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 스트립이었다.
앞서 봤던, <맘마미아>의 유쾌하고 철 없는 엄마, '도나'의 잔영이 남아 있는데,
수녀, 그것도 너무도 깐깐한데다 철갑을 두른 듯한 종교인이라니.
과장하자면, 지옥에서 갓 내려옴직한 초상이었다.
검은 수녀복, 머리카락과 얼굴에 살짝 드리운 그늘까지 저승사자 '삘'이었다.
굳이 그의 변신을 얘기하자는 건, 아니다.
그의 연기가 두말해야 잔소리고.
그저 앞서 봤던 영화의 캐릭터와 완전 상반된 이미지에 살짜기 겁이 났을 뿐이다.^^; 잠시 혼란스러웠다고나 할까.
그의 전작 가운데 <카포티>에서 워낙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터라,
(그는 '트루먼 카포티' 역으로 2006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탄 바 있다.)
그는 나의 '블루 칩' 가운데 하나다.
이 두 사람이 만났다.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딱 그것만 알고 갔다. 다른 어떤 사전 정보 없이 찾아간 시사회.
그저, 두 사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터였다.
때는 1964년. 존 F 케네디가 암살당한 다음해.
신부와 수녀가 등장했다. 뉴욕 브롱크스의 성 니콜라스 교구 학교.
어라 종교 영화?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배경이 그렇고 캐릭터들이 그러하다보니.
플린 신부(필립 세이무어 호프만)는 신도들을 모아놓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케네디의 죽음을, 시대의 흔들림을. 그리고 그들을 위로한다.
보수적인 가톨릭 교구에서 풀어놓는 플린의 이야기는 어쩐지 묘한 반동감을 준다.
더구나 교구엔 보기 드물게 아프리카계 학생이 하나 있다.
가만, 생각해보라. 당시는 1960년대의 미국이다.
말도 안되는 '흑백분리법'이 있었다.
버스에는 백인전용좌석이 있고,
공공연히, 노골적으로 아프리카계 아메리칸을 경멸하던 시기다.
흑인에게 투표권을 줬던 케네디는 어쨌든 암살당했다.
영화보다 뒷 시기이긴 하지만,
말콤 엑스가 65년에, 마틴 루터 킹 목사도 68년에 '암살'당했다.
아직도 온갖 종류의 못된 차별이 날파리처럼 왱왱거리던 시기다.
말하자면, 그런 시기.
이 보수적인 가톨릭 학교에 유일하게 있는 아프리카계 학생.
멸시와 경멸, 차별은 일상다반사.
그런 와중에, 그를 아껴주는 보듬어주는 백인 플린 신부.
그에겐 '진보주의자'라는 레떼르를 붙여줘도 무방할 듯 하다.
그런 와중에 그의 맞상대로 수면 위로 떠오른 자는,
교장수녀, 알로이시스(메릴 스트립)다.
생긴 것 마냥(?) 그는 전형적인 골수 원칙주의자에 근본주의자 삘이다.
신부의 설교 시간에 자거나 딴 짓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는 가차 없다.
규율과 징벌, 공포를 믿는 철의 여인. 지나치리만치 엄격하고 딱딱하다.
대립은 불을 보듯 훤하다.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오고자 하는 신부와 바람의 방향이 바뀌길 원하지 않는 수녀.
도화선을 당기는 역할은 제임스 수녀(에이미 아담스)다.
성 니콜라스 학교에 얼룩을 만든 것 같은 흑인 학생, 도널드의 이상 행동과 그에 연관돼 있을 법한 플린에 대한 다우트(의심)에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팽팽해진다.
초반부, 다소 느슨한 전개로 그닥 영화에 몰입하지 못했던 나는,
이 의심으로부터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작은 의심이 불러온 파장은 생각보다 넓게 확산됐다.
여기엔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 교장 수녀 간의 헤게모니 싸움과 진실 공방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미성년자에 대한 성추행 문제까지 거론되기 때문이다.
세간보다 더 강력한 도덕률에 의해 지탱되는 가톨릭 교구에서,
미성년자가 엮인 성추문이라니. 오 마이 갓!
