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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 쭌/무비일락

‘상상화(華)’가 피었습니다

by 낭만_커피 2009. 4. 9.

‘상상화(華)’가 피었습니다

[상상마당 지원 상상메이킹 시사회 현장스케치]



‘상상화’가 공개됐다. 상상마당이 1000만원 상당의 제작비를 지원,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 상상마당의 단편 야심작들이 공개됐다. 1년여의 시간을 거쳐 마무리된 ‘2008 상상메이킹 제작프로그램’ 가운데 극영화 부문에 선정된 5편의 작품이 2월25일 상상마당에서 시사회를 가졌다. 그 시사회 현장을 담아본다.


■ 영화 ‘고래를 본 날’

<고래를 본 날>(권오광 감독)은 새 아빠를 맞이하는 소년, 준호와 그를 떠나보내야 하는 친구, 영광의 마음을 다룬다. 할머니와 함께 시골에서 사는 준호는, 내일 다시 서울로 간다. 친구 영광과도 이별이다. 영광에게는 미국 출장 간 아빠가 귀국해서 다시 돌아간다고 빡빡 우긴다.


물론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영광도 그걸 안다. 준호 앞에서 그걸 말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은 그런 내일은 없는 양, 오늘 하루를 즐긴다. 투닥투닥 다투기도 하고, 함께 뛰논다. 영광도 영광 나름대로 ‘아빠 콤플렉스’가 있다. 늘 술에 절어 사는 아빠. 준호와 놀다 돌아온 집 마당엔 술 취한 아빠가 쓰러져 있다. 그런 아빠를 힘껏 차는 등, 영광은 현실이 싫다.


약속했던 것처럼, 두 아이는 쓰러져가는 정미소를 찾는다. 그곳엔 본드를 마시고 취해 있는 아이들의 아지트다. 처음엔 마시고 싶지 않았던 준호는 영광의 ‘천천히 깊게, 딱, 세 번’ 재촉에 본드를 마신다. 준호는, 고래를 본 것일까. 환각상태에서 준호는 새 아빠를 만나고 결국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


아이들은 그렇게 자란다. 아빠가 있거나 없거나, 그들에겐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고래를 본 날>은 거칠게 훑고 지나가버리지만, 결코 잊지 못할 아이들의 성장잔혹사를 다룬 서늘한 보고서다. 한편으로 하염없이 맑은 하늘과 푸름 속에 어우러진 두 소년의 우정은, 꼭 어린이판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는 마냥, 눈시울을 들뜨게 한다.



■ 영화 ‘경북 문경으로 시작하는 짧은 주소’

이어진 <경북 문경으로 시작하는 짧은 주소>(이하 <경북 문경…>, 이경원 감독)도 시골이 배경이다.


이번에는 그곳을 떠나는 ‘소녀’의 성장사다. ‘마원3리’라는 푯말 아래 할머니의 뒷모습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은아가 문경을 떠나기까지의 소소한 갈등과 아픔을 그리고 있다.


은아는 그림을 제대로 배우고 그리고 싶다. 집중하는 거 몇 안 되는 것 중의 하나가 그림이다. 그렇다고 문경을 굳이 떠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은아를 붙잡아주지 않는다. 은아가 좋아하는 남자친구는 “갈 때 되면 가야지”라며 시큰둥하고, “내 가면 안 서운하겠나” 물어봐도 “서운한 건 지나봐야 알겠지”라는 썰렁한 대답 일색이다. 아버지도 매한가지다. 은아 주변의 남자들은 그렇게 무심하다. 속은 그렇지 않다고 항변할지 몰라도.  


그나마 은아가 애살을 부릴 수 있는 대상은, 할매와 고모다. 할매한테 담배를 배우고, 고모한테는 술을 배운다. 아빠한테는 말 못해도, 고모한테는 말할 수 있다. 그런 은아에게 갑자기 할매의 죽음이 닥친다. 그림 공부 때문에 도시로 잠시 올라간 새였다. 아침에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갔건만, 할매는 이미 죽은 뒤였다. 가고 싶은 곳을 적으라는 동생의 재촉에 제주의 어떤 마을 주소를 적으며 고향으로 가고 싶어 했던 할매.


