0)

 

[뷰즈 기고]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