그러나 분명히 하자. 이것은 사실 혹은 진실로 확정된 것이 아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마음 한 켠의 의심이며 추측일 뿐이다.
우리는 익히 보아 왔고, 잘 알고 있다.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의심과 추측이 불러온 사회적 비용과 폐해를.
대량살상무기와 911 테러단체와 연관이 됐다고? 그래서 전쟁이라고?
그렇다. WPE(역대 최악의 대통령, Worst President Ever)인 부시가 만들어냈던 전쟁의 근거. 의심과 추측에서 비롯된 허구와 허위의 전쟁, 이라크전.
우리가 쉽게 믿고 단정내 버리는 어떤 것들.
가장 쉽게는 범죄 용의자에 대한 어떤 판단. 의심하면 믿어버리는.
최근의 한 영화에서도 우리는 그런 모습을 만났다.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의심이 만들어낸, 진실과 관계없이 유죄를 양산하는 사법권력의 허점을 봤다.
플린 신부도 비유했지만,
지붕 위에서 베개를 찌르면, 그 내용물이 나풀거리며 온 사방으로 퍼진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모으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 없이 내뱉은,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가십과 루머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파장들.
<다우트>는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그리고 정점은 의심과 진실 사이에서 벌어지는 공방이다.
교장수녀실에서 펼쳐지는 진실 공방은 가히 압권이다.
팽팽한 긴장감은 물론, 섹시함까지 느끼게 할 정도다.
의심에서 비롯돼 플린 신부를 확신범으로 몰아세우는 알로이시스 교장수녀와,
때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어떤 이유에선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를 묻고자 하는 플린 신부.
아, 정말이지, 그 한정된 좁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두 배우의 말과 행동, 그리고 스토리텔링은 짜릿하기까지 하다. 가히 도발적이고 관능적이다.
<다우트>는 미스터리영화의 형식까지 띤다.
사실, 어떠한 증거도 없다. 도덕적 확신과 개인적 신념과 함구가 전부다.
특히나 영화는 어떤 사실이나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 교장 수녀는 결국 헤어지지만,(스포일러라고 할 것도 없다!)
그것이 사건의 전말과는 아무 연관이 없다.
나 역시도 의심의 줄다리기를 내도록 타야했다.
누구의 말이 과연 사실이고 진실인지, 내가 의심한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마지막 장면, 놓치지 마시라.
도덕적 확신범의 울부짖음이 가슴에 팍! 꽂힌다. "Such a Doubt!"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 것.
나는 그것이 이 영화의 미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엔딩 크래딧이 내려오고 극장 문을 나선 뒤에도,
이 영화는 끊임 없이 사고하고 토론하게끔 만들 것이다.
당신이 이 영화에 충분히 몰입했다면 말이다.
그리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할 것이다.
우리가 평소에 하고 있는 작은 의심부터, 맹목적인 믿음과 어떤 진실까지.
미네르바와 이명박, 용산 참사와 경찰.
너무도 뚜렷하게 의심을 거둔 확신범은,
어쩌면 자신의 모순과 나약함을 알기 때문에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건, 아닐까.
<다우트>는 조만간 열릴 제81회 아카데미시상식에 4개 부문이 노미네이트됐다. 앞서 브로드웨이의 동명 연극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지난 1월 미국 배우조합상 시상식에서 메릴 스트립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는데, 나는, 비록 그렇게 말할 자격 따위는 없지만, 이 결과가 마땅하다고 본다.
2009년 들어 몇 편의 영화를 봤지만,
<다우트>는 내 심장을 건드린 2009년의 첫 영화다. ^.^
참, 이 영화는 종교 영화, 아니다.
한 성직자의 성 추문을 고발하거나 까발리는 영화, 아니다.
종교나 성직자, 성 추문 '의심' 등은 그저 소재이자, 맥거핀이다.
이 영화를 보고 사람마다 다양한 함의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뭐, 사실 그런 것 다 필요없다.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연기로도 이 영화,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다우트>는 2월 개봉영화다.
☞ 다우트 영화정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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