<경북 문경…>은 그렇게 떠난 사람의 풍경 뒤에 남은 어떤 여운을 보여준다. 집 떠나며 밥을 먹기 위해 길을 걷던 은아는 길에서 담배를 피던 할머니를 보고 갑자기 자신의 할매가 떠올라 주저앉아 운다.


그리고 떠나는 사람과 흘러 들어오는 사람. 버스를 타고 떠나려는 은아에게 한 남자는 ‘경북 문경으로 시작하는 짧은 주소’를 들이민다. 그는 아마도 문경에 정착하려나보다. 누군가에겐 추억을 남기고 떠난 곳이, 다른 누군가에겐 새로운 추억을 잉태하는 곳이 되리라. 당신이 가고 싶은 곳은 어디입니까. 나는 마음 속에 ‘OOO’로 시작하는 짧은 주소를 적었다.



■ 영화 ‘경적’

<경적>(임경동 감독)은 최근의 남북관계 긴장보다 더욱 팽팽한 긴장(?)을 선사하는 이야기다. 탈북자를 감시하고 일을 처리하는 남한의 고형사는 강 근처에서 차를 발견한다. 탈북자(새터민)의 차인데, 사람은 없고 덜렁 차만 있다. 경적을 눌러도 울리지 않는 차는, 어쩐지 찍소리 내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눌려 살아가는 탈북자 모습 같기도 하다.


고 형사는 차주와 아는 사이인 듯한 철민을 부르고, 또 한명의 탈북자인 보험담당원 영림도 조사차 그곳을 들른다. 세 사람 사이의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고 형사는 순간순간 눈을 번뜩이며 그들의 행동을 살피고. 두 사람은 메모인지, 유서인지 모를 쪽지를 보고 표정이 좋지 않다.


그리고 차를 끌고 돌아가는 길. 운전대를 잡고 있던 철민이 경적을 눌렀는데 이번엔 소리가 난다. 문제는 그 경적이 손을 떼도 울고 있다. 길 한 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경적. 그것은 어쩌면 늘 경적이 울린 채 남한의 감시를 받아야 하는 탈북자들의 모습을 빗댄 것일까. 경적을 울려대며, 겉으론 같은 민족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행동은 그들을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취급하는 남한의 이중성? 



■ 영화 ‘불안의 최전방’

가장 엉뚱하면서도 불안(?)한 영화가 <불안의 최전방>(정미나 감독)이다. 뭔가 ‘정상성’에서 약간은 벗어난 듯한 등장인물들은 군대와 가족을 가지고 논다. 하나의 유희 같은 시각으로 다루는 품새가 예사롭지 않다.


“나는 가끔씩 불안하다”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불안의 방정식이다. 현수와 배준이 그렇고, 현수와 아빠가 그러하다. 엉성하기 그지없는 이 커플, 현수와 배준은 방에서도 함부로 ‘허튼 짓’(?)을 않는다. 언니가 올까봐 불안하고, 옷장에 숨어들어가서 결국 들키게 되는 것이 불안하다. 그래서 차라리 안전하게 집에 가는 것을 택하는 배준이 날리는 뜬금없는 이 한마디. “나 살 빼는 거 잘 돼서 군대 안 가면 너랑 결혼할래.”


거기에 또 어릴 적 자매를 버리고 간 아버지가 등장한다. 언니는 어느 날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유기의 기억 때문에 언니는 아버지를 용납하지 않는다. 장례비용을 낼 수는 있지만 돌볼 수는 없다는 것. 결국 현수는 단독으로 아버지를 만나러 가서 엉뚱한 곳에서 아버지를 만나 자신을 숨긴 채 대면하게 된다.


그런데 이 아버지라는 양반, 재미나다. 현수가 자신의 딸인지 모른 채, 그는 자신을 감추지 않고 곧이곧대로 드러낸다. 가족을 싫어하고 애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왜 가족들에게서 도망갔냐는 현수 물음에, 너무 도망가고 싶었단다. 부담돼서 도망을 갔단다. 현수는 그 아버지와 다시는 만나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남자친구는 결국 3급을 받아 입대를 하는데, 마음속으로 결혼을 했다고 우기는 남자친구. 군대를 보내주고 오는 길. 나는 현수가 불안의 최전방에서 되레 벗어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와 남자친구. 어쩌면 현수의 불안을 야기했던 존재들은 그들이 아니었을까.


■ 영화 ‘아들의 여자’

쇳소리를 뚫고 “돈이 필요해요…. 돈이 필요하다고요!”라고 외치는 교복 입은 소녀의 외침이 예사롭지 않다. <아들의 여자>(홍성훈 감독)는 그렇게 시작한다. 뭔가 일이 벌어졌군, 하고 생각할 찰나, 역시나 소녀의 입을 통해 사연이 공개된다. 사고뭉치 아들, 지금은 군대가 있는 아들이 임신을 시켰단다. 그래서 낙태할 돈을 달라고 시위를 벌이는 거다. 애만 떼면 귀찮게 안 하겠다는 맹랑한 아이. 집 앞에 시뻘건 애가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며 당당한 아이.


그런데, 이 아저씨. 별로 놀란 기색도 아니다. 소녀를 데리고 돈을 뽑으러 가고, 병원을 간다. 중간에 소녀는 도망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두 사람은 팽팽하다. 소녀는 당돌하고, 아저씨는 냉정하다. 뱃속의 아이는 그저, 그 둘을 연결시키는 매개일 뿐, 두 사람 모두에게 소중히 다뤄지는 것 같지도 않다.


과연,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그 하루는 그저 해프닝으로 끝나버릴 하루일까. 그렇지 않다. 낙태를 둘러싸고 두 사람은 충돌하고, 아버지는 사고뭉치 아들 때문에 뭉쳤던 울분을 터트리고, 소녀 또한 제 몸 하나 추스르지 못하고 그렇게 생명을 지워야 하는 현실이 버겁다. 자신의 아들과 알고 지내봐야 득 될 게 없다고 단단히 충고하는 아버지, 내가 내 애 떼겠다는데 왜 지랄들이냐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대는 소녀.


그 하루는, 그냥 보통의 하루가 아니다. 어쩌면 가장 보통의 하루를 보내고 싶었을 그들에게, 그 하루는 심장에 박혔다.



그렇게 다섯 편의 단편이 상영된 2월25일의 상상마당. 영화 상영이 끝난 뒤, 김태용 심사위원장을 비롯, 심사위원 4명은 하나 같이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각자의 품평을 남겼다. “재미있게 봤다”는 무난한 평부터 “고생한 만큼 좋은 영화들이 나왔다”는 칭찬,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달성되길 바란다”는 기대, “어떤 작품은 짧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어떤 작품은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는 촌철살인의 평을 남기기도 했다.


각자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감독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아마도, 그들 누구도 만족하진 않았으리라. 혹자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지도. 그것이 거개의 초짜 감독들이 가지는 심정 아니던가. 아니 베테랑이라도 마찬가지일까? 어쨌거나 그들은 더 나은 내일, 더 좋은 작품을 위해 이를 꽉 물었으리라. 영화는 그렇게 흘러갔지만, 어떤 장면은 심히 심장에 박힐만한 인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 감독. 나는, 내 심장은 아마 기억할 것이다.


심사평이 끝나고 단체사진을 찍자는 말에 영화의 감독과 배우들은 하나 같이 뻘쭘해 하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카메라를 들고 혹은 카메라 앞에서 능수능란하게 감독과 배우로서 자리매김했을 그들은 정작, 기념사진을 찍자는 말 앞에는 한 없이 수줍어하고 있었다. 허허. 이런.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영화에 몰두하고 몰입해야 할 천상, 영화인들인가 보다. 그들의 이름과 영화를 기억하는 일. 그것은 우리네 영화의 미래를 기약하는 것과 같은 일이 될 것이다.


[상상마당 매거진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